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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레봄 Jun 14. 2024

이 감정을 돈과 견줘도 될까?

15 [신영증권 : 손주 바보] 편

평소 일 년에 세네 번 찾아뵐까 싶은 장모님이

최근 우리 집에서 같이 지내게 되었다. 

서로 적응이 필요했지만, 큰 어려움이 없었다.

어머님이 순순히 다 받아주셨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딱 하나, 

어머님이 고집을 굽히지 않는 일이 

바로 '손녀 용돈 주는 문제'였다. 


어머님은 시시때때로 딸아이에게 용돈을 주셨고, 

개인적으로 그게 영 내키지 않아 그러지 마시라 해도 

그냥 둬라! 그게 뭐라고! 냅둬라! 

용돈을 강하게 딸아이 손에 쥐어주셨다. 

내키지 않는 아빠는 인상이 찌푸려지고, 

아빠 말을 아는 딸은 쭈뼛거리고, 

쭈뼛거리는 손녀를 본 할머니는 속상해하고, 

그걸 보는 딸은 또 엄마를 타박하는 악순환. 


몇 푼 안 되는 돈이지만, 별 이유도 없이 주는 돈이 

보는 입장에서 내키지도 않아서 

딸 버릇을 이유로, 경제교육을 이유로, 

때로는 어머님 노후를 이유로 만류해도, 

왠지 손녀에게 주는 용돈을 끊임없이 시도하신다. 


나도 가족 중에 '딸 바보'로 유명하고, 

딸도 '아빠 바보'로 유명한데도, 

용돈이 끼어들진 않는다. 그러고 싶지 않다. 


어머님이 딸에게 주는 용돈도 사랑의 표현이겠지만,

그게 돈이여서 부작용이 크지 않을까 우려하는 것. 

어쩌면 돈이 사랑의 표현이 될 수도 있다는 것에 

마음이 내키지 않아서일지도 모른다. 


쉽게 생각할 수 있는 문제인데도, 

영 내키지 않는 내 마음을 명확히 해석하긴 힘들다.

그래서 용돈 주는 장면만 나오면 마음이 찜찜하다.  

그런데 이런 내 마음과 똑같은 광고가 나왔다. 

(광고적으로) 해석하기 쉬우면서도, 

(심정적으로) 해석하기 어렵다. 안 받아들여진다. 


다른 분들은 어떻게 보시는지 궁금한 이번 광고는... 


 15 [신영증권 : 손주 바보] 편

만든 이 : 밴드앤링크/ 최선우, 김태곤, 박철원 CD/
             박정기 외 AE/ 강형경 감독/ 모델 : 김응수

명확한 타깃 공략의 정석. 


링크를 타고 들어가서 살펴보면, 

3편의 광고를 동시에 온에어한 광고 캠페인이다. 


할머니 할아버지의 손주 사랑을 

‘잘한다~’, ‘할 Money’, ‘강아지’라는 표현 하여 

일상 속에서 여러 번 봤을 장면을 재현해 낸다. 

어느 집인들 이러지 않겠는가, 그래서 공감 간다. 

이걸 반복적으로 압축하니, 재미도 있다. 


연출 측면에서 모델 김응수의 적절함은 물론이고, 

아역 모델의 표정 담아내기가 엄청 어려운데, 

그 표정까지도 잘 담아내서 아주 자연스럽다. 


아주 명확한 타깃팅과 그 타깃의 인사이트를 잡았다.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움직여야 하는 상품이니까 

그분들이 스스로 거울 보듯 '일상 순간'을 잡아냈고, 

그 행동 속 마음을 한 두줄의 카피로 풀어냈다. 

인사이트를 담아내니 공감과 재미가 배가되는 것. 


금융상품의 상품상 특징, 금융적 혜택은 제쳐두고, 

누가, 어떤 목적으로, 어떤 행동을 해야 하는지를 

제대로 집중해서 공략하고 있다. 타깃 공략의 정석. 

잘한다 잘한다 잘한다. 잘한다 잘한다 내 손주.
잘한다 잘한다 내 손주. 내손주.

바보 같아? 바보 맞아. 손주바보.

세상 모든 손주 바보들 위해
신영증권이 시작합니다.

손주사랑, 신탁이 되다.
신영증권.


하지만 왠지 씁쓸한 뒷맛.  


광고적으로 해석하기 쉬운 것 여기까지, 

심정적으로 해석하기 어려운 지점이 따로 있다. 


손주 사랑은 모든 할아버지, 할머니들 

누구나 갖고 있고, 누구나 존중하는 정서인데, 

그 마음을 '신탁, 즉 돈'으로 하라고 하고 있다. 

그것도 신탁이라 하면 쌈짓돈은 아닐 텐데, 

일부 자산가 타깃들만 할 것 같은 신탁 상품이니, 

손주에게 쌈짓돈밖에 못 주는 어르신들은 어쩌나, 

상대적 박탈감이 들 텐데 어쩌나... 싶다. 

심적으로 부담을 갖지는 않을까 싶다. 


우리 장모님이 내 딸 용돈 쥐어두는 것도, 

아유 그러지 마세요라고 말리는 심정에 반해, 

어르신들이 손주 사랑을 이제 손주 미래까지 생각해 

돈을 맡겨놓음으로써 표현해 주세요라고 하니, 

너무 씁쓸하다. 개운하지 않다. 


나만 그런지는 모르겠으나, 

광고적으로는 분명 너무나 영리하나, 

이런 세태는 분명 너무나 씁쓸하다.


예전 한 보험사 광고를 담당할 때, 

어르신 모델을 쓰면서 '엄마처럼 케어' 느낌의 

콘셉트를 제작팀에 제안한 바 있었다. 

그때 CD가 한 말이 잊히지 않는다. 

"'엄마'는 우리 함부로 쓰지 맙시다,

어느 브랜드가 진짜 엄마 같습니까?" 

이건 브랜드 폄하가 아니라, 

엄마와 모성애에 대한 각별한 존중이고, 

모든 엄마에게 상업적 기준을 들이대서 

'엄마다움'을 통일된 기준으로 강요할 수 없다는 뜻. 


광고적으로 상품의 특징을 '타깃'으로 잘 잡아서, 

그 소구포인트로 '인사이트'를 잘 뽑아서, 

공감을 불러일으키고, 행동을 유도시키는 

타깃 공략의 정석을 보여주고 있는데, 


이런 상품이 나오게 되는 현실 세태와 

금융상품과 견주어서는 안 될 정서의 가치, 

내 마음만 불편한가? 묻고 싶다. 

내 마음은 왜 불편한가? 해석해내고 싶다. 


본 광고의 인용이 불편하시다면,
누구든, 언제든 연락 주세요. (출처: tvc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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