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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리 May 22. 2024

책은 나를 어디로든 데려다줘

아르바이트 시작하고 일주일이 지난 시점부터 책을 한 권씩 챙겨가서 읽기 시작했다. 생각보다 엄청 한가한 매장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정신없이 바쁘지도 않고 손님이 한꺼번에 몰리지도 않으며 그렇다고 해도 2~3명 정도에 배달 알림 소리가 띠링띠링 울리는 상황 뿐이라 몰린다고 하기도 애매하기 때문이다.


나는 갑자기 삘 받아서 한 달 내내 도서관에 가서 책 읽고, 공부하고 그러기도 하는데 도서관 특유의 백색소음 가득한 분위기와 책 냄새, 원하는 책은 웬만하면 다 있다는 즐거움 등등이 나의 어딘가를 충만하게 해주기 때문이다. 유독 집중이 잘 돼서 한 번 가면 기본 5시간은 공부를 하기도 해서 더 그랬던 것 같기도 하다.


그런데 이사를 오게 되면서 국립도서관에 가려면 자전거로는 40분 이상 걸리고 나는 이상하게 버스 타는 걸 별로 안 좋아해서 타고 싶지 않고, 빌리면 3~4권 대출하는데 무거운 짐을 바리바리 싸들고 집에 돌아오기도 힘들고 별별 이유로 가지 않기 시작했다.


물론 집에서 3분 거리에 주민센터가 있어서 그곳의 도서관을 종종 방문하긴 하지만 아무래도 도서 보유량에서 차이가 있을 수 밖에 없기 때문에 괜히 아쉽고, 음료 반입도 불가하고, 낮에는 1층에 있는 유치원이나 옆의 중·고등학교에서 오는데 많이^^.. 시끄러워서 빌릴 때만 가고 있다.


*


아르바이트를 다시 시작하면서 한가한데 핸드폰 하는 것도 하루이틀이지 청소도 다 하고 나면 마감까지 손님이 없는 빈 시간을 그냥 보내는 건 정말 어리석은 행동이라는 걸 잘 알고 있어서 아무리 작아도 굳이 최신 도서가 아니라면 있을 건 다 있으니까 주민센터에 있는 책부터 다 읽어보자 해서 저번주에 책을 빌려왔다.


재작년부터였나 한 달에 책 한 권씩 읽고 블로그에 기록을 남기는 것을 버킷리스트… 라고 하긴 뭐하고 올해의 목표? 같은 느낌으로 설정했었는데 이것도 작심삼일인지 3~4개월은 하다가 그 이상은 갑자기 흐지부지 되어버려서 결국 올해까지 끌고 와버렸다.


그런데 이번에는 굳이 시간을 내서 읽어야겠다는 강박 같은 게 없어지고 출근할 때 책만 챙겨가서 비는 시간에 읽기만 하면 되니까 페이지수에 따라서 3~4일이면 한 권이 뚝딱 완독 돼버려서 알바를 그만두지 않는 한 이번에 드디어 목표 달성을 하겠구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원래는 영어 리스닝을 하려고 했는데 이어폰을 낄 수 밖에 없는데 손님이 올 때마다 빼야하고 책보다 집중이 안 돼서 이건 집에서 시간 정해서 하는 게 더 효율이 좋겠다 싶어 바로 그만 두고 책으로 변경했던 거였다.   


*


생각해보면 나는 꾸준히 책을 읽는 편이었는데 학창시절이 인소가 가득하던 시기여서 정말 공금까지 어떻게든 구해서 하루종일 읽고, 잠도 안 자고 인소만 봐서 2~3시간을 자고 다시 학교에 가는 학생이었다. 그리고 읽을 만한건 다 읽었다는 생각이 들 때 즈음에 인소에 대한 관심이 소설책으로 옮겨갔고, 학교 도서관에 가서 판타지 소설을 대출하기 시작했다.


그 당시에 봐서 지금까지도 좋아하는 소설이 트와일라잇 시리즈다. 얼마나 재미있던지 읽고 나서 다른 책을 읽다가도 딱히 읽고 싶은 게 없으면 다시 또 빌려서 읽고 읽어서 각 시리즈마다 5번은 읽었던 것 같다. 그리고 나서 뉴문이었나 이클립스가 영화로 개봉해서 보러가게 되었는데 처음으로 원작 소설이 있는 영화나 드라마는 원작을 먼저 보면 실망한다는 말을 이해하게 되었다.


특히 남자 주인공을 어린 마음에 정말 말도 안 되는 외모로 혼자 상상했었는데(사실 지금은 기억도 안 남) 내가 상상해오던 외모의 주인공이 아니라는 생각에 스토리 보다는 이미 배우에 실망해서 영화가 어땠는지는 떠오르지도 않는다.


내가 상상하던 외모로 찍어야 하면 아마 영원히 영화는 찍지 못할거라는 걸 지금은 알고 있다. 그리고 성인이 되어서 TV에서 가끔 한 편씩 해주는 걸 보게 되었는데 남주가 왜이렇게 잘생겨 보이는지 괜히 죄송했다. 크크 어린 마음에 실망해서 제대로 보지도 못했던 영화를 어쩌다 보니 한 편씩 다 보게 되었는데 나는 책도 그렇지만 처음과 마지막 시리즈인 트와일라잇과 브레이킹 던을 정말 사랑한다.


*


지금의 나이가 되어서 학생이던 시절을 회상해보면 그 당시에 정말 좋아했던 인터넷 소설과 판타지 소설 덕분에 책을 좋아하게 되었고, 어쩌면 어린 마음에 스쳐지나가던 꿈일수도 있겠지만 미술로 예술고 입학하기 같은 소소한 장래희망 중 하나 때문에 지금 그림을 그리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을지도 모르겠다.


아예 말도 안 된다고 하기에는 나는 피아노를 전공한 것이 더 이상할 정도로 그 전까지는 장래희망에 항상 디자이너를 적어 냈었다. 피아노도 돈이 많이 들기는 마찬가지였는데 왜 미술학원은 안 보내주고 피아노는 하고 싶다니까 바로 전공까지 허락해줬는지는 아직도 모르겠지만 그렇다고 후회하지는 않는다.


피아노를 했기 때문에 얻은 소중한 것이 너무 많이 때문이다. 대학생 때는 재수한 것이 가장 큰 실패라고 생각했었는데 졸업하고 몇 년이 지나 이제는 20대 후반이 되어보니 나는 아직 완전한 실패를 겪어 보지 못했고, 나의 선택에 후회를 해 본적도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실패를 통해 성장한다는 말이 있긴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실패를 꼭 하고 싶지는 않다. 하지만 살다 보면 크고 작은 실패를 경험할 수 밖에 없을텐데 그때는 피아노를 한 기억으로 버텨냈으면 좋겠다. 하는 동안 내내 힘들었고, 혼자 울었고, 후회했지만 나의 고등학교-대학교 추억은 모두 피아노로 이루어져 있고 무언가에 최선을 다해 본 기억을 갖게 해 준 것만으로도 충분하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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