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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칼라책방 Dec 30. 2020

도마교리 미칼라네 둘째 며느리

목수와 그의 아내 - 16




결혼 8년 차의 엄마와 아빠는 사사리에서 정육점을 하고 싶었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아빠는 목수, 엄마는 정육점으로 맞벌이를 계획했던 것이다. 하지만 시부모님은 동의하지 않으셨다. 

"정육점이라니... 그건 안 된다!"

"아버님, 저 잘할 수 있어요."

"우리 집안에 그런 건 안 된다."

할아버지는 곱디고운 며느리가 소 돼지를 잡는다고 하니 기겁을 하셨다. 집안의 체면도 체면이지만. 큰돈을 가지고 나가서 말아먹으면 어쩌나 하는 걱정을 하셨다. 시부모님의 반대가 너무나 심했던 나머지 슈퍼로 업종을 변경했다.

"안 된다!"

"네? 정육점 아니에요, 아버님. 그냥 슈퍼예요. 슈퍼."

"장사치들을 네가 어찌 당하려고! 그리고 나는 둘째 며느리가 막걸리 장사하는 꼴 못 본다!!"

자그마치 40년 전 일이다. 할아버지는 '농사'와 '장사'의 차이를 명확하게 두시며 안된다 하셨지만 결국 엄마와 아빠는 영광상회를 시작하셨다.

가게는 잘 되었다. 하지만 살림이 잘 안되었다. 아이들이 어떻게 크는지 살필 여유가 없었다. 도마교리에서 나온  이유가 아이들 때문이었는데 이렇게 하다가는 자칫 아이들을 놓칠 수도 있겠다 싶어 영광상회를 정리하고 동네 안쪽에 양옥집을 샀다. 영광상회에서 몇 걸음 되지 않았지만 우리가 이사할 그 집은 번쩍거리며 빛이 나는 것 같았다. 아빠에게 양옥집에 대해 물었다.

"양옥집에 처음 사는 거였다. 그치?"

"그렇지. 처음엔 꿈인가 싶었어."

"거기 창고에서 우리 연탄 장사했던 거 기억나."

"너 그걸 기억해?"

"아빠가 새벽에 연탄 사러 갔었잖아."

"그런데 그것도 오래 못 했어."

"왜?"

"진짜 너~무 힘든 거야. 엄마가 고생이 말도 못 했어."

"그래서 다시 슈퍼를 한 거였구나~!"

"니네 엄마가 동네 인심을 잘 얻어서 거기서도 장사는 잘 됐어."

그때는 막걸리를 말통으로 받아서 잔으로 팔았다고 한다. 닭을 잘 튀겼던 엄마는 닭 손질 후 남은 부속 고기들을 따로 모아 놓았다. 동네 어르신들이 마실 나오시면 막걸리 한 잔과 똥집, 닭발 등을 정갈하게 담아 내놓았다. 



도마교리 미칼라네 둘째 며느리는 사람이 참 좋아~!


역시 맛있는 거 앞에선 장사 없나 보다. 영광상회를 정리하고 동네 안쪽에서 다시 시작한 슈퍼도 손님이 꽤 있었던 걸로 기억한다. 외상장부에 적혀 있던 이름들도 기억난다. 안경 새댁, 김씨, 샴푸, 삼용이, 경준이, 미경이, 방앗간.... 이런 이름들로 적고, 지우고, 적고, 지우고를 반복하며 함께 살았던 것 같다.

"경준이 할머니가 니네 엄마를 진짜 좋아했어."

"경준이 아줌마는 생각나는데 할머니는 잘 모르겠다."

"연세가 많으셨어."

"왜~?  엄마 볼 때마다 예쁘다고 칭찬하셨어?"

너 이년아! 너만 안 봤으면 내가 수원 가서 사 올 건데 여기서 니 얼굴을 딱 만나면 어떡하냐! 천상 오늘도 수원에 못 가고 니네 집에서 또 사 가지고 간다. 이년아! 



또는 조금 짧게 칭찬하시는 날도 있었다.

니가 왜 이 동네에서 장사를 해서 나 수원도 못 가게 막냐, 이년아!


무지막지한 칭찬의 말씀(?) 후에는 한 꾸러미씩 사 가셨다고 한다.

나는 기억도 안 나는 경준이 할머니의 걸쭉한 성대모사를 하는 아빠의 모습에서 나는 그리움을 읽었다. 옆에서 시종일관 듣고만 있는 엄마의 모습에서는 지나간 세월에 대한 쓸쓸함도 읽을 수 있었다. 그리움과 쓸쓸함, 그리고 다른 여러 가지 감정들을 이렇게 밖으로 토해내면서 우리는 더 친해졌다. 

엄마랑 아빠랑 나는 더 친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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