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9. 신용회복을 결심하다.

부끄러움 보다 살아야했다.

by 이숨

그렇게 이자에 치이고, 독촉전화에 시달리며 버텼지만, 늘 그 자리였다.
갚아도 갚아도 늘 제자리였다.
왜일까.
계산기를 두드려보고, 가계부를 다시 정리해봐도 답은 없었다.
눈으로는 갚고 있는데 마음은 전혀 줄지 않았다.
숫자는 줄어드는데, 마음속 공허감은 그대로였다.

월급날 잠시 숨통이 트이는 것 같았지만, 며칠 지나면 모든 돈은 사라졌다.
생활비, 공과금, 카드값, 대출 이자…
하나하나 나누다 보면 결국 내게 남는 건 0원, 아니 마이너스였다.

그럼에도 버텼다.
아이들 웃는 얼굴을 보면 힘이 났고,
‘조금만 더 버티면 괜찮아질 거야’라고 스스로를 달랬다.
하지만 그 ‘조금만’은 늘 내일로 미뤄졌다.
현실은 바뀌지 않았고, 나는 반복되는 고통 속에서 점점 무너졌다.

어느 날, 너무 지쳐 아이들이 잠든 사이 휴대폰을 켰다.
‘빚 갚는 방법’, ‘이자 줄이는 법’, ‘채무 조정’
검색어를 바꿔가며 탈출구를 찾던 중 눈에 들어온 단어 — 신용회복위원회.

솔직히, 그 이름을 보는 순간 마음이 철렁 내려앉았다.
절대 가고 싶지 않았다.
내 인생에 또 다른 흔적을 남기고 싶지 않았고,
‘나는 아직 괜찮다’는 마지막 자존심도 지키고 싶었다.
신용회복이라는 말이 실패의 낙인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그날은 달랐다.
잠이 오지 않았다.
누워 있어도 머릿속에는 ‘다음 달 이자’와 ‘독촉전화’가 계속 떠올랐다.
하루가 밝자 눈을 뜨고 출근 준비를 하면서 또 눈물이 흘렀다.
매일 반복되는 지옥 같은 하루,
이제 정말 끝내고 싶었다.

그때 처음으로 생각했다.
“부끄러워도, 일단 살아야 하지 않을까.”
그 말이 나를 붙들었다.

손이 떨리면서도 휴대폰을 들어 상담 번호를 눌렀다.
전화 연결음이 울리는 동안 온몸이 굳었다.
‘정말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그래도 해야 한다.’
머릿속에서 두 목소리가 싸웠다.

전화를 걸자, 누군가 내 상황을 조용히 듣고 안내해주었다.
말 한마디, 설명 하나하나가
오랜만에 숨을 쉴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주었다.
그 순간, 오랜 압박과 두려움이 조금씩 사라졌다.
눈물이 쏟아졌다.
참았던 마음, 숨겨둔 절박함이 흘러나왔다.

상담이 끝나고 서류를 준비하라는 안내를 받았다.
전화를 끊고 잠시 창밖을 바라보았다.
낮의 햇살이 사무실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마음 한켠이 이상하게 가벼워졌다.
모든 문제가 해결된 건 아니지만,
살아남기 위해 움직일 길이 생겼다는 사실만으로도 숨통이 트였다.

나는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부끄러움보다 살아야지.”

오늘도, 누군가는 같은 길을 걷고 있을 것이다.
끝없는 숫자와 싸우며 하루를 버티고 있을 사람.
그럼에도 당신이 여기까지 버텨왔다는 사실이
누군가에게는 큰 힘이 될 것이다.

살아내느라, 오늘 하루도
당신도 나도, 정말 수고했다.


keyword
이전 09화8. 이자에 치이고, 생활비에 짓눌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