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살이었나, 딱 1번이었지만 직접 돈을 벌어보고 싶다는 마음에 친구와 함께 '전단지 아르바이트 안 구하세요?'라며 직접 매장을 돌아다니기까지 했으니. 몇백 장을 돌리고 사장님이 건네어 주신, 얼마였는지 정확히 기억나지는 않지만 매우 적었던 것은 분명한, 월급이라기에 민망한 그 작은 돈이 13살의 나에게 가져다준 뿌듯함은 아직도 선명히 기억한다. 아마 그때 치킨집 사장님도 진짜 전단지 아르바이트가 필요해서라기 보단, 당돌한 어린이들의 기를 살려주고 싶었던 건 아니었을까.
나의 책임감을 알아버린 첫 번째 사회생활
그랬던 내가 20살이라는 사회적으로나 법적으로나 정당하게 직접 돈을 벌 수 있는 나이가 되었으니 가만히 있을 수 있었을 리 없다. 첫 대학교 여름방학, 바로 아르바이트를 구했고 첫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호기심 50% + 추가 용돈벌이 50% 였다.
집 가까운 곳에 위치한 키즈카페. 키즈카페라는 아기자기한 공간에서 아이들과 놀아주며 돈을 번다니, 기대가 남달랐다. 하지만 이 첫 번째 아르바이트는 긍정적으로 바라보면 앞으로의 사회에서 어지간한 일복은 아주 '쉽게' 만들어준 그런 경험이 되었다.
그곳은 최저 시급이면서 매일매일 아침저녁으로 1시간이 넘던 청소 시간은 일하는 시간에 포함시켜주지 않았다. (키즈카페의 청소는.. 그 어떤 곳보다 힘들다.) 20살의 나는 이것이 부당하다고 느끼지도 못했었다. 그리고 맨손으로 아기들이 바닥에 싼 오줌도 닦고, 풍선아트도 하고, 인형 탈도 쓰고, 페이스 페인팅도 하고, 아이들과도 놀아주고 서빙도 했다. 나는 아주 다재다능한 선생님이 되었다. 놀랍게도 이 많은 것들을 경험한 시간은 '1개월'이었다. 그리고 극심한 독감과 장염에도 쉬지 않고 일을 하던 나에게 '표정 관리 좀 잘해라'라는 사장님의 핀잔과 함께 막을 내렸다.
요령도 없고 그저 열심히만 할 줄 알았던 처음이었다. 임플란트 치아를 심은 날, 지혈 솜을 문 채로 치과에서 집에 오는 길에 바로 출근을 했을 정도니까 말이다. 생계를 위한 일도 아니었는데. 호기심에 시작한 건데. 내가 생각보다 더 많이, 좀 많이 책임감이 강하다는 것을 알아버렸다.
비로소 서비스 경력직 아르바이트
바로 한 달 뒤, 한 프랜차이즈 레스토랑에서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다소 고급스러운 곳이었는데, 깔끔한 유니폼과 쪽진 머리로 일하는 모습은 또 한 번 20살의 나를 설레게 했다. 하지만 출근 첫날 알게 됐다. 모든 음식마다 들어가는 재료를 모두 외워야 했고, 음식마다 정해진 서브멘트를 외워야만 했다. 시험을 통과해야만 서빙을 할 수 있었다. 아직도 정확히 기억하는데 당시 메뉴는 62개였다. 나는 왜 자진해서 힘든 곳만 선택했던 것일까. 꿀 알바란 대체 어디서 구하는 걸까. '일복이 있다.' 정말 나를 두고 하는 말 같달까.
그렇지만 바로 한 달 전에 시급도 받지 못하는 청소를 아주 열심히 하던 나는 할 수 있었다. 또 열심히였다. 술자리에도 가져가 열심히 외웠고, 여러 차례의 교육과 시험을 거친 후 드디어, 나는 서빙을 시작할 수 있었다.
'아가씨, 조금만 천천히 이야기해 주면 우리가 더 잘 들을 수 있을 것 같아요.'
음식을 서빙하고 있지만, 머릿속에는 틀리지 말아야 한다는 생각으로만 가득한 채 외운 멘트를 기계적으로 말하고 있던 나였다. 그때 연세가 좀 있으셨던 손님이 나에게 건네주셨던 한마디. 따뜻한 조언 같은 말이었지만 내가 너무 창피해지는 순간이었다. 진짜 '서비스'가 무엇인지 생각하기 시작했다. 대상이 누군지, 설명이 필요한지, 설명보다는 빠른 식사를 원하는지 등 고객을 살펴보기 시작했다.
유리잔에 담긴 음료 12잔이 놓인 쟁반쯤은 한 손으로 들어 서빙할 수 있을 만큼 스킬이 늘어났고, 서빙을 하며 고객님들과 짧은 담소를 나눌 줄 아는 여유도 생기기 시작했다. 음료 제조와 와인 오픈을 배우고, 쉬는 시간이나 여유로운 시간에는 매니저님을 졸라서 커피 내리는 법과 스팀 우유를 만드는 법을 배우기도 했다. 프로모션이 진행될 때면, 고객들이 해당되는 세트 메뉴를 선택하도록 유도하며 잠깐의 영업도 경험해 봤다.
책임감이 강한, 일복 있고 호기심 많은 나는 빠르게 서비스 경력직 아르바이트가 되어가고 있었다.
재미로, 호기심으로 시작한 일,짧은 기간 내에 최대 경험을 해 본 첫 번째 아르바이트는 지금까지도 웬만큼 힘든 일도 일단은 잘 견디게 하는 끈기의 시작이 되어주었다. 그 경험이 있었기에 두 번째도 시작할 수 있었고, 제대로 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정돈된 서비스를 경험할 수 있었던 두 번째 아르바이트는 지금도 서비스 분야에서 커리어를 이어가고 있는 나에게, 보다 이른 나이에 '진짜 서비스'를 경험하게 하고 그래서 제대로 된 초석을 만들어줬다고 생각한다.
여기까지가 호기심으로 시작했던 나의 아르바이트 경험이다. 이제부터는 좀 더 나의 생계를 위한 일들을 하기 시작했는데, 그래서 더 도전할 수 있었고 더 다양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