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가포르에서의 첫 집, 1층 테라스에는 작은 나무 한 그루가 있었다. 처음 이사 올 때만 해도 내 키보다 작았던 이름 모를 그 나무는, 적도의 습한 열기를 먹고 어느새 쑥쑥 자라 넓은 잎을 사방으로 뻗어냈다. 날이 좋으면 테라스에 빨래를 널고, 그 나무가 만들어준 짙은 초록 그늘 아래 의자를 놓고 앉아 커피 한 잔을 마시는 것이 타국 생활의 유일한 사치이자 안식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예고도 없이 정원 관리사들이 들이닥쳤다. 그들은 아무런 망설임 없이 날카로운 톱날을 들이댔고, 가지들을 사정없이 잘라내기 시작했다. 바닥으로 툭툭 떨어지는 나뭇가지들이 안쓰러웠다. 멀쩡한 나무에 생채기를 내는 저 행위가 잔인하게만 느껴졌고, 앙상하게 뼈대만 남은 나무의 몰골은 마치 내 처지 같아 보였다.
그것은 한국에서의 익숙했던 인간관계와 사회적 지위라는 '가지'들을 강제로 거세당해야 했던 나의 상실감과 닮아 있었다. 무성했던 과거가 잘려 나간 후 앙상하게 남은 그 나무를 한동안 차마 마주할 수 없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고, 나는 그 테라스에서 경이로운 광경을 목격했다. 죽은 듯 침묵하던 앙상한 줄기 끝에 뭉툭하고 이질적인 생명의 기운이 돋아나더니, 이내 비현실적으로 크고 묵직한 열매들이 조랑조랑 매달리기 시작한 것이다. 그것은 다름 아닌 잭푸룻이었다.
잎만 무성하게 하늘을 가리던 시절에는 단 한 번도 보여주지 않았던 결실이었다. 가지가 잘려 나가는 단절의 고통을 겪고서야 나무는 사방으로 분산되던 에너지를 거두어들여, 오롯이 열매 맺음을 위한 본질의 시간 속으로 침잠한 것이다.
싱가포르라는 땅은 내 삶의 무성한 잡념을 솎아내는 가차 없는 가지치기의 현장이었다. 타인의 시선에 맞춰 나를 수선하던 허영의 곁가지들, 익숙함이라는 안락함에 기대어 정체되어 있던 나태의 넝쿨들. 이 땅은 내가 매달려 있던 그 불필요한 생의 잔가지들을 서늘하게 쳐냈다.
잘려 나간 자리는 아리고 쓰렸지만, 그 상실의 틈새로 비로소 타인이 아닌 '나'라는 존재의 민낯이 보이기 시작했다. 외부의 소음이 차단된 적막 속에서 나는 내면 깊은 곳에서 울리는 진짜 목소리에 귀를 기울일 수 있었다.
삶도 그렇다. 적당한때 잘라내야 하는 것들이 있다. 그것은 파괴가 아니라 정돈이며, 비워냄으로써 비로소 채워지는 과정이다.
잎의 무성함에 속아 열매의 존재를 잊고 살던 내게, 잭푸룻 나무는 알려준다. 고난이라는 이름의 칼날이 지나간 자리마다, 이전보다 더 달콤하고 묵직한 생의 열매가 영글 준비를 하고 있다는 것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