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쁨과 슬픔 사이, 나는 봉투를 꺼냈다
오늘 모바일로 두 개의 초대장을 받았다.
하나는 은은한 펄이 들어간 살구빛 청첩장.
다른 하나는 검은 테두리와 함께 무게감이 느껴지는 부고장.
기쁨과 슬픔이 한꺼번에 왔다.
결혼과 죽음, 시작과 끝, 축복과 애도.
두 사람을 위해, 두 개의 봉투를 들고 앉아
나는 조용히 지갑을 꺼냈다.
‘얼마를 해야 할까.’
이 단순한 질문이 마음을 무겁게 눌렀다.
결혼식은 계획된 기쁨이다.
수개월 전부터 날짜를 잡고, 예식장을 예약하고, 드레스를 고르고,
하객 명단을 작성하며 기분 좋은 상상을 덧입힌다.
초대받은 나 역시, 덕담을 준비하고,
옷차림을 정갈하게 다듬으며 그들의 시작을 축하할 준비를 한다.
봉투에 넣을 축의금은 사회적 거리의 척도이자, 마음의 무게다.
가까울수록 조금 더, 부담이 덜한 관계일수록 평균치.
그래도 기본은 있다. 요즘 시세도 대충은 알고 있으니까.
결혼은 돈이 드는 행사지만,
대부분은 예상 가능한 범위 안에서 움직인다.
무리해서 드는 경우는 있어도,
기쁘게 써지는 돈이다. ‘잘 살아라’는 마음이 들어간다.
하지만 부고장은 다르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라는 짧은 문장 속엔
수많은 감정이 숨겨져 있다.
미안함, 슬픔, 놀람, 허망함.
그리고 때때로 죄책감까지.
아직 내곁 지인이 돌아가시는 경우는 아직까지 없다.
거의 부모님이 대부분이다.
'에구, 힘들었겠다.'는 마음이 들고 이제
내게 남은 건 조문이라는 의무다.
“언제 가야 하나, 뭘 준비해야 하지, 얼마를 해야 하지…”
이 모든 걸 고민하는 내 마음 한편이 어딘가 부끄럽다.
장례식은 갑자기 다가온다.
예고도 없이, 기다려주지도 않는다.
그날의 일정은 고인이 아니라, 산 자의 삶에 맞춰 급히 조정된다.
가야 한다.
아무리 바빠도, 아무리 멀어도,
그 이름을 기억하고 있다면 가야 한다.
그것이 우리 사회의 예의고, 마음의 도리다.
그리고 그 도리엔 항상 돈이 붙는다.
장례식장은 조용하지만 결코 가벼운 곳이 아니다.
수의, 관, 화환, 음식, 장지까지.
눈물을 삼킨 자녀들이 바쁘게 움직이는 모습 속에서
나는 한 장의 봉투를 꺼낸다.
내가 건네는 이 작은 종이 한 장이
그들에게 어떤 위로가 될까 생각하면서도,
어쩌면 돈은 위로의 형태일 수밖에 없다는 걸,
나는 또 안다.
결혼 청첩장에는 “축하드립니다”
장례식장에선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같은 날, 두 번의 인사를 준비하며
나는 삶과 죽음을 바라본다.
그리고 생각한다.
과연, 사람은 언제 더 돈이 필요할까.
기쁨은 준비할 수 있지만,
슬픔은 준비되지 않는다.
결혼식은 기대고, 장례식은 감당이다.
결혼식은 함께 쓰는 돈이고,
장례식은 남겨진 이들이 혼자 견뎌야 하는 돈이다.
그래서 결론은 단순하다.
사람이 더 돈이 절실히 필요한 순간은
기쁨보다는 슬픔일 때,
시작보다는 이별일 때이다.
오늘 나는 청첩장과 부고장을 동시에 들고,
두 사람을 위해 각각의 봉투를 준비한다.
그 안엔 돈이 담겨 있지만,
사실은 마음이 담긴 것이다.
축복과 애도, 환희와 애절함을 담은 작은 마음.
인생은 그렇게 늘, 동시에 웃고 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