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년째 자동차 없는 뚜벅이 생활을 하고 있다. 솔직히 고백하자면, 지난 7년간 자동차 없이 지낸 것은 환경을 생각하는 거창한 신념이 있거나 걷기 예찬론자여서가 아니다. 그것은 철저히 자본주의 논리 앞에서 내린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국산 중형차 한 대를 소유하기 위해 억 단위의 거금이 필요한 이 나라에서, 그 비용을 감당하는 일은 영 내키지 않았다. 그렇게 나는 자의 반 타의 반으로 두 다리를 부지런히 움직이는 삶을 시작하게 되었다.
어느 날, 집으로 향하던 길에 갑작스럽게 쏟아지는 비를 피하려 육교 위로 뛰어 올라갔다. 빗줄기가 잦아들기를 기다리며 멍하니 아래를 내려다보던 멈춤의 시간. 굵은 빗방울이 열대의 커다란 잎사귀들에 떨어지는 빗소리와 코끝을 스치는 짙은 흙내음, 그리고 시야를 가득 채우던 투명한 초록빛. 그것은 달리는 차창 너머로는 결코 느낄 수 없었던, 이 도시가 숨겨둔 진짜 얼굴이었다.
자동차를 소유한다는 것은 쾌적한 온도와 좋아하는 음악으로 채워진, 완벽하게 통제된 나만의 공간을 갖는 일이다. 하지만 나는 자동차를 사지 못한 덕분에, 싱가포르라는 도시의 자연을 피부로 직접 감각할 수 있는 권리를 얻었다. 유리창으로 가로막힌 나만의 세계는 안락함을 주지만, 문을 닫는 순간 세상의 소음은 음소거가 된다. 뚜벅이로 지내는 동안 나는 버스 정류장에서 땀을 닦는 옆 사람의 고단함을 읽고, 비를 피해 뛰어든 육교 밑에서 도시의 숨겨진 자연과 인사를 나눈다. 각자의 삶이 뿜어내는 온기와 웅성거림. 그 생생한 소음 속에 적당히 섞여 있을 때, 나는 비로소 내가 이 도시에서 홀로 떠 있는 섬이 아니라 함께 살아가는 존재들의 일부임을 깨닫는다.
자발적인 선택은 아니었으나, 7년의 뚜벅이 생활은 돌아보니 꽤 남는 장사다. 효율성과 편리함을 잃은 대신, 육교 위에서 빗소리를 들으며 흙내음을 음미하는 낭만적인 불편함 을 얻었으니 말이다. 물론 적도의 태양 아래서 장바구니를 들고 땀을 흘릴 때면 안락한 자동차가 부럽기도 하지만, 적어도 삶의 속도를 늦춘 대가로 얻은 이 짙은 초록과 사람들의 온기만큼은 세상 그 무엇과도 바꾸고 싶지 않은 소중한 선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