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2일차 -4 @ 양양 더앤리조트
귀화 선수에 대한 시선도 정답은 없는 듯싶다.
뚜렷한 기준도 없고, 동일한 여론도 없어 보인다.
'우리나라 사람', '우리나라 국가대표' 등
'우리나라'의 개념을 어떻게 생각할지 궁금했다.
"음… 어차피 잘하는 사람 뽑는 거 아냐?
뽑혀서 외국 나가면 또 경기에서 붙게 될 텐데,
외국 나가서 지나, 우리나라에 와서 지나 똑같지.
여기서도 이겨야 외국 나가서도 이기지..."
선발전을 뛰어서 귀화선수가 이기면 인정하겠단다.
어차피 국제대회에서 또 붙게 될 선수니까,
이기든 지든 국내에서 승부를 보고,
이긴 사람은 뽑히고, 진 사람은 여기서 미리 지고...
해묵은 '1등, 금메달 지상주의'처럼 볼 수도 있지만,
또또에게는 궁극적으로 세계적 경쟁이 중요하지,
국가대표를 두고 귀화냐 아니냐는 중요하지 않았다.
잘파세대들이 생각하는 '세상'의 범주가 확실히
나 어렸을 때보다는 크고 넓어 보였다.
"그리고... 잘하는 사람이 우리나라에 왔으면 좋겠어"
또또가 뒤늦게 생각난 듯 이야기를 덧붙였다.
"그건 무슨 말이야?"
"우리나라 이미지가 있는 거잖아?
그게 좋아지게 이기는 사람, 잘하는 사람이
왔으면 좋겠다고..."
"또또라면 이겨서 뽑히고도 싶지만,
내가 지더라도 나 대신 올림픽 나가서
이길 수 있는 사람이 왔으면 좋겠다고?
근데 왜 우리나라 이미지야?"
"우리나라 이미지가 지금 좋잖아,
근데 귀화해서 이미지가 안 좋아지면 별로..."
확실한 실력으로 '이기는 선수'여야 인정도 하고,
이겨야 '우리나라 이미지'에도 도움이 되고....
뒤집어보면, 국내 선수들도 인정할 수밖에 없고,
외국에서도 우리나라 경쟁력을 보여줄 수 있는
선수를 받아야 한다. 또또의 귀화 조건이 까다롭다.
하지만, 그런 선수는 왜 우리나라로 귀화를 해야 하나?
우리는 과연 그런 선수에게 무엇을 줄 수 있을까?
아직은 또또에게 어려울 질문,
하지만 조만간 이런 질문을 하게 되지 않을까 싶다.
실제로 농구만 보더라도, 국제 대회 경쟁력을 위해서
외국 선수를 귀화시켜야 한다는 주장을 하면서도,
정작 국내 리그에 들어가면 생태계 교란종에 가까운
귀화 선수 처우에 대해 고민이 깊어질 수밖에 없다.
기량이 좋을 때는 기존 국가대표 기준보다
더 돈을 많이 주는 계약을 하면서까지 데려오고,
기량이 안 좋을 때는 국가대표 계약 파기와
국내 생태계 교란을 막기 위해 리그도 못 뛰게 되는...
한국을 사랑한 나머지 한국인을 선택한 게 아닌 경우,
과연 나라를 선택한 귀화인가?, 돈 받고 뛰는 용병인가?
현재도, 앞으로도 이 문제는 계속 나올 것 같다.
저녁을 먹으며, 올림픽 중계도 보며,
대화도 나누는 야외 수영장 썬배드 시간이
나름 '이게 여유다!" 싶은 한 장면을 만들어주었다.
하지만, 와이프는 그 와중에도
혼자 심각하게 전화를 받고 왔다.
"자기는, 이제 오늘 회사 전화는 다 했어?"
어제오늘 휴가 중에도 계속 전화가 울려대는
와이프가 안쓰러워서 물었다.
"에효… 몰라. 정말 미친 거 같아…"
와이프는 요새 직장 사무실의 한 빌런 때문에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고 있었다. 너무 안타까운 상황.
뒷담 같아서 구체적으로 말은 못 하겠지만,
이 빌런의 유형은 '나 혼자 정의의 사도'형,
돈키호테가 풍차를 악당으로 여기듯
나 혼자만의 정의를 위해 동료에게 칼날을 들이댄다.
그 착각에 빠져 살다 보니, 남들과 괴리가 커져만 갔다.
'정의의 사도'도 아닌 자가, '풍차'도 아닌 나를 향해,
내게 말하는 것이 아니라 동네방네 '크게 소리치며',
다른 것도 아닌 '칼날'을 세우고 달려오고 있으니...
실재하는 것은 '칼날' 하나밖에 없는 위험 상황.
동료들, 직속 상사들, 나아가 책임자, 인사팀 등
수많은 '동료'들이 '풍차'가 되어 처리 곤란인 상황.
그 빌런이 착각을 계속하게 만드는 원인도 있지만,
각설하고, 돈키호테가 귀여운 비유인 편이었다.
"어제 차에서도 전화했었잖아...
그런데, 그게 아무도 손을 못 대, 아니 안 대"
"그러게, 누가 나서려고 하겠어?"
"아니 그러니까…
그래도 책임자라는 사람이 결단을 내려야지.
아무도 안 나서니까 모두가 피해를 보는데… "
"그래, 그렇다고 혼자 잔다르크 하지 말고…
자기는 할 만큼 했잖아."
"그래도 너무 스트레스야. 아직도 무서워."
와이프는 이미 큰 정신적 고통을 회사에 호소했다.
사무실 커피머신을 못 쓰겠다고, 뭐라도 탔을까 봐.
지하에 주차를 못 하겠다고, 어두운 데 쫓아올까 봐.
와이프뿐만이 아니었다. 게다가 대부분 중증이다.
나도 광고대행사를 다니면서
일부 진상 광고주의 갑질과 무리수에
스트레스받는 일의 연속이었고,
그 와중에 '나 몰라라~' 하는 상사까지 겹치면
온몸으로 스트레스를 받아내는 방패막이가 되었다.
스트레스성 다발성 원형 탈모가 터진 적도 있었다.
머리에 50원, 100원, 500원짜리 동전만한 탈모가
하나도 아니고 예닐곱개가 터져버렸고,
그걸 발견한 날 아내는 '으악!' 소리를 질렀다.
손가락 끝에 만져지는 두피가 미치도록 짜증 났었다.
암튼 스트레스가 그렇게 무섭다는 걸 알고 난 후,
나는 내 몸이 보내는 신호에 예민해지려고 노력한다.
아내도 암 판정으로 몇 차례 전신 마취 수술을 겪고,
지금 산정특례기간이 끝났지만 재발 방지를 위해
스트레스 관리에 신경을 많이 써야 하는 상황.
아버지 병환에, 직장 스트레스까지 겹쳐 버린
와이프 걱정을 많이 하고 있었다.
"자기야, 알잖아, 그 스트레스 안 없어져.
가만히 둔다고 없어지지 않는다니까"
"그럼 어떻게 해야 되냐, 정말?"
아내의 한숨이 깊었다. 이해한다.
처음에는 나도 좀 쉽게 받아주곤 했다.
"빌런총량제 알지? 어디나 빌런은 꼭 있기 때문에,
사무실에 빌런이 보이면, 그건 잘하고 있는 거래.
만약 사무실에 빌런이 안 보이면, 그 사람이 빌런이래.
그러니까 자기는 잘하고 있다고 생각해" 라거나,
"사무실에서 다들 그런 정도면, 회사가 조치할 거야.
아니, 문제가 명확한데, 왜 그걸 그냥 두고 문제를 키워?
자기는 정확한 문제점과 자기가 원하는 방향만
윗사람들에게 정확히 이야기하면 돼" 라거나...
하지막, 역시나 쉬운 일이 아니다.
직장 후배들과도 이런 고민을 많이 나눴지만,
결국 퇴근 후 술자리까지 이어져도 풀리지 않을 때가 많다.
이 안타까운 상황에 무슨 말을 할 수 있을까?
여행 와서 허심탄회하고, 길게 이야기할 수 있을 때,
회사 조치는 못 해줘도, 마음 조치는 좀 해주고 싶은데...
여행은 다음 편으로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