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여름이면 예전 오산 작업실에서 키우던 작은 블루베리 나무가 생각난다. 몇 개 안 달린 블루베리 열매가 익기만을 기대하며 기다리다 보면 새들이 포로롱 포로롱 날아와 어느새 익은 열매를 따먹으며 한참을 머물다 떠나는 장면을 창밖으로 보게 된다.
몇 년 전 은정 작가님이 가지치기해 온 블루베리를 간단히 그렸었는데, 올랑보아진 여름호 주제를 고민하던 중 여름이 제철인 블루베리를 다시 한번 그려볼까 하는 생각이 들게 되었다.
당시에 블루베리 열매의 뽀샤시한 표현을 연습해 보려는 마음으로 간단하게 작은 가지 하나를 그렸었는데, 채색 과정이 꽤 재미있었고 더 잘 그려보고 싶기도 해서 다음에 다시 한번 시도해 봐야겠다고 마음먹었었다.
블루베리는 북아메리카에 자생하며 우리나라에서는 2000년대 들어서야 일부 재배가 시작되면서 국내에서 재배된 신선한 블루베리를 맛볼 수 있게 된 지는 얼마 되지 않았다.
블루베리 종류에 대해 조사하다 보니 최근 국산 품종이 개발되었다는 소식이 있었다.
전 세계적인 기후변화와 다가오는 식량위기로 도배된 뉴스 속에 우리 농가에서도 로열티 없이 경쟁력 있는 블루베리 작물을 수확할 수 있게 되었다는 소식이 더욱 기쁘게 다가왔다.
현재 재배되는 다양한 품종마다 모양도 특징도 조금씩 다르다고 한다. 나무의 모양이나 열매 수확 시기, 내한성, 열매가 달리는 양, 크기와 맛, 열과 저항성 등 다양한 재배상의 특징으로 구분되어, 내가 그리는 블루베리의 정확한 품종 구분은 나로서는 불가능했다.
이번에도 은정 작가님이 정읍에서 가지치기해다 준 블루베리를 모델로 삼아 스케치를 시작하게 되었다.
스케치를 하는 과정은 대상을 구석구석 이해하게 되는 과정이다.
전체적으로 가지의 진행방향과 어긋나는 잎들의 간격을 살펴보다 보니, 먼저 익은 열매가 떨어진 흔적을 이해하게 된다. 알알이 달리는 방식과 익는 순서, 익은 정도에 따른 크기 차이와 색 변화가 먼저 눈에 들어온다.
이렇게 많은 열매를 매달고 있는데 가지는 상대적으로 가늘어서 아래로 처져 있을 수밖에 없겠구나 싶다.
애초 계획은 한 가지만 풍성하게 그려보려고 했는데 가지마다 달린 블루베리 모양이 너무 예뻐서 결국 두 가지를 교차시켜 넣어서 구도를 잡았다.
그런데 연필로 완성한 스케치를 트레이싱지에 옮기다 보니 두 번째 가지의 열매와 잎 사이의 겹침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
다시 고민 시작.
결국, 작품종이에 밑그림을 옮기기 전 위치를 고민해 보고 가지의 방향과 열매의 위치를 수정하였는데, 채색에 들어가기 전에 잠시 여유를 가지고 밑그림을 점검하며 한 번 더 스케치를 보완하였다.
블루베리 표면은 뽀얀 분가루를 입고 있다. 마찰이나 긁힘이 없다면 뽀얀 표면 그대로이겠지만, 바람에 흔들리며 잎이나 가지에 마찰이 되거나, 손이 닿거나 한 자리는 표면 안쪽의 짙은 검푸른 색이 드러나게 된다. 뽀얀 표면은 물을 많이 섞은 인디고(Indigo)와 델프트블루(Delft blue) 색으로 구형의 하이라이트와 음영의 위치를 감안하여 기본 색을 입힌다.
덜 익어 붉은색이 살짝 비치는 부분에는 바이올렛(Violet)과 마젠타(Magenta)를 옅게 추가하고, 음영이 짙은 부분은 페인스그레이(Payne’s grey)로 긁혀서 드러난 표면을 섬세하게 그려주었다.
아직 익지 않아 붉은색을 띠는 열매는 물을 많이 섞은 마젠타(Magenta)를 기본색으로 하여, 햇볕에 익어가는 부분은 카마인(Carmine)과 바이올렛(Violet) 계열을 추가하고, 덜 익은 부분은 옅은 레몬옐로우(Lemon yellow)와 밝은 올리브그린(Olive green) 계열을 추가하여 채색하였다.
블루베리 잎은 살짝 두께가 있어 약간 빳빳한 느낌에 자잘한 거치를 가지고 있다. 잎은 어긋나며 가지 끝으로 갈수록 크고, 뒷면은 옅은 회녹색을 띄고 있다.
잎의 크기가 작아 처음부터 잎맥의 위치를 스케치하듯 그려준 뒤 잎맥을 남기는 방식으로 채색을 시작하였다.
다음 전체적으로 워시를 추가하면서 밝은 면을 남겨주고 음영에 색을 더했다.
이번 블루베리 작품에서 애초에 치밀하지 못했던 계획이 과정상에서 큰 고민으로 다가왔던 부분이 있다. 열매와 잎가지의 모양과 알알이 익어가는 블루베리의 다양한 색에 혹해서 빠르게 스케치를 완성하였는데, 작품을 시작하고 나서야 두 개의 가지 모두 충분히 익은 블루베리의 매력적인 모습을 제대로 보여주고 있지 못하다는 점을 깨닫게 되었다.
고민 끝에 두 번째 가지 채색에 들어가기 전, 열매의 크기와 모양을 바꾸어 밑그림을 일부 수정하고 푸르게 익은 블루베리 열매자료를 참조하여 더 익은 열매로 바꾸어 채색하기로 하였다.
결과적으로 더 마음에 드는 색 조합의 작품으로 완성하기는 했지만, 작품 시작에 앞서 충분한 준비와 계획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느끼게 된 과정이었다.
지나고 보면 느끼고 알고 있는 것과 이를 실제로 실행한다는 것은 별개의 이야기인 듯하다.
늘 그렇듯이 한 작품 한 작품 완성하다 보면 언젠가는 실수를 되풀이하지 않는 날도 오겠지…
완벽주의자가 아니라 긍정주의자인 나는 일단 작품 완성을 기쁘게 맞이하며 오늘 행복한 하루를 마무리한다.
최지연 作
블루베리 Blueberry
Watercolor
297×360m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