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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리 Jun 29. 2024

해외에서 살고 싶은 이유

어렸을 때는 막연히 외국 남자랑 결혼하고 싶었다…(ㅋㅋㅋㅋㅋㅋ) 질풍노도의 시기였으니 해외에서 살 수 있는 가장 쉬운 방법은 그 나라 사람과 결혼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러다가 피아노를 전공하면서 독일, 오스트리아 등 음악이 유명한 국가를 알아보기 시작했고, 대학원을 선택지에 올려놓으면서 전공이 유명한 대학이나 교수가 있고, 취업까지 수월하게 연계될 수 있는 국가로 선택지를 좁혔던 것 같다.


그렇다면 지금 가고 싶은 이유는 무엇일까?


사실 퇴사하고 몇 개월 정도는 목표가 정확히 있었지만 그 목표가 흐지부지 무너지고 실패를 반복하면서 '여기서도 이러고 있는데 말도 통하지 않고, 아는 사람 한 명도 없는 낯선 곳에서 내가 뭘 할 수 있겠어?' 하는 생각에 해외에 나가겠다는 선택지를 없앴던 시기가 있었다.


그렇게 의욕은 없지만 아무것도 안 하고 쉴 성격은 또 안 돼서 아르바이트는 계속 하고, 관심 생기는 분야가 있으면 하다가 금방 포기하고를 반복하던 와중에 가치관이 변하게 되었다. 지금까지 방황했던 이유도 내가 좋아해서, 잘할 수 있을 것 같아서 관심을 가졌다기 보다는 요즘 뜨는 분야라서, 연봉이 높아서, 해외에서 수요가 많은 직업이라서 등 여러 이유도 있었지만 "돈"과 "안정성"에만 목적을 두고 찾는 경향이 강했기 때문이다.


그냥 돈을 많이 벌고 싶었기 때문에 그랬다. 그러다가 굳이 내가 돈에만 매달려서 선택해야 할 이유가 있나? 하는 생각과 함께 돈에 최우선을 두던 가치관이 변하게 되었다. 사실 언제 어느 시점에서 이렇게 된 건지는 지금도 명확하게 알지 못하겠다.


*


다만, 퇴사를 하고 본가에 지내면서 엄마와 새벽에 이야기를 나눌 시간이 많아질 수 밖에 없었는데 엄마는 내가 어린 시절부터 속에 있는 이야기를 빠짐없이 얘기하고는 했다. (정말 하지 않아야 하는 얘기 말고) 그러다 보니 나는 우리 집의 경제 상황이 좋지 않은 줄 알고 커왔고, 피아노 전공을 하면서 빚을 냈다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에 더더욱 그런 생각이 뿌리 깊게 박혀 있었다.


엄청 어렵게 살지도 않았고(집에서 팔뚝만한 쥐와 살았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여행도 꽤 다녔던 편이고, 주말마다 외식은 필수였지만 명품에 관심이 없어서 딱히 신경 쓰이지 않아 남들 다 있던 노스페이스 패딩이나 한창 유행했던 망토나 .. 하나씩은 있던 메이커 제품을 산 적도, 사달라고 한 적도 없었다.


그건 관심없던 이유도 있겠지만 무의식 중에 택시하는 아빠나 가게를 하는 엄마가 힘들다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그런 학창시절을 지내고 보니 내가 편입을 하고, 아빠가 개인택시를 받으면서 형편이 조금은 나아졌을 거라고 짐작은 하면서도 그런 변화가 크게 영향을 주지는 않았을거라고 생각했다.


*


이렇게 오랫동안 박혀 있던 나의 선입견이 바뀐 건 엄마와 이야기를 나누면서이다. 나 말고 동생의 일이 포함된 여러 이유도 있었지만 엄마는 내가 우리 집이 힘들다고 생각하고 있다는 걸 많이 황당해 했다. "OO아, 우리 이 정도면 잘 사는 거야. 빚도 이번 년도만 갚으면 없어. 3년 뒤에 지금 살고 있는 곳이나 다른 동네 아파트만 분양 받아서 사면 엄마, 아빠는 죽을 때까지 편하게 살 수 있어."


이 말을 들으니까 순간 띵해서 '뭐야, 그럼 우리 집 가난한거 아니네? 엄마아빠 노후도 내가 심각하게 걱정할 필요 없는거잖아.' 라는 생각이 드는 순간 돈이 최우선이었던 가치관이 순식간에 뒤바뀌기 시작했다. 그렇게 나는 다시 해외로 나갈 결심을 하게 됐다.


대학원이라는 마지막 목표가 없어지고 해외로 나갈 큰 이유가 사라지니 '여기서도 힘든데 가서 뭘해?' 하던 나는 '한국이나 외국이나 사람 사는 건 똑같지'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고, 그렇게 생각이 바뀌게 되니까 어디서든 할 수 있는 일은 많고, 내가 할 일도 많다까지 연결할 수 있게 되었다.


사실 한국에서도 할 일은 많다고 생각한다. 남들 시선만 신경 쓰지 않는다면. 하지만 사랑하는 가족과 친구들이 있는 곳에서는 나 혼자만 신경 쓰지 않는다고 끝나는 문제가 아니라는 걸 잘 알고 있다. 친구들은 괜찮을지라도 부모님은 지인을 만나서 하는 이야기가 대부분 자식 이야기인 걸 잘 알고 있고, 명절 때 나는 가지 않더라도 부모님이 가게 되면 친척과 할 얘기도 나와 동생 이야기 뿐이다.


한국에서는 내가 아무리 만족하면서 일을 하더라도 직접적으로든 간접적으로든 말을 얹는 사람들이 차고 넘치는데 같은 일을 해외에서 한다면 평생 얼굴 볼 일도, 신경 쓸 일도 없다는 게 가장 좋은 점이다. 누군가 보면 회피라고 할 수도 있다. 결국 말은 똑같이 하는데 나는 멀리 떨어져 있으니 들을 수 없어서 마음이 편한 것 뿐이니까.


하지만, 사람이 사는데 마음이 편하면 다 아닐까? 돈, 자유, 가족 … 어느 것을 최우선 가치로 삼든 결국 몸과 마음이 편하기 위한 부수적인 것들이니까. (물론 몸이 편한 건 상대적인 것^^) 그리고 보이지 않는 곳에서 하는 고생은 부모님께 말하지 않는 이상 걱정 끼칠 일이 없어서 더 좋은 것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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