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2일차 -2 @ 양양 더앤리조트
"동해안이 거기서 거긴데, 왜, 갑자기
딱 양양만 서핑의 도시가 된 걸까?"
"꽤 되지 않았어?" 와이프는 반문했고,
"원래 그런 거 아니었어?"
또또는 이미 기정사실로 받아들인 상태였다.
"자기야, 검색 좀 해봐 봐"
"음... 블로그에 보면,
양양은 파도가 좋아서래, 갈라지지 않는대.
그리고 잔잔해서 초보 입문하기 좋다네.
모래도 좋대. 파도가 안정적으로 오고 뭐...
그리고, 이국적 서퍼풍 맛집도 많아서...
뭐 이런 이야기만 있네. 특별한 이유라기엔...
근데, 서핑하는 사람들이 모이기 시작하고,
그게 재미있어 보이니까 또 모이고....
놀러 갈 데 없으니 재미있는 데 발견하면
SNS에 올리고, 그거 보이면 또 모이고...
결국 SNS가 다 만든 거 아니겠어?.. "
"오올~"
SNS를 통한 유명세 덕분이라는
엄마의 진지한 분석에 딸 또또가 동의했다.
"아니 근데 난 잘 모르겠거든.
오빠 기억에는, 예전에 TV에서 연예인이
양양에서 서핑한다는 이야기가 처음이었거든.
근데, 동해안이 비슷하겠지 뭐
양양만 파도나 모래가 얼마나 다르겠어?
혹시 지자체가 나서서 뭘 했나,
SNS에서 진짜 자연발생적으로 유명해졌나?
생각해 보면, 신기해"
"아빠는 맨날 진지해..."
"또또야, 여행은 평소에 못 보던 거 보면서,
평소에 안 하던 '다른 생각'하는 거야,
다른 생각, '딴 생각'! ㅋㅋ
아빠는 양양이 서핑에 얼마나 좋은지는 몰라도,
완전 영리한 거 같아, 잘 먹혔어.
아니 도시 이름 대면 딱 떠오르는 뭔가가 있다,
이런 데가 어디 있어? 죄다 지명, 유적지지....
양양하면 서핑, 이건 대박인 거야, 또또야"
사실 브랜딩을 고민해 봤던 사람이라면,
이런 연상 하나 만들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잘 알 것이다. 게다가 도시 브랜딩이다.
양양이 어떤 연유로 서퍼의 도시로 널리 퍼졌는지
결정적 원인은 모르겠으나, 그 자체만으로도
반가운 사례가 아닐까 싶다.
하지만, 아쉽게도 우리의 준비 부족으로 인해
서퍼의 도시 양양에서 서핑 배우기는 다음으로 미뤘다.
수영복 차림 그대로 리조트 수영장으로 향했다.
"또또, 시작!"
또또는 이제 수영을 여유 있게 잘한다.
접배평자(접영, 배영, 평영, 자유형)를 넘나 든다.
이른바, '배운 수영' 티가 난다. 지금껏 보낸 학원 중
엄빠의 만족도가 제일 높은 것은, 평생 안 까먹고
평생 건강하게, 평생 즐길 수 있는 수영이다.
"이야, 이제 진짜 잘한다.
아빠 목 꼬옥 끌어안고 놓지도 못했었는데…."
"ㅎㅎㅎ 이젠 내가 더 잘하지?
아빠가 구명조끼 입고 그래야겠지? ㅋㅋㅋ..."
반면에, 엄빠는 물 밖 호흡을 두세 번 하면 끝난다.
숨이 차서 또또를 수영으로는 따라가지도 못한다.
또또는 수영장 몇 바퀴를 여유 있게,
안 가라앉나 싶을 정도로 편안하게 돌아다녔다.
물속에서 공중제비, 아니 수중제비를 돌면서
턴 연습도 하고, 기록재기도 하며 놀았다.
수영으로 몸도 식혔고, 라면으로 배도 채웠으니,
이제는 다른 놀거리. 온천탕으로 갔다.
아까부터 눈에 뜨이던 오두막 스타일의 한증막.
스웨덴 한증막이란다. 작지만 후끈 달아올라 보이는
안을 바라보며 딸과 실랑이가 벌어졌다.
"가보자, 또또"
"아, 더워"
"지난번에 찜질방 가서도 아빠랑 제일 뜨거운 데
탕에 가봤잖아. 잘했잖아."
"아니 근데 거기도 금방 나왔잖아."
"ㅇㅋ 그러니까 이번에도 딱 30초만.
아빠가 크게 세어줄게"
"30초... 아빠 늦게 세면 안 된다. '반의 반' 이런 거 안 돼!
들어가서 너무 더우면 바로 나온다"
조건부 합의로 한증막 입성!
숨을 턱! 차게 만드는 열기를 삼키고 숫자를 셌다.
"하나, 둘, 셋, 넷, 다섯… "
오홋… 처음에는 발바닥을 뜨거워하더니
이내 버둥거리지 않고 잘 참는다.
"… 스물아홉, 서른, 서른하나, 서른둘…"
참을만한가 보다. 서른이 넘어도 가만히 버티고 있었다.
"…. 아흔여덟, 아흔아홉, 백!,
오올~ 또또.. 이제 나가자."
아빠가 계속 세니까 참을만했는지,
같이 기다렸나 보다. 진짜 많이 컸다 ㅠㅠㅠ
한증막 밖을 나오니, 공기의 느낌이 바뀌었다.
후덥지근하던 공기가 시원하고 개운하게 느껴졌다.
열린 땀구멍 사이로 시원한 바람이 들어오는 듯했다.
옆 온천탕으로 들어가 이 아이러니를 나눴다.
"시원하지, 그지? 그지? 아까는 더웠는데….
이런 걸 뭐라 그래, 사자성어로?"
"나 알아… 이열치열."
"오오, 정답! 잘했어. 이래서 사람이 참 이상하다니까.
그럼 또또야, '추위를 추위로 이긴다'는 뭐라 그래?
"음… 이냉치냉? ㅋㅋㅋ"
"하하하~~~" 찐 웃음이 터졌다.
"이 냉면 먹고 저 냉면 먹는 거야? 이냉치냉이 뭐야?"
"아니, 그런 게 있어, 만화에.
그 이냉으로 뭐 했다고 하는 거… 그래서..."
"그래? … 근데 ‘냉’ 말고 다른 한자야. 추울 0(땡)!"
"몰라... 뭔데?"
'이한치한'이 중요한 건 아니었다. 오답이지만,
뭘 바꾸고 어떻게 바꿔야 하는지만 알아도
아직은 괜찮을 나이.
"아빠, 이제 수영장 가자, 탕 다 돌았잖아."
색색이 다른 온천탕을 쭈욱 돌고, 다시 풍덩!
이열치열의 효과를 느끼려는 듯 더 힘차게 풍덩!
"저, 수영모자 써 주세요."
안전요원이 다가와서 조용하게 이야기했다.
"아! 아아... 네네…"
아차, 온천에 들르느라 수영모를 잊고 왔다.
"아빠가 갖다 줄게."
미끄러지지 않게 조심히 걸으면서
찾아와서 조용히 귀띔해 주는 듯한,
청년 안전요원의 태도가 문득 낯설게 느껴졌다.
"자기야~ 수영모자 좀 줘"
"왜? 뭐라 그래?"
"아니, 안전요원이 와서 조용히 귓속말처럼
수영모자 좀 써달라고... "
"아, 정말?"
"일부러 다가와서 조용히 귓속말로... 대박이지?"
"대박이야? 아, 오빠, 안전요원 다 싫어하잖아? "
"다 싫어하지는 않지... 아니 싫은 게 아니지,
안전요원은 별 잘못이 없어요~."
하나 묻고 싶다.
혹시 어린 자녀들 데리고 어디 놀러 갔을 때,
안전요원들의 고압적인 태도에 불만인 적은 없었는지,
안전요원인지 유격조교인지 모를 빨간 모자를 쓴 채
고객인지 훈련병인지 모를 정도로, 삿대질하며
호루라기 삑~삑~불어대서 놀랐던 적은 없는지,
1미터도 안 되는 풀장에서 애들을 품에 안고 다녀도
구명조끼 입어라, 튜브는 안 된다, 아이 키가 몇이냐?
이런 지나친 간섭에 기분 상한 적은 없는지,
그건 둘째 치고, 어디선가 사고가 터지면
안전불감증이니 인재니 이런 기사가 한번 나고,
그 이후에 어떤 후속조치를 느껴본 적이 있는지...
"아니, 우리나라 뭔 사고 나면
맨날 안전불감증 이야기 나오지?
그거 누구 탓이야, 누가 신경 써야 돼?"
내 느낌에 대한 여러 사람의 생각이 듣고 싶던 질문.
여행은 다음 편으로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