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 쉴 여유도 없이 빠져나가는 돈들
한 달을 겨우 버티고 나면,
‘이번 달엔 조금이라도 남겠지’ 하는 기대를 해본다.
하지만 통장에 찍힌 숫자는 언제나 나를 조용히 비웃는다.
버는 돈의 반은 이자로, 나머지는 생활비로 빠져나가고,
손에 남는 건 한숨뿐이다.
마이너스가 아닌 게 다행이라며
스스로를 달래보지만, 마음 한구석이 자꾸 무너진다.
아이들이 마트에서 과자 하나를 집어 들며
“엄마, 이거 사도 돼?” 하고 물을 때마다
나는 애써 미소를 지으며 말한다.
“다음에 사자.”
그 말이 입 밖으로 나올 때마다
가슴속 어딘가가 바스러진다.
아이의 눈빛엔 단념이 익숙해져 있었고,
그 익숙함이 나를 더욱 아프게 했다.
새벽에는 일을 더 해보려 책상 앞에 앉지만,
막내가 깰까 봐 키보드 소리조차 조심스럽다.
잠든 아이들의 숨소리 사이로,
내 마음의 피로가 천천히 새어나온다.
‘이게 과연 맞는 삶일까.’
그런 생각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다.
8시간을 일하고 돌아오는 길,
버스 창문에 비친 내 얼굴은 낯설다.
예전엔 웃음이 있었는데,
이젠 무표정이 기본이 돼버렸다.
집에 도착하면 쇼파에 앉을 틈도 없다.
퇴근하자마자 부엌 불을 켜고,
아이들의 저녁을 준비한다.
그리고 현관문을 열며 달려드는 아이들을 향해
애써 웃어 보인다.
그 미소가 아이들에게는 따뜻함일지 모르지만,
내겐 그저 하루를 버티기 위한 마지막 힘이다.
아이들이 “엄마, 오늘 이런 일 있었어” 하며 쏟아내는 말들.
그 작은 대화 하나하나가 내게는 약처럼 스며든다.
피곤해도, 눈이 감겨도,
그 순간만큼은 귀를 닫을 수 없다.
아이들의 웃음이 내 오늘을 버티게 하니까.
밤이 되면 휴대폰을 붙잡고
또다시 검색을 시작한다.
‘조금이라도 나은 일자리’,
‘시간이 덜 드는 아르바이트’,
‘아이들 등하원 사이에 가능한 일’
끝없는 검색창 속에서 희망을 찾지만,
결국엔 아무 페이지도 열지 못한 채
그냥 화면만 바라보다가 눈을 감는다.
밀린 청구서와 독촉 전화는 여전히 나를 쫓는다.
그 벨소리가 울릴 때마다 심장이 철렁 내려앉고,
가끔은 그 소리가 두려워
핸드폰을 뒤집어 놓기도 한다.
그럴 때마다 속으로 되뇌인다.
“그래도 오늘 하루는 넘겼으니까.”
주말엔 아이들을 달래가며 파트타임 일을 나간다.
몇만 원이라도 더 벌면 마음이 조금은 가벼워지지만,
그 시간만큼 아이들이 나 없이 보내야 한다는 생각이
가슴을 아프게 찢는다.
“엄마 언제 와?”
그 물음에 대답하지 못한 채
일터를 나서는 발걸음이 매번 무겁다.
그래도 아이들 앞에서는 늘 괜찮은 척했다.
“엄마 피곤하지 않아, 괜찮아.”
그 말이 입버릇처럼 나왔다.
하지만 사실은 매일이 아슬아슬했다.
내가 무너지는 순간,
이 집의 하루도 무너질 것 같았다.
어느 날 퇴근해 집에 들어서니
집 안이 엉망이었다.
바닥엔 장난감이 흩어져 있고,
식탁 위엔 미처 치우지 못한 과자 부스러기가 있었다.
그런데 그 어질러진 공간 한가운데,
서로를 챙겨주며 웃고 있는 아이들이 있었다.
“엄마, 오늘은 우리가 서로 돌봤어.”
그 한마디에 가슴이 울컥했다.
눈물이 고였지만, 참았다.
아이들이 내 눈물을 보지 않기를 바라며
고개를 돌렸다.
엉망인 집도, 망가진 하루도,
그 순간만큼은 아무렇지 않았다.
그저 이 아이들이 내 곁에 있다는 사실 하나로
다시 버틸 이유가 생겼다.
그래, 나는 오늘도 버틸 것이다.
숨이 막혀도, 이자가 쌓여도,
이 아이들이 웃을 수 있다면
그걸로 충분하다.
언젠가 이 긴 터널이 끝나고
조금은 따뜻한 빛이 비추는 날이 오겠지.
그날까지, 나는 오늘도 살아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