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험을 통해 만들어가는 N개의 체화당
체화당은 어떤 곳이었을까.
공간은 각자에게 다양하게 해석되고 그에 따라 활용되기 때문에 20년 동안 100여 명의 운영진들이 거쳐 가면서 체화당을 설명하는 다양한 수식어들이 있어 왔다. 오랜 시간 체화당에 있다 보니 체화당이 뭐냐는 질문을 수도 없이 받아왔고 어떤 대답을 했는지 지금 와 가만히 생각해보니 흥미롭게도 단 한 번도 같은 내용으로 설명한 적이 없었다는 것을 새삼 알아차리게 된다. 다른 시간 속에서 체화당은 다르게 읽혀지기도 했다.
체화당의 첫 수식어는 ‘북까페’였다. 그 뒤로 마을카페라는 수식어가 붙기도 했고, 공유공간, 네트워킹 카페, 대안문화공간 등 다양한 수식어들이 체화당을 설명하고 있었다. 그리고 어느 샌가 체화당 로고에는 open, local, culture가 따라붙기 시작했는데, 이 중 ‘open’은 아지트나 동아리방인 것 같아 쉽게 접근할 수 없다는 일부 피드백을 의식해 체화당이 열린 공간으로서 개방성을 강조하고자 했다.
아래 표는 체화당 안팎의 문건이나 언론 보도에서 체화당을 소개하는 말들을 취합, 공간과 운동으로 분리해 정리해 보았다.
우리 안에서 체화당을 소개하는 말들은 참으로 다채로웠다. ‘경험’과의 관계 속에서 체화당 공간의 개념이 이해될 수 있었는데, 여러 사람들이 이 공간을 매개로 자기 일감을 실행하다보니 자연스레 일감의 결이 다양한 스펙트럼 속에 놓여 있는 특징을 갖게 되었다. 겹겹이 다른 특징을 띄고 있는 지층처럼 말이다. 그래서 체화당의 일감이 전형적인 마을공동체사업으로도, 청년 프로젝트로도 읽히지 않았기 때문에 누군가는 마을 공간으로, 또 누군가는 청년 공간으로 보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이 종합성을 체화당의 성과라고 본다. 때문에 그 경험을 지닌 사람들이 지금 각자하고 있는 일들을 추적하고 그 안에서 체화당이 준 기억의 원형을 복기할 때 그 성과가 가장 잘 드러날 것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이현지 지기를 포함한 일부 운영진들은 체화당이 명확하지 않는 것을 매력임과 동시에 우유부단함이라는 한계를 지적하기도 했다. 체화당 공간의 정체성이라는, 좀처럼 결론 짓기 어려운 이 주제가 20년 내내 모두를 신경 쓰이게 하고 지치게도 하면서 힘든 점도 많았다. 2004년 10월 처음으로 열린 체화당 포럼에서 오고간 이야기들은 이 부분에 대한 절박함과 극복에 대한 의지를 고스란히 담고 있었다. 그래서 좀 더 상세히 설명되거나 명확히 했으면 좋았을 거라는 생각이 들지 않았던 것은 아니지만, 다른 한편으로 이 장소의 컨텍스트 부재로 크게 맥락을 의식하지 않아도 되었기 때문에 각자가 부여한 정체성과 고민을 거쳐 프로그램을 진행하며 체화당을 규정해나갔던 것자체가 훨씬 가치 있었던 건 아닐까. 유동적이었기에 실험 공간으로 가능했고, 잠재적인 가능성을 늘 품을 수 있었다고 말이다.
체화당의 운영진을 모집하는 포스터, 전단지등의 외부 홍보자료들을 토대로 종합해볼 때 체화당의 역할은 크게 다음의 세 가지로 압축될 수 있었다.
우선 체화당은 신촌민회(지역논단)의 자리(광장)이자, 풀뿌리사회지기학교 교정이기도 한 까닭에 이 두 가지를 장소 제공과 활동비 이 두 가지를 지원하는(supporting) 역할이다. 이처럼 체화당 처음의 구상에는 수익금 일부를 이들 일감들의 활동비로 지원하는 역할도 함께 들어가 있었지만 말처럼 쉽지만은 않았다. 대신 20년 동안 주로 공간 지원이나 이들과의 프로그램 공동 진행 등의 형태로 진행되어왔다. 한 예로 2006년 <오래된 미래>의 저자 헬레나 노르베르 호지의 방한 일정 속에서 정동욱 매니저로부터 네팔에서 강연 요청을 받은 ‘오랜 약속’을 지키기 위해 신촌을 찾았다. 풀뿌리사회지기학교 주최로 연세대학교 캠퍼스에서 강의 후 체화당으로 자리를 옮겨 뜨거운 토론 자리를 가졌다.
그리고 그 무엇보다 체화당이 이 두 일감에게 가장 크게 기여한 부분은 체화당이 버티고 있었기 때문에 계속적으로 혹은 언제라도 멈춘 자리에서 다시 시작될 수 있었다는 것이다. 일감이 만족스러운 성과를 이뤄내지 못했을 때 또는 흐지부지 되고나서도 지역에 있었던 그 움직임들이 쉽사리 사라지지 않고 축적되어 유지하고, 그래서 언제든 다시 싹을 틔울 수 있는 토양을 체화당이 늘 제공해왔다.
둘째, 여느 카페와 마찬가지로 카페 운영을 통해 수익을 창출해 내는 것이다. 체화당의 초기 구상을 담은 문건을 보면 카페는 재정을 확보하기 위한 첫 걸음으로 상정하고 있었다. 때문에 종종 커피 맛이 강조되기도 했다. 하지만 단 한 번도 간사의 자격 요건으로 커피 능력이 요구된 바가 없는 아이러닉함을 갖고 있었다.
셋째, 하나의 대안카페운동으로서 조직하는(organizing) 일이 될 것이다. 관계망 형성이 지속적으로 강조되고 있는 초기 체화당 작업들을 미루어볼 때, 다양한 프로그램을 통해 조직하는 일은 체화당의 주요한 역할이었다. 조직하는 일은 애초에 사회적인 실험의 일환이자 그 장소로서 제안되고 시작된 체화당의 가장 핵심적인 목적 사업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커피 체인점이 상업성과 편의성을 기반으로 한다면 그와 다른 북 카페(체화당)는 다양한 주제별 토론과 강연을 통한 참여, 청년문화를 무기로 할 수 있어야 한다는 발상이 이 같은 목적 사업이 오히려 다른 카페와의 차별화 요소로서 비즈니스 모델이 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로 이어지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