귤을 좋아한다

안녕 나야 ?

by 그리고

어릴 때부터 뾰족한 것들을 보면 눈을 제대로 뜰 수가 없었다. 나중에야 이것이 '모서리 공포증' 또는'첨단 공포증'이라 불리는 심리적 이상반응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첨단 공포증(Aichmophobia)이란,

사물들의 뾰족하거나 날카로운 부분을 실제보다 위협적인 존재로 인식하고, 이 때문에 과도한 공포심이나 불안감을 느끼는 경우를 뜻한다.


요리 중 칼질을 할 때면 최대한 시선을 재료에만 두려 애쓴다. 우연히 칼끝이라도 보게 되면 눈을 깜박이다 눈물을 흘리기도 한다.


과일을 좋아하지만 칼로 껍질을 벗겨내야 하는 것들은 어려운 미션이다. 때문에 손으로 쉽게 먹을 수 있는 과일을 선호한다. 그중에서도 귤을 가장 좋아한다.

초등학교 5학년 때 내 뒷자리에 앉던 아이에게서 자주 귤 향기가 났다. 그 아이는 귤껍질을 내 후드티 모자 안에 넣고는 모자를 푹 씌워버리는 장난을 하곤 했다. 그럴 때마다 머리카락에 달라붙은 귤껍질을 털어내며 곧 다가오는 내 생일파티에 그앨 절대 초대하지 않을 거라 다짐했었다.


내 생일이자 선배들의 졸업식이 있던 날이었다.

초대받지 않은 그 아이가 나를 불러 세우더니 주머니 속에서 뭔가를 꺼내 쓱 내밀었다. 귤이었다.

생일선물!

귀까지 발게져서는 실내화를 신은 채로 운동장으로 나가는 모습을 보며, 또래보다 조금은 성숙했던 나는 그 마음을 알아챘던 것도 같다.

얼굴은 기억나지 않지만 내 목덜미 근처에 맴돌던 귤 향기와 패딩 주머니에서 꺼낸 따뜻한 귤은 지금까지도 잊히지 않는다.




귤의 계절이 되면 과일가게 매대 앞 잔뜩 쌓여있는 귤을 그냥 지나치지 못한다. 면장갑을 낀 주인아저씨는 비닐봉지에 바구니에 담겨있던 귤을 한 번에 착 넣으며 재빠른 손놀림으로 상자에서 귤을 두어 개 더 담아주신다. 귤만이 가질 수 있는 따뜻함이다.


봉지째 바닥에 내려놓고 이불속에서 까먹는 귤의 맛이란!

매일이 여름인 나라에 살게 되면서 그 맛을 잊지 못해 종종 귤을 사 먹지도 하지만 추억을 소환하기엔 몇 프로 모자라달까?


겨울이 되면 한국에 갈 수 있었으면 좋겠다.

좋아하는 귤을 손이 노래지도록 실컷 먹고 오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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