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그레봄 Oct 14. 2024

"수고했어, 오늘도!" 지금껏!

여행 1일차 -6. @ 양양 더앤리조트 

양양에서 하와이를 만난 듯했던 저녁이 무르익어갔다.

분위기에 취한 맥주 한 잔이 만드는 나른함이 

일 년 내내 바짝 곤두서있기만 하던 우리 부부의 

예민함을 스르르 풀어내주고 있었다. 


"아빠, 지랄총량제에 예외는 없냐고?"


"지랄총량제에 반대하는 의견이 뭔지 알아? 

행복총량제래! 인생에서 나의 행복도 총량이 있다, 

그 중 자식이 주는 행복의 총량도 정해져 있다는 거지. 

그러니까 행복도, 걱정도 다 그만큼인 거라는 거지."


"그럼, 예외는 없네 ㅠㅠㅠ..."


예외가 되어보겠다고 호언장담하고 싶은 또또의 

마음에는 들지 않는 답변이었나 보다. 


"아니지, 또또야, 아빠가 예전에 하루 중에 

행복한 시간이 불행한 시간보다 1초라도 많아야 된다고 

그랬지, 51:49라도...? 그래야 전체 인생에서 

행복이 불행보다 많아진다고...그게 행복이지, 뭐. 


엄마아빠가 또또에.게.서. 받는 행복을 걱정보다 

하루에 1초라도 더 느끼면 행복량이 많아지고,

그러면 걱정 총량, 지랄 총량이 줄어들게 되지,  

그러면 또또가 예외가 되고... 

대신 우리가 다 하루하루 노력해야지...."


"음... "


아빠의 말에 썩 만족스럽지 않아 하자, 엄마가 거들었다. 


"엄마가 보면, 요즘에 아빠가 집에 있으면서 

또또를 더 많이 안아주고, 이야기도 더 많이 하고... 좋지?"


"응, 아빠가 안아주는 거 죠아!"


"그래서 또또가 사춘기도 빨리 안 오는 거 같고, 

요즘 엄마아빠랑 더 친해지고, 이야기도 많이 하고,

가족 문제에도 또또가 함께 끼어서 같이 한 몫해주고...

아빠 회사 안 가고, 할아버지 아픈 게 남들은 걱정인데, 

우리 또또는 반대로 더 속이 깊어지니까, 

우리 가족은 남들 걱정과 반대로 가니까, 

엄마는 또또가 충분히 예외가 되고 있는 거 같은데..."


"그럼 그럼, 진짜 이런 딸이 어디 있어?"


"ㅇㅋㅇㅋ 쪼아! 알았어. "


'아직까지는...'이라고 누군가는 단서를 달겠지만, 

나와 와이프는 진짜 복에 겨워 웃었다.

딸 칭찬으로 시작한 대화는 대부분 

엄마아빠의 때 이른 노파심으로 마무리되곤 했다. 

오늘도 여전했다, 그것도 한 학기 치를 몰아서 했다. 


그래도 아무런 방해 없이 가족 모두가 하나의 주제에

집중하는 것, 마음을 열고 그간 못했던 이야기들도 

꺼내놓을 수 있는 분위기가 되는 것, 이건 여행의 힘! 


"또또, 이제 잘 준비하자!"


숙소로 돌아와 부랴부랴 샤워를 하고, 

여행 와서야 가능한, 하얗고 뽀득뽀득한 이불을 덮었다. 

와이프와 함께 한참을 떠들다가 잠에 들었다. 


"탁!~ 취잇~" 


이제 여행만 오면 내가 반기는, 한밤 혼맥 한 캔 타임. 

어디로 여행을 가든 가족들 잠자리에 들고 나면 

맥주 한 캔 들고 혼자 테라스에 나와 턱 걸터앉는 시간, 

내게는 여행 중 누릴 수 있는 최고의 사치 중 하나다. 


"캬~" 


여행 1일차는 언제나 

어제와 오늘의 경계를 짓는 날인 거 같다.

어제까지의 일상은 멈춤, 오늘부터 일상탈출 플레이,

그 경계의 낙차가 클수록 '뻥 뚫림'이 더 커지는 듯싶다. 

오랜 비행시간이 그 역할을 해주곤 했는데, 

오늘은 지난 일상의 고단함이 큰 몫을 해주었다.  


우리 가족의 지난 1년은 참 다사다난했다. 

장모님의 골절상, 수술과 입원, 

장인어른의 뇌출혈, 그 생사를 오가는 긴 시간에 

우리 가족은 모두 숨죽여야 했고, 마음 졸여야 했다. 

그럼에도 가족 모두는 씩씩하게 자기의 길을 

열심히, 분주하게 했다. 모두 1인분은 다 해주었다. 


"후우~~"


나의 목표는 '긴 병에 효자 없다'는 말을 뒤엎는 것.

긴 간병 속에도 가족의 일상이 무너지지 않고, 

서로가 서로에게 서운해서 등 돌리는 일 없이 

무리수를 띄우지 않고도 잘할 수 있다는 것을 

입증하는 것. 목표를 가족회의에서 이야기했고, 

지금껏 가족 모두가 잘 헤쳐 나오고 있다고 느낀다. 

장인어른 병세가 호전되는 것에 뭉클하고, 

가족들이 여전히 화목해서 후우~ 안도한다.


그 반작용으로 다른 걱정거리도 생기고 있지만, 

오늘밤 맥주 한 캔은 그저 쉼표로만 두었다. 

꽤 의미 있고 커다란 쉼표라고 여겼기 때문에...


그렇게 므흣한 마음에 여행 첫 밤의 잠을 청했다. 

너무 무겁지 않게 딸의 수고를 격려하던 노래를 

나 스스로에게 불러주듯... 한 음 한 음 지긋이 눌러진

피아노 반주가 BGM으로 깔리는 느낌.....


Song : 수고했어, 오늘도 

ㄴ 옥상달빛 (작사/작곡 : 김윤주)


세상 사람들 모두 정답을 알긴 할까

힘든 일은 왜 한 번에 일어날까
나에게 실망한 하루
눈물이 보이기 싫어 

의미 없이 밤하늘만 바라봐
작게 열어둔 문틈 사이로
슬픔 보다 더 큰 외로움이 다가와 더 날

수고했어 오늘도
아무도 너의 슬픔에 관심 없대도
난 늘 응원해, 수고했어 오늘도

옥상달빛 @ 유튜브 발췌

빛이 있다고 분명 있다고
믿었던 길마저 흐릿해져 점점 더 날


수고했어 오늘도 (수고했어)
아무도 너의 슬픔에 관심 없대도
난 늘 응원해, 수고했어 수고했어 수고했어 오늘도

수고했어 오늘도 (수고했어)
아무도 너의 슬픔에 관심 없대도
난 늘 응원해, 수고했어 오늘도


여행은 다음 편으로 이어집니다. 


이전 05화 지랄총량제, 예외는 없어, 아빠?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