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에 산다는 건, 유행의 최전선에서 이탈하는 일이다. 한국에서 실시간으로 쏟아지는 이슈와 트렌드들은 바다를 건너는 동안 어디론가 증발하고, 내게 닿을 땐 이미 한 김 식은 이야기가 된다. 하지만 그 덕분에 타인의 속도에 휩쓸리지 않고 내 고유한 보폭을 되찾곤 한다.
세상의 속도와 무관하게 흘러가던 어느 날, 낯선 이름 하나가 도착했다. 친구가 한국에서부터 애지중지 공수해 온 그것, 바로 '두쫀쿠'였다. 한입 베어 물어보니 쫀득한 식감과 더불어 달콤한 피스타치오가 입안에 가득 퍼졌다. 하지만 입안 가득 세련되고 풍성한 피스타치오 향을 머금고도, 촌스럽게도 시장통 찹쌀 도넛을 떠올렸다.
어린 시절, 엄마 손을 잡고 시장에 가면 갓 튀겨낸 찹쌀 도넛 냄새를 그냥 지나치지 못했다. 설탕이 듬뿍 묻은 찹쌀 도넛 하나와 덤으로 얹어주시는 꽈배기까지 받아 들면 세상 부러울 것이 없었다. 두쫀쿠를 맛보고 처음 든 생각이 '찹쌀도넛이 먹고 싶어'라니..
생각해 보면, 자극적인 것은 순간의 쾌락을 주지만 금세 휘발된다. 반면 심심하고 익숙한 것들은 오래도록 마음에 남는다. 돌아보면 내안에 오래도록 자리를 차지하는 것들은 태양이 뜨고 지는 순간, 계절마다 만개한 꽃길, 그리고 내 안의 오래된 기억 같은 일상의 소소한 것 들이다.
유행이 쏟아지는 세상이다.
모두가 '두쫀쿠'에 열광할 때, 주눅 들지 않고 "나는 찹쌀 도넛이 더 좋아"라고 말할 수 있는 용기.
나는 그런 취향의 심지가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남들의 가치관에, 세상의 속도에 희석되지 않는 '나'로서 존재하기를 바란다.
아무리 거센 비가 쏟아져도 바다는 바다인 것처럼,
내 안의 본질은 여전히 나인 채로, 그렇게 세상의 유일무이한 존재로 남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