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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칼라책방 Mar 14. 2021

그 대학이 그 대학이었다니!

목수와 그의 아내 - 25

자녀들이 대학에 다니는 것이 큰 자랑임과 동시에 금전적으로 부담이었던 목수와 그의 아내는 당시 살림을 어떻게 꾸렸는지 기억을 더듬었다. 

자녀 입장에서는 '내 입학과 졸업'이지만 목수와 그의 아내 입장에서는 둘 아니면 셋이 학교에 다니고 있었다. 장장 9년 동안 세 아이의 입학, 휴학, 복학, 졸업을 치르면서 특히 기억에 남는 것은 막내의 대학교였다.


"막내는 니가 원서 다 썼잖아."라면서 아빠가 말을 시작했다. 내 원서 쓸 때는 그저 선생님 말대로 하겠다던 부모님이 막내 때는 위로 둘을 대학에 보내 본 결과치를 가지고 어느 정도 계산이 가능했다. 그 계산의 결과는 학교를 제일 많이 다닌 나에게 결정권을 넘기는 것이었다. 제일 신선했으니까.


"내가 그 대학 앞에서 인테리어를 무지 많이 했어."

"아빠가 대한민국에 안 가신 데가 어딨어~~?"

"내가 거기 공사하면서 우리 애들 셋은 이 학교 절대 안 보낸다고 결심했어!"

"왜?"

"온통 새빨가~!!"

"그게 무슨 말씀이셔?"

"손톱이고 입술이고 뭐고 다 빨갛게 칠하고 다니는 거야~!"



© gdakaska, 출처 Pixabay


손톱과 입술을 빨갛게 하고 다녔다던 학생들이 있는 그 대학교. 그 대학과 아빠는 결국 인연을 맺을 수밖에 없었다.


"아! 그런데 나중에 보니까 막내가 그 대학교를 다닌다는 거야~!"

"아빠~ 원서에 아빠가 도장 찍어 줬잖아. 그때 모르셨어?"

"그때는 접수비 주는 게 먼저였지. 그 대학이 그 대학인 줄 몰랐어. 허허허"

"그럼 막내가 그 대학 다니는 줄 언제 아셨어?"

"1학년 끝날 땐가... 학교에 데리러 오라고 해서 갔는데 세상에... 시뻘건 그 학교인 거야!"


우리는 모두 웃음보를 터뜨렸다. 동네에서 애들 셋 대학 보냈다고 있는 자랑 없는 자랑 다 하셨으면서 막내가 2학년이 되어서야 대학 이름을 아셨다니 웃지 않을 수가 없었다. 

한편으로 마음이 쓰리기도 했다. 배움의 한이 얼마나 깊으셨으면 아이들이 대학생이라는 자체만으로 자랑스러워하셨을까. 아이들을 앞세워 목수와 그의 아내는 학사모를 썼고, 학위를 가진 거나 마찬가지였다. 


"아빠~ 아직도 그 학교 별로야?"

"아니~~~~! 알고 보니까 그 학교 역사가 아주 깊더라. 좋은 학교를 내가 못 알아봤어. 우리 막내딸이 가서 이름을 더 빛냈지 뭐."


결국 팔은 안으로 굽으면서 그날의 대화를 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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