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빌 – 사랑이라는 이름의 속박〉
처음에는 설렘이었고, 따뜻함이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며, 사랑은 점점 불안이 되었고, 통제가 되었으며
이제는 나조차 나를 잃어버리는 기분이 들었다.
왜일까.
나는 사랑을 하고 있다고 믿었는데,
사랑이 나를 얽매고 있었던 것이다.
데빌, 사랑의 그림자를 마주하다
타로카드 ‘데빌(The Devil)’은
사슬에 묶인 두 사람을 보여준다.
데빌카드는 중독을 뜻하기도 한다.
그들은 사슬에 묶여 있어 보이지만,
실상은 욕망, 중독, 집착이라는 이름의 그림자에게 조종당하고 있다.
사슬은 헐겁다.
뺄 수 있다.
하지만 빼지 않는다.
그 이유는 단 하나다.
그 상태가 익숙해졌기 때문이다.
사랑의 이름으로 벌어지는 억압.
우리는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많은 것을 허용한다.
그 사람이 날 소유하려 하는 것도
자유를 제한하는 것도
감정을 무시당하는 것도
“너를 사랑하니까”라는 말은
때로는 상대를 위한 문장이 아니라,
자기 욕망을 정당화하는 마법의 주문이 된다.
심리적 의존, 그것은 사랑일까
심리학에서 말하는 공감 결핍, 애착 불안, 정서적 중독은
모두 데빌 카드에서 나타나는 그림자의 언어다.
칼 융은 말한다.
“그림자를 직면하지 않으면, 그것은 당신의 삶을 지배할 것이며, 당신은 그것을 운명이라 부를 것이다.”
사랑도 마찬가지다.
데빌은 내 안의 결핍된 무언가를
타인을 통해 채우려는 강박을 상징한다.
사랑은 구속이 아니라 해방이어야 한다
진정한 사랑은 나를 더 나답게 만드는 감정이어야 한다.
하지만 데빌의 사랑은 나를 왜곡시키고,
상대를 통해 존재 가치를 확인하려 한다.
내가 상대의 기분에 휘둘리고 있다면
내가 관계에서 늘 죄책감을 느낀다면
내가 더 이상 나답지 않다면
그 사랑은 '사랑'이 아니라,
‘사랑이라는 이름의 속박’일 수 있다.
당신은 지금, 사랑 안에서 자유로운가?
사랑은 본래 우리를 해방시켜야 한다.
함께 있음으로써, 더 나다워지고
서로의 자유를 존중하면서 더 단단해지는 것.
그것이 러버스의 길이다.
데빌은 늘 말 없이 다가온다.
처음엔 달콤한 말들로,
나중엔 사슬 같은 불안으로.
당신의 사랑은 지금,
어디에 서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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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화 예고
〈너를 사랑하는 내가 나를 잃어갈 때〉
사랑이 깊어질수록 더 많은 내가 사라진다.
진짜 사랑은 나를 지키면서 하는 것이다.
자기 상실에 대한 심리학적 탐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