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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칼라책방 Dec 26. 2020

81년도 건지미 집터

목수와 그의 아내 - 15

사사리 영광상회는 그야말로 엄마와 아빠의 모험이었다. 처음부터 사사리까지 나올 생각은 없었다. 도마교리에서 반월까지만 나와도 장족의 발전인데 어쩌다 사사리까지 가게 되었냐 하면은....



81년도에 건지미 집터를 샀는데 가운데 1미터 정도 남의 땅이 들어와 있었다고 한다. 남의 땅에 집을 지을 수가 없는 노릇이었다. 집터는 샀는데 집은 짓지 못하는 이 상황을 알게 되신 할아버지가 반월로 출동하셨다. 그때를 회상하는 아빠에게 나는 물었다.


"할아버지가 어떻게?"

"부동산 사장 아부지가 니네 할아버지 후배였거든."

"반월에 선후배 아닌 사람이 어딨어?"

"여하튼 그 사장은 자기 아부지 선배님이니까 아주 쩔쩔매더라고."

"그래서 할아버지가 해결하셨어?"

"한 달인가? 두 달인가 만에 바로 팔았어."

"손해 봤겠다~~"

"아니! 그때 반월에 건축 붐이 있어서 말뚝 하나도 안 박았는데 백만 원이나 더 받았어~"

"뭐? 백만 원? 부동산 투기잖아. 지금 그랬으면 세금을 억수로 두들겨 맞았을 텐데..."

"그때는 세상이 그랬어~ 세상이."

"그래서 건지미에서 백만 원 들어온 걸로 뭐 했어?"

"너더리 논 잡히고, 건지미 판 돈이랑 여기저기서 빌려서 사사리로 나간 거지."


아빠는 '브로꾸', '하꼬방' 등의 단어를 사용하시면서 설명을 길게 하셨다. 


그냥 샀어. 아무것도 없어도 괜찮았어. 브로꾸로 하꼬방이라도 지어서 열심히 살면 다 될 줄 알았어. 



가족을 위해 거칠 것이 없었던 나의 엄마와 아빠는 81년도에 건지미 집터를 마련했었다. 아이들을 면 소재지에서 키우기 위해 무리를 해 보았지만 뜻대로 되지 않았고, 결국 사사리로 가게 된 것이었다. 

도마교리도 건지미를 거쳐 사사리까지 모두 반월면이었지만 그중 사사리는 조금 달랐다. 수원과 제일 가까운 동네였기 때문이다. 도마교리는 산골이었고, 건지미는 면사무소가 있었고, 사사리는 수원시와 가까운 곳이었다. 다시 말해 우리 가족은 점점 도시에 가까워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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