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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칼라책방 Dec 02. 2021

"밭에서 10시에 만나!"

목수와 그의 아내 - 31

주말에 친정에서 김장을 했다. 한창때는 300포기 정도 했었는데 이제는 반 정도로 줄었다. 그때는 김장하는 당일에 김치통 주렁주렁 달고 가서 버무리는 것만도 벅찼었는데...  나이가 들면서 보니 김장을 위해 준비하는 시간과 정성이 하늘만큼 땅만큼이었다. 김치 양념은 내가 손댈 수 있는 게 아니라 엄마가 전담하셨다. 대신 밭에서 작물들을 거두기 위해 남편과 내가 일정을 비웠다. 

"엄마. 금요일에 밭에서 만나."

"뭐 하러 그래~! 그냥 토요일 아침에 와."

"우리 휴가 냈어. 걱정 마."

"아이구~ 이것아. 김장한다고 휴가를 뭐 하러 내? 그냥 일해!"

"몰라~ 몰라~ 밭으로 일찍 갈게."

"그럼 10시까지 와."

"10시? 그렇게 늦게?"

"아니야. 10시면 돼."

금요일 아침부터 서둘렀다. 엄마는 분명 10시라고 했지만 그전에 와 계실 것이 뻔했기 때문에 애들 학교 보내고 서둘렀다. 밭에 도착한 시간이 9시 반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이미 작업은 반 정도 진행되어 있었고 남편과 나는 바로 목장갑 끼고 투입!


항암배추랑 일반 배추를 분리하고, 파와 무,,, 기타 등등등 등등등.

흙이 내어 준 먹거리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촬영했다. 이후 김장 속을 장만하고 토요일 새벽부터 버물 버물. 일 년 먹거리, 김장을 무사히 마쳤다. 


에피소드 1.

배추 이파리들을 보니 배추전이 너무 먹고 싶어 고랑을 걸어 다니며 이쁜 것들만 모아 모아 20장 정도를 트럭 구석에 잘 놓았다. 아빠와 남편은 트럭을 타고 출발했고, 나와 엄마는 내 차를 타고 뒤따랐다. 친정에 도착하니 남자들이 벌써 배추를 부리고 있었다. 나의 소중한 간식, 배추 이파리를 찾았다.

"내 이파리 어디 갔어?"

"이.. 이파리?"

"어. 그거. 내꺼. 아까 주운 거."

아빠는 시선을 피하고 남편은 키득키득 웃었다. 서... 설마! 닭장으로 뛰어갔다. 닭들이 내 이쁜 배추 이파리들을 찢어발기고 있었다. 그거 내 꺼라고 소리를 질렀지만 닭들은 못 들은 척 먹기만 했다.



에피소드 2.

친정 부모님이 신이 나셨다. 시집 장가간 자녀들이 모두 모였다. 늘 사정이 생겨 누군가는 빠지기 마련이었는데 이번 김장은 하늘이 도우셨는지 짝꿍끼리 모두 모이니 집이 사람으로 가득 찼다. 엄마와 아빠의 마음도 사랑으로 가득 찼다. 너무 가득 차서 입이 다물어지지 않으셨다. 

그래서인지 수육, 장어, 떡, 부침, 빵,,, 김장보다 먹을 게 더 많았다. 

"엄마. 김장보다 밥 차리는 게 더 힘들어."

"일 년에 한 번이야. 이것도 나 가면 못해."

"그 간다는 소리 좀 그만해."

"미칼라. 있을 때 잘해."

요즘 들어 무릎이 너무 아프다던 엄마는 천사처럼 날아다녔다. 손가락이 잘 펴지지 않는다던 아빠는 피아니스트처럼 우아하게 움직이셨다. 김장 배워야 한다고 입버릇처럼 말했는데 이제는 정말 배우기 싫다. 안 배우면 엄마와 아빠가 계속 계셔야 할 테니까.



에피소드 3.

결국 나는 일요일에 코피가 났다. 일이 힘들어서가 아니라 안 하던 일을 해서. 

"엄마. 나 코피 났어."

"치."

"그니까 어디 간다는 말 하지 마. 싫어."

"내가 가긴 어딜 가."




내년부터는 꼭 사 먹자고 하는 약속은 이미 공허해진 지 오래다. 하지만 그렇게라도 나의 미안한 마음을 엄마 아빠에게 전달하고 싶다. 자식들 맛있는 김치 먹이겠다는 일념으로 씨 뿌리고 거두기까지 이 밭을 얼마나 오가셨을까. 


밭에 널브러진 초록 이파리들은 노란 배추 알맹이를 감싸며 비 맞을까, 바람에 날릴까, 추위에 얼까,,, 걱정했을 것이다. 더우면 더운 대로 추우면 추운대로 그것들을 감내하며 김장배추를 지켰던 초록 잎들을 보며 엄마와 아빠를 생각했다. 부모님이 나를 그렇게 키웠으리라. 세상 풍파는 내가 맞을 테니 너는 잘 자라라는 그들의 내리사랑. 그리고 또한 나도 나의 아이들을 그렇게 키우고 있다.  


내리사랑은 있는데 치사랑은 참 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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