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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잃은 나

喜怒哀樂_我 : 슬플 애

by 미칼라책방

눈물이 많은 편이다. 슬퍼도 울고 기뻐도 우는 왕울보다. 기쁨으로 넘치는 눈물은 그나마 웃음으로 마무리되지만 슬퍼서 울 때는 콧물도 줄줄 흐르고 엉엉 소리는 물론이며 제일 곤란한 점은 바로 못생겨진다는 것이다. 울고 싶을 때 울어야 카타르시스가 제대로 된다고 어디선가 읽은 기억이 있는데 그걸로 못생겨지는 순간까지 승화시킬 수는 없다. 못생김을 극복하지 못했던 슬픔의 순간들을 적어본다. 이 또한 인생에 도움이 되겠지 싶어 나를 탐구한다.


제일 먼저 떠오르는 순간은 할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다. 할아버지는 자주 체하는 나에게 침을 놓아주셨으며, 큰일 보고 난 후 휴지 대신 칡이파리로 뒤처리하는 걸 알려주셨다. 소달구지에 나를 태우고 쑥고개를 넘으면서 아카시아꽃을 함께 따먹었다. 그래서인지 아카시아가 만발하는 5월만 되면 내 입은 달달하게 할아버지를 기억한다. 그런 할아버지가 어느 날 갑자기 쓰러지셨고, 한 달 후 돌아가셨다. 마지막으로 만난 날 사과를 깎아드렸는데 배 아프실까 봐 반쪽만 드린 것이 내내 걸린다. 나머지 반도 다오... 라고 하셨는데 그걸 왜 안 드렸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그날따라 배 아프면 어떡하냐고 오지랖을 떨며 안 드린 것이 아직까지 죄스럽다. 장례식을 마친 후 할아버지가 꿈에 나타나셨다. 온화하게 웃으시며 하얀 두루마기를 펄럭이며 잘 있으라고 인사하셨다. 가지 말라고 소리를 지르며 울었고, 팔을 휘저으며 두루마기 자락을 붙잡았는데 그러면 그럴수록 할아버지는 구름처럼 날아가셨다. 고요하고 아름답게. 꿈에서 깨어나서도 나는 내내 울었다. 부재(不在)의 슬픔은 애도의 기간으로 갈무리되는 줄 알았는데 내 경우는 슬픔과 그리움이 바통터치를 하듯 자리바꿈을 했다. 슬픔의 눈물이 주는 만큼 그리움이 늘어 추억이 더 선명해지고 있다.


나에 대한 슬픔도 있었다.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것과 같은 같은 부재(不在)인데 나는 나를 잃었던 적이 있다. 큰아이를 낳고 내 자의식은 한동안 부재중이었다. 지금 와서야 왜 그랬을까 곰곰이 생각해 보건대 일종의 산후우울증이었던 것 같다. 임신 28주 차에 배가 아팠다. 심상치 않은 통증에 퇴근하면서 병원에 들렀는데 그 길로 입원했다. 자궁수축억제제를 맞으며 어떻게든 견뎌야 한다고 했지만 결국 응급실에서 마취도 제대로 못 한 채 조산했다. 아이는 중환자실에서 한 달 넘게 있었으며 그동안 마음의 준비를 하라는 의사의 통보를 열 번도 넘게 받았었다. 무슨 말로도 형언할 수 없었다. 슬픔이 비집고 들어올 틈도 없을 만큼 막막(寞寞)했다. 寞의 의미를 고스란히 체험하고 있었다. 고요할 막(寞) 자가 두 번이나 쓰인 겹겹의 적막에 나만 있었다.


한 달 후 아이는 2kg이 넘어 퇴원했으나 응급실을 밥 먹듯 드나들었고 그중에 반은 일주일 이상의 입원으로 이어졌다. 병원이 집이었고 집이 병원이었다. 아니 그 어디도 집도 병원도 아니었다. 나도 내가 아니었다. 그 무엇도 의미가 없었다. 산다는 게 무언지 몰랐다.


"에미가 먹어야 애를 안아 주지..."


친정엄마의 애원은 공허했다. 반찬을 싸 온 엄마를 피해 안방으로 기어들어왔다. 화장실로 걸어가다가 우연히 거울에 비친 나를 보았다. 거울 앞에 아무렇게나 서 있는 스킨과 로션은 공병이 된 지 한참이었다.


"나 같은 게 얼굴에 뭐 바를 자격은 있나. 이런 걸 발라서 뭐 해. 나 같은 게..."


처음 꺼내 놓는 기억이다. 너무 깊은 슬픔에 빠져있었기에 그곳이 슬픔인지도 몰랐다. 내 안에 나를 가둬놓고 나를 잃었다고 여겼다. 우물 안 개구리가 맞는 표현은 아니지만 상상할수록 그곳은 내 우물이 맞았다. 말라빠진 우물에 조금씩 물이 차오른 건 가족들의 애틋한 보살핌 덕분이었다.


특별한 계기가 있었나? 아무리 떠올리려고 애를 써도 기억나는 거라곤 엄마가 "너 좋아하는 거잖아."라며 온갖 음식을 싸 날랐던 장면뿐이다. 김치죽과 진미채, 미역을 잔뜩 넣은 미역국, 고추씨로 맛을 낸 백김치가 생각난다. 아, 그러고 보니 여동생도 꾸준하게 나를 찾았다. 어렸을 때는 귀찮을 정도로 나를 따라다니던 동생이 거꾸로 귀찮게 언니를 찾아대면서 내 안의 나를 찾도록 도왔던 것 같다. 그럼 남편은? 남편은 빌트인 가구처럼 늘 있었는데 내가 나를 잃었을 때 남편도 함께 잃어버린 줄 알았다. 늘 거기 있었는데 말이다.


소소하지만 반짝이는 순간들 덕분에 내 우물은 찰랑일 수 있었다. 내가 나를 잃으면서 살짝만 스쳐도 바스락 부서질 것 같았다. 아니 부서져 가루가 되어 사라진 줄 알았다. 아, 이렇게 사라지는구나 싶을 만큼 무겁고 슬펐다. 당시에는 알아차릴 수 없었던 수많은 회복의 계기들이 나를 촉촉하게 적시며 시나브로 내 눈코입을 자각할 수 있었다. 그리고 머리어깨발무릎발,,, 그 안에 건재하고 있는 나를 만났을 때 비로소 잃은 줄 알았던 나와 재회했다. 기쁨의 눈물이 찔끔 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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