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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걱정은 말고 할머니 걱정이나 하셔!

목수와 그의 아내 - 2

by 미칼라책방




쬐그만 것이 물주전자 심부름시키면서 넘어지지 말고 잘 다녀오라고 걱정했더니
'내 걱정은 말고 할머니 걱정이나 하셔.'
라고 하더라니까. 우리 손녀가~~


라면서 이웃에게 언제나 내 자랑을 하시던 할머니.

할머니, 할아버지와 함께 살았던 도마교리 집 안마당에는 커다란 라일락 나무가 서 있었다.

20200705_223445.jpg



우물가를 돌아 뒤꼍으로 가면 목단이 내 머리보다 크게 피어 있었다. 그렇게 뺑 돌아 가죽나무 몇 그루를 지나면 다시 안마당이다. 안마당을 가로질러 대문을 나오면 바깥 마당 한구석에 소가 묶여 있고, 그 소를 지나면 변소가 있었다. 변소라고 불리던 재래식 화장실은 기다란 나무판자 두 개가 딱 걸쳐져 있었다. 그곳은 냄새와 파리가 있었고, 유난히 풀들이 잘 자라는 곳이었다. 소가 바라보는 큰 마당에서 우리는 자치기도 하고, 비석 치기도 하고, 명절에는 윷도 놀고, 널도 뛰었다.


추억이 가득한 집이다. 나에게 추억이 가득한 도마교리 집으로 아빠의 이야기를 시작한다.


"아빠~ 우리 도마교리에 살 때 있잖아. 그때 그 집에 우물가가 난 참 좋았는데... 기억나?"

이렇게 나의 목수 아빠에게 이야기를 듣기 시작했다.

"그 우물 내가 팠지. 4길을 팠어. 4길을."

"아빠 몇 살 때?"

"22살. 그걸 내가 삽으로 팠어. 지름이 2미터 50센티였어. 내가 그땐 힘 좀 썼지."

"샘이 있는 줄 어떻게 알았어?"

"에잇. 그걸 어떻게 알아!"

"어? 진짜? 우리 집 물 참 좋았는데?"

"허허. 나올 때까지 파는 거야. 4길을 파야지 생각하고 판 게 아니라 4길까지 팠는데 물이 나온 거지."

"그런 거였어? 우리 아빠 진짜 대단하다!"

"구씨네는 5길을 팠어. 우리는 4길을 팠고."

"그걸 어떻게 다 기억할까~ 우리 아빠는?"

"내가 머리가 그렇게 좋았지. 그래서 5촌 당숙 아저씨가 일을 안 가르쳐줬어. 내가 배워서 써먹을까 봐. 그런데 어깨너머로 다 배운 거지."


그렇게 도마교리 집 지은 얘기가 시작되었다. 당시 도마교리 집을 지을 때 온 동네 사람들이 와서 도왔다. 약 50여 명의 장정들이 와서 2달 동안 15칸 집을 지었다. 조그만 동네였기 때문에 도마교리 사람들 말고도 옆 마을, 옆의 옆, 그리고 또 그 옆의 마을에서도 왔을 것이다. 동네에서 이 집은 사람이 이렇게 많이 와서 돕는다고 부자가 될 집이라고 했단다.

어떻게 그렇게 많은 사람이 올 수 있었을까?


"할아버지랑 할머니랑 외지 사람이었는데 어떻게 그렇게 도움을 많이 받았어?"

사실 나는 그 까닭을 모르지 않았다. 하지만 굳이 아빠에게 물는 이유는 부모님을 자랑하고 싶은 아빠의 그 간지러운 마음이 보였기 때문이다.

"인심을 잘 얻었지. 아버지가 누가 아프다고 하면 사람이든 소든 가리지 않고 어디든 가서 침을 놓으셨지."

"맞아, 할아버지가 나 침도 많이 놔주셨어. 체했다고 침놔주신 거 기억나."

그러면서 아빠와 나는 아빠의 아버지에 대한 각자의 추억을 꺼내 놓았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엄마가 '있는 자'의 미소를 지으며 말을 건넨다.

"여보. 아버님이 그 침통 나한테 물려주셨어."

"뭐? 진짜? 당신이 아버지 침 가지고 있어?"

"보여줘요?"

"응. 지금 보여줘."

1586179814211-2_resized.jpg 나의 할아버지의 침통



아빠는 할아버지의 침통을 들고 조금 흥분한 것 같았다. 얼른 찍으라며 손을 내미셨다. 그리고 조심스레 침통을 열었다.


미칼라야~ 빨리 찍어라!
1586179814211-1_resized.jpg 많은 생명을 살린 할아버지의 침.



은침, 동침, 소 혓바닥을 찔렀던 침. 비녀 침. 미칼라를 비롯한 여러 사람을 살린 침. 나도 기억났다.


"할아버지 배 아파..."

"어디 보자~ 방에 들어가 보자."

그렇게 할아버지를 따라 사랑방으로 들어가면 다락방의 문을 드르륵 밀어서 여셨다. 그리고 연한 옥색의 항아리에서 꿀을 한 숟가락 푸시고 빨리 입을 대라는 고갯짖을 하셨다. 그러면 나는 얼른 할아버지 팔 밑으로 배고픈 참새 새끼처럼 파고들었다. 그렇게 꿀을 한 숟가락 먹고 나서 배를 만져주시다가 할아버지가 물으신다.

"미칼라야~ 아직도 아파?"

"응."

그러면 할아버지는 안주머니에서 침통을 꺼내 뽁! 하고 뚜껑을 열고 제일 얇은 침을 잡으신다. 그리고 머릿기름을 사아악. 사아악. 바르시고 나를 쳐다보며 말씀하신다.

"미칼라야 저기 엄마 오나 봐바라."

"어디?"

하면서 나는 대문 밖을 보고 그 순간 할아버지는 엄지손톱의 아랫부분을 꾹 찌르신다. 그러면 거짓말처럼 배가 시원하게 내려앉는 느낌이었다.

내가 할아버지와의 기억을 더듬은 그 순간, 나의 아빠는 아버지에 대한 기억을 역시 떠올리고 있었다.


"여보, 간직해줘서 너무 고마워. 숨 넘어가던 애도 우리 집에 오면 다 나아서 갔어."라고 아빠가 말씀하시니 엄마가 말을 받으셨다.

"니네 할아버지는 생전 담배랑 술 값을 내 본 역사가 없어."

아빠는 아버지에 대한, 엄마는 시아버지에 대한 추억을 떠올리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엄마는 나 어렸을 적부터 말씀하셨다.

"나는 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셔서 니네 할아버지가 아버지였어. 진짜 친정아버지처럼 모셨어."

이런 엄마의 말에 아빠는 술기운인지, 커피 기운인지 모를 힘으로 말씀하셨다.

"여보~ 정말 고마워. 이걸 간직하고 있었네. 진짜 고마워."

작년에 할머니가 돌아가신 후 엄마와 아빠에게 세월이 조금 더 빨리 지나간 것처럼 느껴졌었다. 그래서인지 부모님에게 할머니와 할아버지가 겹쳐 보이기도 했었다. 이 순간 아빠의 뜬금없는 고백이 이어졌다.


"내가 아버지를 닮아서 사람들을 집으로 무조건 끌고 오는 거야. 니네 할아버지도 그러셨거든. 내가 아버지를 닮아서 니네 엄마가 고생을 참 많이 했지."

이런 말 할 땐 꼭 텔레비전을 뚫어져라 쳐다보시더라. 감정표현에 서투른 아빠이기에 혼잣말처럼 하는 말이더라도 나에게 하는 말인 걸 다 알 수 있었다.

아빠의 시선은 텔레비전 화면에 있고, 나의 시선은 아빠를 쫓고 있었다.

이 어색함을 알아차린 아빠는 도마교리 집을 짓자마자 군대에 갔다고 하시면서 군대 얘기를 시작한다.

안된다!

우리 아빠의 군대 얘기는 3부작으로 들어야 할 만큼 길다.

"내가 그 우물을 파고 바로 군대를 갔어."

"군대? 아빠! 우리~ 군대는 다음 주에 하자."

"35개월 15일이었어. 3월 23일에 입대해서 3년 지나서 2월 15일에 전역을 했어."

"아빠! 군대는 다음 주에 하자구우우우우우~~~"





* '미칼라'는 집에서 저를 부르는 이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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