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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칼라책방 Feb 10. 2021

내가 너 흉 하나 볼까?

목수와 그의 아내 - 21

아빠는 그 얘기를 할 때면 늘 이렇게 시작하신다.


내가 너 흉 하나 볼까?


그럼 나는 "아빠! 그때는 그게 아니었다고~~~"라고 늘 같은 대답을 한다.

목수와 그의 아내는 큰 딸을 시내에 있는 고등학교에 보내기로 했다. 아이들의 미래를 위해 아무래도 그렇게 하는 것이 옳은 것 같았고, 내친김에 이사까지 했다. 그때 고등학교 배정 방식은 일명 '뺑뺑이'였다. 뺑뺑이 결과 나는 조금 먼 고등학교에 배정받았다. 그래서 어른들이 통근버스 타듯이 '봉고'를 탔다. 

아침잠이 유독 많았던 나는 봉고를 놓치기 일쑤였다. 그럼 아빠가 학교까지 데려다주신다. 그때 우리 아빠는 파란 트럭을 몰고 다니셨다. 파랗게 반짝거리는 1톤 트럭을 타고 가면 봉고차보다 훨씬 짧은 시간에 도착하기 때문에 가끔은 일부러 늦장을 부리기도 했다.

아빠가 늘 흉을 보는 대목은 바로 그때 그 시절 학교 앞에서 내릴 때다. 내가 다녔던 고등학교는 학교 진입로가 하나였다. 게다가 중학교와 고등학교가 세트로 있었던 곳이다. 허허벌판에 지었던 학교였던지라 학교로 들어가는 길이 외나무다리처럼 쭉 뻗어있었다. 직선으로 뻗어있는 진입로 양쪽에는 문방구와 떡볶이집이 퐁당퐁당 서너 개씩 있었다. 

등교 시간에는 짙은 회색의 고등학생과 옅은 회색의 중학생이 넘실넘실 파도처럼 교문으로 입장한다. 아빠가 운전하는 파란 트럭은 이 회색 물결을 홍해 바다처럼 가르면서 지나간다.....


출처 : 네이버 이미지


나를 내려주고서 아빠는 큰 소리로 인사를 하신다. 


미칼라~! 공부 열심히 해~!


그리곤 교문 앞에서 차를 크게 돌려서 다시 회색 물결을 가르면서 유유히 가신다. 그래서 다음부터는 아빠에게 교문까지 가지 말고 그냥 동네 입구에서 내려 달라고 했다. 아빠는 아직도 그것이 서운하신지 종종 '너의 흉'이라고 하시며 꺼내 보이신다.

나는 아빠 트럭이 창피했던 것이 아니라 회색 물결을 가르는 그 순간이 부끄러웠다. 진하거나 옅은 회색을 새파란 트럭이 가운데로 지나가면서 정확하게 두 갈래로 좌~아~악 가른다. 트럭이 지나간 후 두 물결은 다시 하나가 되어 넘실거린다. 아... 그러고 보니 회색 물결을 갈랐던 것이 트럭이었으니 그 말이 그 말인가 싶다.

다음에 목수님이 '흉'을 꺼내실 때는 잘못했다고 싹싹 빌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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