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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칼라책방 Mar 26. 2022

2020 김승옥 문학상, 우리는 페퍼로니에서 왔어

다락방 - 13

2020 김승옥 문학상 대상작.


기오성의 행방불명은 정치적 신념에 대한 자괴감 때문이 아닐까? 그리고 그 당시 이라크 파병은 전투가 아니라 재건을 위한 목표가 뚜렷했음에도 불구하고 무조건적인 정부 비판이 낳은 잘못된 시각이었어. 은경의 생각처럼 불의를 향한 시민운동이 다 옳은 건 아닐 수도 있다는 의미 같아. 


나는 행방불명을 믿지 않았다. 은경과 연락을 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나만 그렇게 읽었다. 왜 그랬을까 생각해 보았으나 정확한 이유는 찾을 수 없었다. 다만 회원님들과 토론하면서 행방불명이 확실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이래서 함께 읽는 작업이 필요하다. 그리고 그의 행방불명이 갖는 의미에 대해 알고 나니 더 확실하게 작품을 이해하게 되었다. 내가 알고 있던 운동권이 아니라 요즘 세대들이 인식하고 있는 사회운동에 대한 시선이라고 해야 하나?

마지막에 은경이 '하고 싶은 말이 있습니다.' 메시지가 바로 이 소설을 쓰게 된 계기가 아닐까 싶어. 독자인 우리에게 이 글을 쓴다는 의미지. 손녀 강선이 말하는 Good Person을 브루클린 이민자를 말하잖아. 그걸 은경에게 대입하는 것 자체가 은경의 생각과 행동을 지지하는 것이지. 오늘날 정치상을 투영하는 '당동벌이'라는 표현이 너무 충격이었고, 아주 적절했다고 생각해. 은경과 강선 사이에서 이중적인 모습도 잘 드러나 있고.



노무현 정권, 88세대, 팟캐스트, 현체제에 대한 울분 등을 담고 있는 이 소설은 어쩌면 참신한 운동권 이야기가 아닐까?

사과꽃이 피든 지든... 우리가 어디에서 어떤 질문을 하든 무슨 상관일까?


사촌에게 은경은 이상적인 아이였다. 현실에 발을 딛지 않는 불안한 아이이기도 했다. 반면 사촌은 다분히 현실적이고 건강한 정서를 가지고 있었다. 은경의 불안을 사촌이 위로해 주는 대립과 보완이 글에서 너무 좋은 구도였어.


사과꽃의 향기가 코끝에 와 있는 것 같았다. 은경은 사과꽃 향기에 취해 무슨 생각을 했을까? 그렇게 방방 뛰어다니던 모습을 스스로는 기억하지 못하고, 사촌은 생생하게 기억한다. 어서 와 쉬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내려온나~


사랑의 발생학. 사랑이 발생했다는 표현이 적절했을까? 그런데 이 글에서는 발생이라는 게 가장 적절한 표현 같아. 읽을수록 그 표현이 좋더라. 

과연 페퍼로니는 우리에게 어떤 곳일까? 내가 놓쳐버린 순간에 대한 생각을 했어. 과연 내가 무엇을 놓쳤길래 어떻게 머물렀을까? 사람과의 관계를 벌리는 크레바스 같은 지점이 페퍼로니일까?


관계의 크레바스.

사람과 사람의 사이에 있는 크레바스에서 왔다는 그것. 이 소설 정말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서화담의 일화, 나인가 너인가 우리인가에서 우리가 되지 못하는 그 일화는 주제를 부각하기 위한 적절한 에피소드였다고 생각해. 기오성과 채은경이 '우리'로 나아가지 못한 관계니까.


그들이 노교수의 족보 작업을 하는 것부터가 기존의 분류체계를 거부하는 것이라 읽혔다. 기존의 뿌리에서 찾을 것이 아니라 내가 나의 뿌리가 된다든지, 나만의 뿌리를 가진다는 새로운 '나'의 개념을 떠올리며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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