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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레봄 Oct 11. 2024

지랄총량제, 예외는 없어, 아빠?

여행 1일차 -5. @ 양양 더앤리조트, 싱글핀에일웍스 

"음... 난 2번… 왜냐면, 억울하잖아. 

죽은 사람도 억울하고, 의심받는 사람도 억울하고, 

만약에 내가 자수하면 전부 다 억울하지 않잖아. 

내가 좀 손해 볼 수도 있는데... 근데, 그게...

안 했다고 하고 싶어도.... 하아... 거짓말을 우기

는 건 좀… 못 할 거 같아..."


진심으로 책에 빠져있다. 그리고, 이 질문에 빠져있다. 

<죽이고 싶은 아이>라는 책을 또또가 집어 들었을 때, 

'아니 무슨 하이틴 소설 제목이 저래?'라고 생각했다.

또또가 후속편인 2권도 사달라고 한 이유도 기억한다.

'소설 속 인물들을 책임져야 해서 2권 쓴 거래!' 

작가 인터뷰도 찾아줘서 탄복하며 읽어보았다. 


소설 속 인물을 책임지기 위해 속편을 내는 작가나, 

그 책임을 확인하기 위해 후속 편을 찾아 읽는 독자나, 

너무 보기 좋지 않은가. 또또가 이런 팬클럽이라면 

100% 환영!!


덕분에, 또또는 '정직'이 소중하다고 새삼 느꼈나 보다.

하지만 막상 그 정직이라는 것이 더 소중해질 만한, 

절실한 순간이 되면 얼마나 큰 용기가 필요한지...,

사회에서는 그 용기가 부족해서 비겁해지는 어른들이

얼마나 많은지 아직까지는 체감하지 못할 것이다. 

누구에게든 비밀이란 그런 것. 그저 정직하기 위해 

필요한 용기의 양을 충분히 가지고 있는 아이로 

커가기만 바랄 뿐....


차창을 뚫는 햇빛과 차가 쏟아내는 에어컨의 싸움 속,

딸이 좋아하는 책, 작가, 느낌을 나누면서 달리는 

양양행 고속도로는 느긋한 여유로움이 느껴졌다. 


"이야, 바다다!... 오래간만에 바다다!" 


양양에서 우리가 묵을 숙소는, 정확히 와이프가 당첨

된 리조트에 도착했다. 큰길을 달리다 샛길로 빠져

숲 속의 외딴섬처럼 나타난 건물은 새로 지은 것으로 

보였다. 아직 주변 도로 정비가 깔끔하지는 않지만, 

더 고즈넉하게 느껴졌다. 여러모로 지친 몸과 마음의 

나사를 풀어놓기에 더 좋아 보였다. 



숙소 열쇠는 늘 또또 담당, 

첫 입실 루틴은 '침대로 껑충 뛰어 올라가기', 

엄마는 숙소 사진 찍기, 아빠는 짐 정리해 두기. 

가족 루틴을 마치고, 일단 저녁식사에 나섰다. 


해외여행은 아니지만, 가장 이국적인 분위기를 낼 수

있는, 그래서 일상에서 벗어난 느낌을 낼 수 있는 곳, 

게다가 양양하면 서핑, 서핑 분위기를 느낄 수 있는 

곳을 열심히 골랐다. 첫 저녁이니까...


@ 양양 싱글핀 에일웍스 (자체 촬영)

하와이 여행의 추억을 떠올리게 하는 곳이었다.  

큰 바다, 큰 파도, 야생이라 느껴지는 서핑, 

그리고 쉬림프 요리를 만끽하던 하와이를 화두로 

가족들의 이야기꽃이 피었다. 늘 딸에게 먼저 초점이

맞춰져야 전체 분위기가 좋아지는 법 ㅋㅋ 


"우리 딸, 고생 많았어. 한 학기 동안."


엄마가 먼저 딸의 노력에 건배한다, "짠~!"

여름방학과 여행 파티의 시작을 알리는 신호! 


"그래, 우리 딸이 제일 잘했어.

전교 학생회장에, All '매우 잘함'까지... 

진짜 할아버지 병원 때문에 엄마아빠가 정신없는데

혼자서 너무너무 잘 해낸 거, 그게 최고로 잘했어! 

한 번도 칭얼거리지 않고!"


"맞아, 할아버지 때문에 엄마아빠가 또또에게 신경을 

많이 못 써준 거 같아서 미안해! 그리고 고마워!" 


"히히... 잘 했져~?

또또는 걱정할 게 한 개도 없쬬?"


엄마아빠의 칭찬을 들으면,

또또의 혀는 살짝 짧아진다.ㅎㅎㅎ 


"또또가 못 해도, 잘해도, 엄마아빠는 늘 걱정이 많아"


"뭐를?" 


"엄마는 우리 딸이 너무 잘해서 계속 잘하려고 

스트레스받을까 봐 걱정이 돼. 사람이 계속 계속 

잘할 수는 없는데, 또또가 스트레스받고, 지치고...

잘못하면 더 힘들어할까 봐."


"맞아, 또또야, 또또가 스스로 난 무조건 기특해야 

된다고 생각하게 될 수도 있어. 그런 말도 있대,   

'Should Be Complex'라고... 무슨 뜻일까? 

영어 잘하잖아. 한번 해석해봐 봐" 


"음.... 복잡해야 된다?" 


"ㅋㅋㅋㅋ 아니 ㅎㅎㅎ 아빠가 잘못했네 ㅋㅋㅋ 

'Should be'와 'Complex'는 띄어서 쓰는 거야. 

콤플렉스는 증후군, 심리… 뭐 이런 거고..."


"?? 그럴만해야... 되는…된다..?"


"오오... 비슷한 거야. 

그래야 한다는 생각에 빠져있는 거. 

난 착해야 돼, 난 말 잘 들어야 돼, 난 싸우면 안 돼. 

난 백점 맞아야 돼… 난 무조건 그래야 된다고 

너무 압박하면 스스로 너무 피곤하게 만드는 거야." 


엄마의 걱정에 아빠가 한 스푼 보탰지만, 

사실 이건 모두 엄마아빠의 성격 때문에 

엄마아빠가 겪은 걱정과 콤플렉스 그대로다. 


엄마아빠는 허심탄회 모드가 발동했고, 

또또도 피자를 손에 든 모습이 해외여행 자체였다.


"쓰읍... 아빠는 요즘 가끔씩 그런 말이 생각나.

인생에서 자식이 속 썩이는 총량이 정해져 있다고."


"지랄 총량제!" 


엄마가 아주 화끈하게 외쳤다. 

또또는 흠칫 놀란 듯 웃었지만, 아빠는 말을 이어갔다.


"응, 그런 거지. 또또가 여태 기특하게 해 왔기 때문에 

혹시 언제 한번 크게 걱정할 일이 오지 않을까 싶은,  

그런 불안이 있어... 작은 골치를 계속 썩여오면 

큰 골치는 안 썩인다는데, 또또는 그런 게 없다가 

폭탄처럼 빵~ 터질까 봐. 그래서 아빠는 가끔 무서워" 


나이 들수록 자식 걱정이 많아지기 때문인지, 

가족 건강 문제로 병원을 드나들다 보니 그런 건지, 

이상하게 가족들에 대한 걱정이 늘어나는 요즘이다. 


"아빠는 또또가 이제 중학교, 고등학교도 가야 되니까,

또또가 잘못한 거라면 모르겠지만, 괜히 사건 사고나,

남에 의해 또또가 피해를 보는 위험에 처할까 봐...

더 무서워질 때도 있는 거 같아." 


"그런데 아빠, 나 생각만큼 그렇게 착하지 않아.

학교에서 나쁜 짓은 안 하지만, 착한 편도 아니거든.


그런데, 아빠... 지랄총량제는 자식들이 그런 거지? 

그러면 예외는 없어? 엄마아빠도 그랬어?" 


지랄총량제, 빌런총량제, 고통총량제... 

인생 전체에서의 씁쓸함의 비중에 대한 비유가

또또에게 향하자 또또가 예외를 선포하는 장면, 

그 불끈함이 감사하지만, 아빠로서는....

예외가 되자고 속 썩이지 말도록 노력하라고 해야 하나?

예외는 없으니 속 썩일 일을 만들어도 된다고 해야 하나? 


여행은 다음 편으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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