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가포르 사람들은 자연과 더불어 살아간다. 아파트 단지 한복판에서 알을 품고 있는 암탉을 마주하거나, 도로를 가로지르는 원숭이 무리를 위해 자동차가 기꺼이 멈춰 서는 풍경은 이곳에서 그리 특별한 일이 아니다.
우리 집에는 나의 동의를 구하지 않은 세입자들이 살고 있다. 임대차 계약서 한 장 쓰지 않았고, 관리비를 나누어 낸 적도 없지만, 그들은 집 안의 가장 은밀한 구석들을 당연하다는 듯 점유하고 있다.
집도마뱀은 이 도시 국가에서 가장 흔한 동거인이다. 투명하고 옅은 색을 띠고 검은 눈동자를 가진 그들은, 인간의 눈을 피해 집 안의 벌레를 잡아먹으며 생활한다. 낮에는 냉장고나 가구 뒤편의 그림자 속에 완벽히 은닉하고, 오직 밤의 정적을 깨는 '칫, 칫, 칫' 하는 울음소리로 자신의 존재를 알린다. 보이지 않음으로써 서로의 평화를 지키는 것, 그것이 그들과 내가 유지해 온 철저한 거리 두기의 방식이었다.
암묵적 평화 계약이 깨진 것은 어느 평범한 저녁이었다. 종일 내린 비로 얼룩진 창을 닦던 중에 창가 근처를 지나던 녀석 하나가 내 시야에 걸려들었다. 나는 당혹감에 창문을 열어 녀석을 밖으로 쫓아냈다. 도마뱀 한 마리가 창밖으로 사라진 그날 이후, 그들은 선을 넘기 시작했다.
절대 낮에는 모습을 드러내지 않던 도마뱀들이 하나둘씩 눈에 띄기 시작한 것이다. 그들은 더 이상 사람을 피해 다니지 않았다. 창가를 서성이며, 무언가를 간절히 찾는 듯한 기색을 보였다. 보통 도마뱀은 각자의 영역을 지키는 철저히 고립된 존재들이라 생각했는데, 내 눈에 비친 그들의 움직임은 명백한 수색 작전이었다. 그것은 단순히 사라진 동료를 찾는 행위를 넘어, 일방적인 인간의 개입으로 깨어져 버린 질서에 대한 그들만의 작은 저항이었다. 수년의 은둔 법칙을 파기하면서까지 동료의 행방을 쫓는 그들의 모습에서, 나는 하찮게 여겼던 미물의 생에도 결코 가볍지 않은 무게의 감정이 존재함을 깨달았다. 내가 무심코 쫓아낸 것은 단순히 도마뱀 한 마리가 아니라, 누군가의 소중한 동료이자 가족이었던 것이 아닐까?
요즘 나는 외출하기 전 창문을 활짝 열어둔다. 열린 창문이 쫓겨난 누군가에게는 돌아올 길로, 남겨진 이들에게는 동료를 찾아 나설 자유의 통로로 이용되기를 바란다. 그리고 이 작은 행동이 나의 섣부른 개입에 대한 조용한 사과로 가닿기를... 부디 어딘가에서, 그들이 온전한 무리를 이루며 평온하게 살아가기를 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