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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레봄 Oct 21. 2024

내릴 수 없는 레일 위에서는...?

여행 2일차 -5 @ 양양 더앤리조트

와이프에 대한 안타까움에,

그동안도 거듭했던 이야기를 또 꺼낼 수밖에 없었다. 


"자기야, 저번에도 이야기했는데, 

감정분리 해야 돼, 진짜로! 감.정.분.리."


"그게 잘 안 된다고~~"


"아고 그럼, 잘 안 되지. 그렇게 쉽겠어?

근데 그건 '되는 게' 아니라, '하는 거'야. 

저절로 되는 게 아니라, 억지로라도 하는 거라고."


감정분리라는 거, 이제 웬만한 직장인은 다 안다. 

하지만, 그게 쉽지 않다는 것도 모두가 안다. 

그래도 어쩌겠는가, 와이프가 그런 지경이면 

같은 말을 백번이라도 더 하지 않겠는가. 


"일도 끝나는 게 아니라, 끝내는 거라잖아, 

그거랑 똑같이 되기를 기다리지 말고, 해야 한다고. 

잘 안되면 그게 속으로 외워, 

“네까짓 게 뭔데, 내 소중한 기분을 망치려 들어? 

웃기지 마, 나 그런 거에 꿈쩍도 안 해, 

너 따위가 감히 어떻게 내 기분에 끼어들어?

난 그냥 내 기분 좋게 내 인생 살란다" 뭐 이런 거. 

하유… 그래야 되는데… "


내게 감정분리는 보통 일과 연계되지 않았다. 

일과 나는 '거리 두기'가 필요한 일이고, 

내가 일을 하는 데 스트레스를 주는 요인들과 

'감정분리'를 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그리고 직장 후배들에게 하지 않던 말까지 덧붙인다. 


"자기야, 그리고 이건 내가 혼자 쓰는 방법이긴 한데, 

내가 나답지 않은 마음이거나 그런 결정을 하려 할 때, 

특히 막 비겁해지려고 하거나, 너무 흥분을 하거나, 

암튼 막 이상하다 싶을 때 쓰윽 뒤돌아서 혼자 생각해.

'난 또또 아빠다. 또또가 보고 있다. 

이런 아빠를 또또가 보면 뭐라고 할까?” 

TV 드라마처럼 또또가 아빠를 봐도 

왠지 부끄럽거나 쪽팔리지 않을까 하는 생각. 

안 그러면 진짜 깽판 칠 거 같을 때도 있어, 도망가거나. 

자기도 한번 해봐, '난 또또 엄마다'"


이게 장단점이 있는데, 스스로 당당해지는 선택을 하게

용기를 준다는 장점이 있지만, 반면, 그렇지 못할 때, 

떳떳하지 못하다 싶을 때는 아무도 뭐라 안 하는데 

혼자 아주 엄청난 죄책감에 빠지게 될 때도 있다는 것.

죽고 싶을 만큼 쪽팔릴 때도, 후회될 때도, 

아무도 몰라줘도 스스로 대견하고 기특할 때도... 


이런 대화를 나눈다고 해결해줄 수 있는 건 없다.

하지만, 와이프 스트레스 관리가 중요한 내게는 

내 숙제를 풀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되었다. 

몇 달 전부터 알던 문제를 함께 붙어서 

오래 시간 제한 없이, 이런 여행을 기회 삼아,

한없이 한풀이도 하고, 한없이 잔소리도 할 수 있었다.

그럼에도 답을 찾기는 힘들다. 

그건… 상사가, 회사가, 세상이 

아직도 비겁한 사람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아휴... 어렵다, 정말...

또또야, 아빠는 맨날 저렇게 자기도 못하면서..."


내 잔소리를 멈추게 하고, 또또가 소외감 느끼지 않게 

하려고 와이프가 말머리를 슬쩍 내게로 돌렸다. 


"맞아. 맨날 아빠 말만 맞아", 또또가 호응하자 


와이프와 딸의 아빠 한탄이 시작되었다. 

아빠는 맨날 자기도 못하면서 대꾸할 수도 없게 

'맞는 말'만 해대는 '1급수 병'에 걸렸다느니,

'아재개그 좀 그만해라', '잔소리를 짧게 해라' 등 

둘이 아주 쿵작을 잘 맞추며 아빠를 궁지로 몰았다.


하지만, 이미 진심으로 서로를 걱정하고 아껴주던 

마음을 확인해왔던 터라, 그 잔소리마저 정감 어렸다. 

나 역시 퇴사 후 1년째가 되어가던 여름, 

장인어른 병환이 차도를 보이던 그때쯤, 

앞으로 개인적 진로에 대한 고민이 깊어져 

가족회의를 하며 응원과 위로를 많이 들었던 터였다. 


이직을 통해 인생 2막을 준비하고자 퇴사했지만,

가족일을 포함한 이런저런 일로 이직보다는 

새로운 진로에 더 비중을 둘 수밖에 없던 내게, 

가족들은 그 1년이 헛되지 않았다고, 

앞으로도 그 자리에 계속 있어주면 좋겠다고... 

항상 이게 잘 한 결정일까? 고민할 수밖에 없는 

나에게 가족의 지지는 어마어마한 힘이 있었다. 


물론 가족의 지지가 있음에도 스스로는

퇴사를 통해 20년 경력의 회사를 나오던 때에도, 

이직을 잠시 중단하기로 결정했던 때에도, 

그러다 이직 중단 사유가 점점 좋아져서 

다시 진로를 새로 고민해야 하나 싶은 지금도, 

'이게 잘 한 결정일까? 앞으론 어떻게 할까?'

고민을 계속할 수밖에 없는 것 같다. 


지금도 어쩌면 과거와의 단절에만 신경 쓰다가 

미래와 조우하기 어려운 곳에 서있는 건 아닐까? 

후회하기 싫은 과거, 후회하고 싶지 않은 현재…

그러면 나는 이제 와서 어떻게 또 살아야 되는가? 


20년 경력에서는 그래도 인정받던 커리어였는데, 

다시 20대로 돌아간 것 같이 진로를 고민하게 된다.  

나이가 들어서도 아직 어린것 같고, 

경력이 있어도 아직 서툰 것 같고, 

뭔가 아는 거 같으면서도 아직 모르는 것 같다. 

쩝... 사실 그게 새롭고, 싱그럽고, 설렐 때도 있다. 

실제로 20대가 아니기 때문에 더 불안할 때도 있다. 


하지만 이제는 내릴 수 없는 레일 위에 올라탄 것으로 

생각하려고 한다. 그렇게 생각하고 매일 달린다. 

이 방향이 FIRE족으로 이끄는 운명인지, 

망할 길인지 모르지만, 달려보지 않고서는

더 모를 수밖에 없는 일이기에... 

새로운 길이지만, 이제 내릴 수 없는 레일 위에 

올라탄 기차처럼 우물쭈물하지 않고 가는 수밖에... 

'우물쭈물하다 이렇게 될 줄 알았다' 

그 비문처럼 되지 않으려면... 


여행 2일차, 혼맥 한 캔 타임도 그렇게 정리했다.

날씨는 뜨겁지만 맥주는 차갑고, 

머리는 복잡해도 마음은 단순하고, 

할 일은 많아도 마음은 여유롭게... 


Song : TOMBOY 

– 혁오 (작사 : 오혁/ 작곡 : 오혁, 카더가든)


난 엄마가 늘 베푼 사랑에 어색해

그래서 그런 건가 늘 어렵다니까

잃기 두려웠던 욕심 속에도 작은 예쁨이 있지


난 지금 행복해 그래서 불안해

폭풍 전 바다는 늘 고요하니까

불이 붙어 빨리 타면 안 되잖아

나는 사랑을 응원해


젊은 우리, 나이테는 잘 보이지 않고

찬란한 빛에 눈이 멀어 꺼져가는데

아아아아아-


슬픈 어른은 늘 뒷걸음만 치고

미운 스물을 넘긴 넌 지루해 보여

불이 붙어 빨리 타면 안 되니까

우리 사랑을 응원해


젊은 우리, 나이테는 잘 보이지 않고

찬란한 빛에 눈이 멀어 꺼져가는데


그래 그때 나는 잘 몰랐었어

우린 다른 점만 닮았고

철이 들어 먼저 떨어져 버린

너와 이젠 나도 닮았네


젊은 우리, 나이테는 잘 보이지 않고

찬란한 빛에 눈이 멀어 꺼져가는데

여행은 다음 편으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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