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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레봄 Oct 15. 2024

양양은 어떻게 서핑을 잡았나?

여행 2일차 -1 @양양 남애3리 해수욕장 

여행 이틀차, 양양에서 맞는 첫 아침, 

창으로 들어오는 햇살이 이침부터 뜨거웠다. 


"또또야~, 오빠~, 일어나, 일어나야지"


와이프는 우리 가족 중 유일한 '아침형 인간'인데, 

여행 오면 새벽형이 된다. 놀 시간이 아깝단다. 


"오늘, 우리 바다로 나갈까? 

엄마는 또또가 서핑 배우면 좋겠어~ 양양이잖아"


와이프와 또또의 마음은 이미 바다로 향하고 있었다. 

하지만, 나 혼자 쉽게 '그러자'고 하지 못했다. 

하루가 아침도 없이, 낮부터 시작한 듯한 폭염 때문. 

하늘은 파랗고, 녹음은 짙어서 눈에는 예뻤지만, 

필터 끼운 듯 붉게 달궈져서 몸에는 뜨거웠다. 


게다가 어제 본 기사와 블로그가 마음에 걸렸다. 

'올해 동해 바다에 해파리에 쏘이는 사고가 많다'는 것.  

올해 해파리 사고가 여름이 채 다 가지도 않았는데, 

지난 3년간보다 많이 발생했다며, 해변에서 발견된 

죽은 해파리 사진까지 싣고 있었다. 반면, 그래서 

해파리 방지 그물망을 설치했다는 뉴스는 단신일 뿐.

걱정했다. 걱정을 끝내러 왔는데, 

다시 걱정거리가 생기면 안된다는 걱정. 

나이가 들어서 겁이 많아진건가? 


"래쉬 가드 입을거니까 괜찮아, 

일단 가서 보고, 아니다 싶으면 오면 되지, 뭐. 가즈아!"


와이프의 호기로운 외침에 수영복을 챙겨입고, 

숙소에서 가장 가까운 남애3리 해수욕장으로 갔다.


사실 우리나라 해수욕장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특히, 물이 급하게 깊어지는 동해안은 더더욱. 

무엇보다, 맘 편하게 놀기에 너무 불편했다. 

미어터질 듯 수많은 사람들, 햇빛을 피할 곳도 없고, 

왜 돈을 내야하는지 모를 자리세에, 비싼 대여료에, 

놀고나서 샤워하기에도 마땅하지 않고.....

해수욕장까지 왔다가 그냥 돌아간 경험이 대부분, 

어쩔수없이 놀다가 선글라스를 잃어버리기도 하고, 

애 안 잃어버린 게 다행이다 싶기도 하고.... 등등. 


그런데... 


"와~~ 대박! 자기야~ 여기 완전 좋아!

물도 깨끗하고, 고기도 있어, 

또또야 여기 고기 고기, 보여? 여기 여기…"


반전! 

시험삼아 또또 손을 잡고 무릎까지 들어갔던 

와이프가 호들갑스럽게 외쳤다. 

'물에 발 한번 담그면, 여기서 못 놀겠다 하겠지'...

라는 생각에 나는 해변에서 멀찌감치 떨어져

돗자리를 펴고, 햇살에 눈이나 찌푸리고 있었다. 


"아빠, 들어와!" 


와이프와 딸의 강권에 바다로 발을 한 발 들였다. 

오!! 바닥까지 보이는 깨끗하고 투명한 바닷물, 

발가락에 뭐 하나 안 걸리고 빠져나가는 하얀 모래, 

바다로 한참 걸어도 평탄한 높이에 잔잔한 파도…


"자기야~ 옛날 동해가 아니야. 

이 정도면 동남아랑 똑같지 않아?"


"오~ 이게...진짜 그렇네, 인정!...

여기만 그런거야? 우린 여태 어딜 다닌거야?"


인정할만했다. 그동안을 안 좋아했던 나로서도 

최소한 그 날, 그 해수욕장, 그 바다는 100% 인정!

몸을 담가 수영도 하고, 물장난도 하기 시작했다. 

땀도 식고 몸도 시원해지고 머리도 개운해졌다. 

그제서야 천천히 주변이 보이기 시작했다. 


@ 양양 남애 3리 해수욕장 (자체 촬영)


'남애항. 동해 3대 미항이라 불리우는 곳.'


소개글에 적혀있던 남애항이 저긴가 보다. 

방파제와 등대가 깔끔했다. 낙조가 더 이쁘다던데...

'3대 미항'까지는 잘 모르겠다. 내 기준이 없어서...  


해수욕장 파라솔은 가지런했고, 먹거리도 있고, 

노골적인 장사속이 보이는 불편도 느끼지 못했다. 

해수욕 즐기는 사람들은 올망졸망 신났고, 

바나나보트에 탄 사람들 환호가 종종 덮였다. 


해수욕장 왼쪽 편으로는 

서핑을 진지하게 가르치고 배우고 있었다. 

몇 해 전, 양양에 왔을 때부터 서핑이 참 특이했다.

서핑은 사실 하와이 여행때나 보았던 해외의 전유물. 

저 세상 취미였다. 바다 수영이 가능한 사람들이 

파도가 높은 해외 바다에서나 즐길 수 있기 때문.  


'그런데, 이게 우리나라에서 가능하다고? 이게 되나?'


얼마전부터는, 회사 후배들 중에도 휴가 다녀와서 

'이번에 서핑 해봤어요' 하는 말들을 들을 수 있었다. 

친한 한 후배는 서핑이 너무 재미있었다며, 

자기가 소질이 있는 거 같다며 동영상도 보여줬다. 

그런데, 무릎 높이 바다에서 보드 위에 서기만 하는 

연습 뿐이었다. 그래서, "아니, 이 높이면 우리 동네 

앞 하천에서 해도 돼. 우리 동네로 오든가..." 놀렸고,

후배는 "아니, 서핑의 일도 모르니까 하는 소리"라며 

되받아치던 기억도 있다. 서핑으로 대화까지 나눈 셈. 


우리나라 동해안도 해외 못지 않게 깨끗하고, 

콩나물 시루같던 예전과 비교도 안 되게 놀기 좋아졌고,

물장구를 넘어서 서핑으로 파도를 타는 수준이 되었다. 


모든 새로움을 못 봤던 건 결국 나의 선입견 때문이었다. 

동해는 바뀌어있었다. 아니 우리나라가 바뀌어 있었다. 

어쩌면 결정적으로 내 생각이 바뀌어있었다. 


'나 혼자 완전 라떼는... 이었구만' 


나이를 먹는다는 건 계속 과거에 사는 것인가 보다. . 

과거를 미화하고 되새김질하면서 오늘을 산다는 건 

나이가 들어 나아가는 게 아니라, 

나이를 먹어 그 안에 머무는 것 같다. 

경험이 많으니 그 많은 경험 속에서만 답을 찾으니, 

새로운 경험이 생기고, 새로운 답이 나올 리가 있나. 

반성 끝에, 오늘 새로 본 것은 "동해 바다"였다.


해수욕을 오래 하려고 작정하고 준비한 것은 아니어서, 

이른 오후쯤 짐을 챙겨 빠져나왔다. 


"오늘 하루 동남아 리조트 갔던 때처럼 놀자고."


"이예!!" 


또또는 까만 얼굴로 또 한번 환호했다

사실 이 얼굴 한번 보겠다고 여행 다닌다. 

또또 어렸을 때는 와이프와 그런 대화를 한 적도 있다. 

우리는 해외여행 온 게 아니라, 해외 수영장 온 거냐고? 

해외 다녀오면 수영장밖에 기억이 안 나 ㅠㅠㅠ 


뛰어놀던 그 분위기 그대로 차를 타고 

숙소로 돌아오는 길에 문득 물었다. 


"자기야, 서퍼비치는..."


"서피비치!!"


와이프가 정확한 명칭으로 바로잡아줬다. 


"서피비치? 서퍼비치 아냐? 

아니, 근데 언제부터 양양에 서핑이 유명했지?"


양양은 정말 언제부터, 왜, 서핑의 도시가 되었을까? 

세 가족 모두의 생각 회로가 돌아가기 시작했다. 


여행은 다음 편으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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