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콤한 꽃 향기가 나는 으름덩굴은 산에서도 간혹 마주치게 되는 우리나라 자생식물이다.
산행을 그다지 즐기지 않는 나는 수목원 탐방을 통해 으름덩굴을 알게 되었는데, 오산 물향기수목원 앞에 작업실을 두고 그림을 그리게 되면서 으름덩굴을 더욱 가까이서 자주 만날 수 있었다.
물향기수목원은 경기도립수목원으로 2000년부터 조성되어 다양한 식물들을 관찰할 수 있는데, 입구에서 주차장을 지나 매표소로 이어지는 긴 터널에 으름덩굴이 멋지게 자라고 있다.
봄에는 보라색에 가까운 연한 분홍빛의 꽃을 풍성하게 보여주고, 가을에는 탐스러운 열매로 마음을 풍족하게 하는 으름덩굴은 다섯 개의 손모양겹잎으로 Five-leaf chocolate vine이라는 영명으로 불린다.
물향기수목원에는 입구의 터널 외에도 연구소가 있는 건물 옆 정자에서도 으름덩굴을 볼 수 있는데, 2021년 봄 막 피어나는 생생한 꽃과 연둣빛 새잎에 홀딱 반해 으름덩굴을 그려 보기로 마음먹었다.
그런데 어라? 잎의 개수가 좀 많다? 으름덩굴은 보통 5개의 겹잎을 가지는 것으로 알고 있었는데, 이 아이는 보통이 7개로, 드물게 6개의 겹잎을 가지고 있었다.
다른 종인가 싶어 자료를 찾아보니 ‘여덟잎으름’으로 보통 6~9개의 겹잎을 가지는 별개의 종으로 분류되어 있었다. (영명 Eight-leaf chocolate vine, 학명 Akebia quinata f. polyphylla (Nakai) Hiyama)
유사종의 구분이나 학명을 확인하기 위해 국가생물종지식정보시스템 (http://www.nature.go.kr) 사이트를 주로 참고하는데, 작품을 완성한 2021년까지만 하더라도 별개의 종으로 구분되어 있던 ‘여덟잎으름’은 2023년 현재 ‘으름덩굴’ (영명 Five-leaf chocolate vine, 학명 Akebia quinata (Houtt.) Decne.)로 통합되어 있다. 아마도 환경변화나 일시적 생태형질변화로 발생한 국소지역의 지리적 변종으로 판단되어 별개의 종으로 등록하지는 못한 모양이다.
지난 올랑보아진 봄호에서 깽깽이풀과 학명 구조에서 다루었던 대로, 새로운 종으로 등록되기 위해서는 다양한 변이와 형태적 차이가 충분히 연구되어야 하는데, ‘여덟잎으름’의 경우는 그러한 연구 결과 현재까지는(?) 별개의 종으로 등록할 만한 차이가 없었던 것으로 추측할 따름이다.
5개의 겹잎을 가졌던 으름덩굴이 어떤 지역이나 환경에서 생존에 유리하도록 6개에서 9개의 겹잎을 가진 개체로 변이 되었다고 생각하니 신기하기도 하다.
몇 년 전 과천으로 이사하면서 근처 관문체육공원 산책길에서 늘 으름덩굴을 만나고 있다.
마찬가지로 터널 길을 만들고 으름덩굴을 심어 놓았는데, 자생 으름덩굴과 함께 재배식물인 흰으름덩굴 (학명 Akebia quinata 'Alba')과 삼엽으름덩굴 (학명 Akebia trifoliata (Thunb.) Koidz.)을 가까이서 볼 수 있다. ‘흰으름덩굴’은 꽃 색만 흰색으로 다를 뿐, 다섯 장의 겹잎 구조는 으름덩굴과 동일하지만, ‘삼엽으름덩굴’은 세 장의 겹잎 구조이면서 구불구불한 잎의 거치가 명확하고, 꽃 색도 짙은 붉은 갈색이고 열매도 옅은 보라색으로 차이가 있다.
길가에 있어 관찰하기엔 좋지만, 가까운 곳에 열린 으름열매는 언제 그렇게 따 가는지, 도통 익어 가는 모습을 보기 어렵고, 터널 지붕 위 손이 닿지 않는 곳에 매달린 열매만 끝까지 남아 있게 된다.
재미있는 것은, 이 재배종들 가운데서 서로 근접하게 심어져 있는 줄기들은 특이한 형태를 보이기도 하는데, 4~5장의 겹잎이면서 구불구불한 거치를 가지고 있기도 하고, 같은 덩굴줄기에 완벽한 5개의 달걀형 겹잎(흰으름덩굴 잎)과 3개의 거치가 있는 겹잎(삼엽으름덩굴 잎)이 동시에 나 있기도 하다.
식물의 구조와 비율을 가늠해 가며 다양하게 스케치를 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어떤 부분을 어떻게 포함시켜 구도를 잡을지 접근하기 쉬워진다. 밑그림 완성을 위한 조각그림으로 힌트를 얻는다고 할까?
미약한 나의 기억력은 휘발성이 매우 강하기에…… 암꽃과 수꽃이 달리는 방식이나 크기, 길이의 차이, 색 변화 등 세부적으로 관찰하고 측정하여 기록해 두었다.
처음 나를 사로잡았던 늘어진 덩굴 꽃가지를 중심에 배치하고 잎과 꽃이 나는 방식을 자연스럽게 보여주기로 하였다.
서로 감고 올라가는 덩굴줄기의 형태와 질감도 매력 있어서, 좌측에 새 가지가 뻗어 나오는 모양을 배경처럼 넣고, 우측에 추가할 가을 열매와 무게 중심을 맞추면 어떨까 생각하게 되었다.
손으로는 스케치를 해 가면서 퍼즐처럼 전체 화면을 머릿속에 그리다 보니, 구성과 구도가 어느 정도 마음속에 자리 잡게 되었다.
꽃이 떨어지기 전 암꽃과 수꽃을 연습 삼아 채색해 보고, 봄날의 연둣빛 잎도 그려 보았다.
이번 으름덩굴 작품은 꽃가지를 여름에 먼저 작업하고, 가을에 열매를 추가하여 완성하였는데, 보통은 모든 구성의 밑그림을 완성해 놓고 채색에 들어가지만, 이번만은 작업시간을 고려하여 확정된 부분을 먼저 작업하였다.
두근두근하는 채색 시작. 이제 막 벌어지기 시작한 암꽃부터.
암술을 둘러싼 외피는 두께가 있지만 속이 비칠 듯 투명한 살구색 분홍빛으로, 꽃잎이 아니라 꽃받침 잎이 변형된 것이라고 한다. 보통 세 조각의 꽃받침 잎으로 이루어지나 두 조각으로 이루어진 암꽃도 자주 볼 수 있었다. 안쪽의 암술은 보통 6개에서 9개로 암술머리에 끈적이는 액이 반짝거린다. 수꽃의 꽃가루가 한 번 붙으면 절대 떨어지기 어려울 정도의 점성이다.
수꽃은 암꽃에 비해 상대적으로 작지만 여러 개가 총상꽃차례로 매달려 한꺼번에 피는데, 보통 세 개의 꽃받침 잎과 6개의 수술로 이루어지며(7~8개의 수술을 가진 것도 간혹 발견되었다.), 중심부에 아주 작은 암술의 흔적이 남아 있다.
모여나기 하는 잎은 긴 잎자루 끝에 6~7개의 겹잎이 둥그렇게 펼치듯이 난다. 새로 난 잎들은 봄볕을 받아 밝은 노랑 연둣빛을 띠고 있다. 꽃가지 윗부분의 새잎들은 햇볕을 잔뜩 받는 순간처럼 더욱 밝고 가볍게 채색해 주었다.
덩굴줄기는 울퉁불퉁한 질감을 가지고 있는데, S자 모양으로 늘어지며 줄기를 따라 위에서 아래로 시선이 흘러가도록 하고 싶었다.
좌측 하단의 덩굴줄기는 굵기도 질감도 도드라져서 전체 그림에 매력적인 균형을 주지만, 무엇보다 줄기가 오른쪽으로 꼬이는 방향을 명확하게 드러내면서 덩굴식물로서의 특징을 제대로 보여주는 듯해서 꼭 넣고 싶었다.
꽃가지를 따라서 시선이 흐르도록 만들어 주고 싶었는데, 이리저리 배열된 구성 요소들 때문에 결과적으로는 의도했던 대로 되지 않았지만, 화면을 구석구석 채우는 구성이 꽤 마음에 드는 구도이다.
으름덩굴의 겹잎은 둥그스름한 달걀모양이나, 끝부분이 오목하게 들어가면서 아래쪽으로 작고 뾰족한 꼬리를 달고 있다.
우측 상단의 빈 공간에 조금 큰 잎 하나를 따로 그려 넣었는데, 나중에 가을 열매를 추가하면서 구도상 조금 더 고민해 보고 넣었어야 했다고 후회했던 부분이다.
빈 공간이 싫었던 것인지, 가을 열매 자리가 충분하다고 생각했던 것인지, 어쨌건 애초의 계획과 달리 즉흥적으로 추가된 요소인데, 조금 아쉬운 부분으로 남고 말았다.
꽃가지 채색을 마무리하고 가을이 오기를 기다린다.
드디어 열매가 익어 가고, 잎도 물들어 가는 가을이 왔다.
가을을 기다린 이유는, 이미 가지고 있는 으름덩굴 자료로 작품을 완성하기보다, 매일 지나다니는 산책길에 만나는 으름덩굴 열매를 실제 눈앞에서 관찰해 가며 구성을 추가하고 싶은 욕심도 있었다.
하지만, 으름이 먹을 수 있는 열매라는 것을 간과했었다. 이런…
파릇파릇한 으름 열매가 조금 익어가나 싶으면 어느새 손을 타서 사라지고, 또 사라지고……
터널 천장에 매달린 열매들은 거리가 너무 멀어서, 표면의 질감을 느껴보고 싶었던 나는 궁여지책으로 야생열매를 채집하시는 분께 으름열매를 주문하였는데, 모두 파릇하게 채 익지 않은 열매들이 박스로 배달되어 왔다. 이 열매들은 관찰 후 100일 동안 술에 담갔다가 건져냈는데, 술 담근 추억만 남았을 뿐 아무래도 마시게 될 것 같지는 않다.
고심 끝에 추가된 가을 열매.
그림 왼쪽에 자리 잡은 묵직한 덩굴줄기와 균형을 맞추기 위하여, 오른쪽에 익어가는 열매가 달린 덩굴 가지와 가을 잎으로 화면을 구성하였다.
암꽃 하나에 암술이 보통 5개에서 9개로 꽤 많아서, 수정이 잘 되면 네다섯 개의 열매가 한꺼번에 매달리기도 하는데, 공원에서는 주로 한 개, 많아야 두 개의 열매가 달린 것을 볼 수 있었다.
겨울을 준비하는 으름덩굴은 물들어 가며 겹잎을 한 장씩 떨구어 낸다.
노랗게, 갈색으로 점점이 물들어가는 가을 잎은 하나하나 너무 예쁘다.
가을 잎 채색이 즐거워 사진에서도 콧노래가 들리는 듯하다.
더 많이 그려 넣고 싶은데 지면에 공간이 별로 남지 않아 아쉬울 따름이다.
완전히 익어서 살짝 벌어진 열매를 추가하여 그려주고 작품을 마무리하였다.
부모님이 어릴 적 산에서 으름열매를 따먹어 본 추억을 이야기하며 맛있는 간식이라 하셨는데, 실제 먹어보니 살짝 달큼하지만 맛은 밋밋한 데다가 씨앗이 잔뜩 들어 있어서 우물우물 씨앗 골라내기에 바빠 먹을 게 없었다. 나에게는 작품과 더불어 꽃 피는 시기부터 열매가 맺고 자라는 과정을 함께할 수 있었던 산책길의 으름덩굴이 늘 옆을 지켜주는 오랜 친구처럼 추억될 것 같기도 하다. 더군다나 이번 으름덩굴은 구성이 꽤 마음에 들게 완성된 작품으로 집에 걸어놓고 매일 보고 있으니 이보다 더 좋을 수 없다.
그림을 완성할 때까지만 해도 ‘여덟잎으름’이라는 특별한 이름으로 불리었는데 이제는 ‘으름덩굴’이 되고 만 나의 작품.
처음에는 국가생물종지식정보시스템을 원망하며 배신감(?)까지 들었었다. 생각해 보면 종의 구분과 학명의 명명이라는 것이 모두 인간이 만들어 낸 일종의 편리한 도구일 따름이고, 식물이든 동물이든 모두 지구상에서 긴 호흡으로 진화를 거듭해 온 존재들이라는 것을 잠시 망각했었나 보다. 서로 경계가 명확하지 않은 생물을 편의상 종으로 구분 지어 놓았을 뿐, 으름덩굴은 환경적응과 생존을 위해 잎을 아홉 개든 열 개든 늘려갈 자유가 있다.
어렸을 적에 내 나이 오십이 되면 이 세상 충분히 살았으니 세상을 떠나도 좋을 것 같다고 생각하기도 했었다. 그런데 이제와 보니 세상은 빠르게 많이 변했고, 죽고 싶어도 백 살까지는 살게 될 듯한 불길한 예감이 든다. 이제 나도 변화하는 환경에 적응하려면 진화해야 할 것 같다.
정해진 것은 없다. 느리다고 해서 변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최지연 作
으름덩굴 Five-leaf chocolate vine
Akebia quinata (Houtt.) Decne.
수채화 Watercolor on paper
360×360m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