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살다 보면 필요가 있을 때만 연락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최근 오랜 친구로부터 “잠깐 통화 가능해?”라는 메시지가 왔습니다. 또 무슨 일이 있나 하는 생각과 함께 피로감이 들었습니다. 힘든 일이 있겠거니 이해하려 애쓰면서도, 왜 매번 이런 식일까 하는 섭섭함이 들었습니다. 주는 것만 많다고 느껴지니 이 관계가 무의미하게 생각되기도 했습니다.
2. 철학자 마틴 부버는 인간관계를 '나와 너', '나와 그것'으로 구분했습니다. '나와 너'는 서로를 인격적으로 존중하고 교류하는 관계입니다. 반면 '나와 그것'은 상대를 자신의 목적을 이루기 위한 수단으로 여기는 관계를 의미합니다.
필요할 때만 연락하는 친구와의 관계에서, 저는 마치 '그것'이 된 것 같은 느낌이었습니다. 친구가 저를 친구로 대하기보다 도움을 얻기 위한 수단으로 여긴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친구 입장에서는 힘든 순간에 제가 가장 믿을 만한 사람이라 연락한 것일 수도 있겠지만 반복적으로 이런 관계가 지속되니 불쾌감만 쌓이고 거리 두고 싶은 마음이 들었습니다.
3. 이런 불쾌감은 자기애적인 사람들과 관계에서 자주 느껴지기도 합니다. 이들은 타인의 감정이나 필요에는 무관심한 경우가 많습니다. 상대의 감정을 헤아리기보다는 자신의 필요를 채우는 게 더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한편으로 드는 생각은 나는 이런 관계에서 완전히 자유로운가입니다. 나 역시 누군가를 필요로 할 때나 의지했던 순간들이 있습니다. 의도하진 않았지만 나 역시 누군가를 이용했다고 느끼게 하진 않았을지 돌아보게 됩니다. 너무 주는 것에 인색하기보다 받을 것은 받고, 줄 수 있는 것은 주는 관계가 더 편하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다만 편안한 관계가 아니라면 정리할 용기가 필요하기도 합니다.
4. 대학 때 늘 우울해하는 친구가 있었습니다. 동기지만 몇 마디 해본 적 없었는데 어느 날 저를 찾아왔습니다. 얘기할 게 있다며 갑자기 자기의 힘든 얘기를 하기 시작합니다. 눈물, 콧물 흘려대며 오열하기도 합니다. 어느새 날이 밝아 옵니다. 밤새 얘기를 들었건만 고맙다는 말 한마디 없이 피곤하다며 돌아갑니다. 머 이런 놈이 다 있지 생각이 들었지만 그러려니 했습니다.
시간이 좀 지나 그 친구가 학교를 그만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1년쯤 지나 그 친구에게 연락이 왔습니다. 저를 찾아왔을 때 사는 게 너무 고통스러워 마지막으로 한 사람과 얘기해 보고 죽을지를 결정하려고 했다고 했습니다. 그때 우연히 눈에 띈 게 저였고, 제가 밤새워 가며 자기 얘기를 들어줘서 죽지 않고 살아가고 있다고, 고마웠다고 했습니다. 근황을 들어보니 잘 지내는 듯 보였습니다.
그 당시 심리학이라는 학문이 적성에 맞지 않는 것 같아 학교를 그만두려고 고민할 때였는데 그 친구의 연락을 받고 이 공부를 계속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고, 지금까지 상담이라는 일을 해 올 수 있었습니다. 그 친구 덕분에 내가 누군가에게는 마지막 사람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을 하며 상담실에 들어가곤 합니다.
5. 관계란 주고받는 균형이 맞춰질 때 편안해집니다. 그러나 항상 깔끔하게 균형이 맞춰지는 것은 아닙니다. 때로는 균형에 집착하다 보면 관계의 본질을 놓칠 때가 있는 것 같습니다. 가끔은 내가 손해 보는 것만 같아도 꼭 그렇지만은 않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살면서 모든 관계가 완벽할 수는 없습니다. 계속해서 나에게 상처와 피로감만 주는 관계라면 거리를 두는 것도 필요하겠지요. 하지만 필요할 때만 찾아오는 그 사람에게 내가 어떤 의미로 남아 있는지 고민해 볼 여유를 가져 보는 건 어떨까요? 누군가에게는 내 작은 말 한마디가 살아가는 의미가 될 수도 있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