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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칼라책방 Jan 09. 2022

"미칼라, 바쁘니?"

목수와 그의 아내 - 32

오전에 엄마에게 전화가 왔다.

"미칼라, 바쁘니?"

"아니."

"지금 뭐 해?"

"♥♥이 온라인 수업 중이라 밥 챙겨 주고 있지."

"그럼 엄마랑 아빠랑 어디 좀 가자."

어디냐고 묻지 않았다. 엄마는 이런 전화를 잘 하지 않기 때문에 무슨 일이 있는 게 분명하다는 불안감이 엄습했다. 알았다고 대답한 뒤 아들 밥을 차려 놓고 친정으로 달려갔다. 얼마 전에 다리 수술한 게 잘못됐나? 아빠가 몸이 불편하신가? 운전을 하면서 별생각이 다 들었다. 친정으로 가는 마지막 좌회전을 하는데 저 앞으로 희미하게 엄마와 아빠가 보였다. 나를 기다리다가 결국 걸어 나오신 거였다. 

"무슨 일이야? 급해?"

"아니~ 너네 아빠가 갈비탕이 드시고 싶다고 하잖아."

"갈비탕?"

"어. 속이 안 좋으시대."

"아이고. 그럼 갈비탕이 아니라 더 좋은 걸 먹어야지~!"

불안했던 마음이 한순간에 녹으며 동시에 머릿속으로 식당과 오늘의 동선을 짜고 있었다. (삐리삐리 머리야 돌아가라~)

우선 한정식집에 전화를 했다. 일제강점기에 지어진 집이라는 소문을 듣고 언젠가 아빠 모시고 한 번 가야지 싶었는데 오늘이 기회인 것 같았다. 야트막한 한옥인데 서까래와 문간방, 대들보, 문살 등이 아빠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돌솥에 있는 밥을 먼저 푼 뒤 아빠는 물을 많이 부어 드렸다. 숭늉을 굉장히 좋아하셔서. 진지를 드시며 정치, 성당, 농사에 대한 다양한 의견을 피력하셨다... 

"아빠~! 오늘 점심은 내가 살게."

"아니야~ 내가 살 거야."

"왜?"

"이거 12월까지 쓰래."

지역화폐 카드를 내미시며 얼른 사용해야 한다고 하셨다. 그렇다면 어쩔 수 없지 뭐. 계산을 하시고 나서 카드를 나에게 주신다. 

"이거 너 가져."

"나도 있어."

"나머지 돈으로 애들 햄버건가 뭔가 사줘."


26,920원이라... 요즘 햄버거가 얼마더라 생각하다가 이왕 나왔으니 한옥카페에 가서 부모님과 함께 고즈넉한 시간을 보내고 싶었다. 화성행궁 옆으로 늘어진 좁은 골목길을 다니다가 어렵게 주차를 하고 한옥 문을 열고 들어갔다.

우연인지 필연인지 문을 열고 들어간 낯선 카페 사장님이 아빠 친구의 아들이었다. 엄마와 아빠는 문을 열고 들어가자마자 '네가 하는 카페가 여기였냐!'라며 인사를 하셨다. 마치 알고 찾아오신 듯한 착각을 일으킬 정도였다. 


멋진 풍경에서 더 멋진 커피를 마시고 일어나며 '뭐 더 필요한 거 없으시냐'라고 여쭤봤더니 '털 달린 슬리퍼'를 주문하셨다. (오늘 집에 바로 갈 순 없겠다.)



털이 수북하게 깔린 신발을 사드렸다. Hit였다. 이후 두 군데 더 들러서 집에 갔다는 건 안 비밀. 집으로 가면서 내가 엄마에게.

"엄마. 오늘처럼 전화하니까 얼마나 좋아!"

"그러게. 오랜만에 나오니까 좋네."

"밥도 먹고, 시장도 가고, 사고 싶은 거 다 사고~"

"오늘 너무 좋다."

바쁘냐는 뜬금없는 전화로 가슴이 철렁하긴 했지만 '오늘 너무 좋다'라고 하시니 나도 덩달아 좋아서 하늘을 날아갈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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