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은 조급했지만, 삶은 계속되어야 했다
상담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 마음이 잠시 가벼워졌다.
누군가에게 내 사정을 털어놓고 나니, 조금은 숨이 트이는 기분이었다.
하지만 그 평온함은 오래가지 않았다.
결과를 기다려야 한다는 현실이 다시 무겁게 내려앉았다.
운전대를 잡은 손끝이 자꾸 떨렸다.
신용회복위원회에서 ‘부동의’ 통보를 받았던 그날이 떠올랐다.
심장이 쿵 내려앉고, 세상이 멈춘 듯했던 그 순간.
“새출발기금에서는 가능성이 높을 거예요.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그 한마디가 그날 내게 남은 마지막 희망이었다.
그런데 기다림은 생각보다 길었다.
며칠, 몇 주, 몇 달이 지나도 소식이 없었다.
그동안 독촉 전화는 멈췄지만,
휴대폰이 울릴 때마다 심장이 먼저 반응했다.
‘이번엔 좋은 소식일까, 아니면 또 부결일까…’
그 불안은 밤마다 나를 깨웠다.
그럼에도 하루는 흘러갔다.
아이들을 등교시키고,
집안일을 마치고,
잠깐 일을 다녀오면 어느새 밤이었다.
똑같은 하루들이 반복되었지만,
그 속에서 나는 조금씩 단단해졌다.
넘어져도 일어나야 한다는 마음 하나로 버텼다.
어느 날, 빨래를 널다 말고 하늘을 올려다봤다.
끝이 없을 것 같던 구름이 서서히 걷히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며 나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그래, 나도 언젠간 이렇게 걷히겠지.”
그 한마디가 내게 작은 위로가 되었다.
그렇게 반년이 지났다.
문자 알림 하나가 도착했다.
손이 떨려 화면을 제대로 누르지도 못한 채,
떨리는 마음으로 확인했다.
“새출발기금 승인 완료.”
그 짧은 문장 하나가 눈앞을 흐리게 만들었다.
참아왔던 눈물이 터져 나왔다.
숨죽여 울었다. 너무 오래, 너무 외롭게 버텨왔으니까.
오랜만에 마음속에서 ‘괜찮다’는 말이 들려왔다.
이제는 매달 약속된 날짜에 맞춰 갚기만 하면 된다.
빚의 무게는 여전했지만,
그 무게를 감당할 길이 생겼다는 사실 하나로도
살아낼 이유가 충분했다.
운전하며 집으로 돌아오는 길,
창문 너머로 부드러운 햇살이 흘러들었다.
차창에 부딪힌 빛이 손등 위로 고요히 내려앉았다.
그 온기는 말없이 내 등을 토닥이며 이렇게 속삭이는 듯했다.
“괜찮아, 정말 잘했어. 여기까지 온 너, 대단해.”
그 순간 마음이 천천히 녹아내렸다.
그동안 움켜쥐었던 불안과 두려움이
햇살 속으로 스며드는 기분이었다.
이제는 도망치는 삶이 아니라,
조금씩 앞으로 걸어가는 삶을 살고 싶다.
완벽하지 않아도, 느려도 괜찮다.
넘어져도 다시 일어서면 된다.
그날의 하늘은 눈부시게 맑았다.
그 빛이 내 마음 깊숙이 스며들었다.
그리고 나는 그날 처음으로,
‘정말, 다시 시작할 수 있겠다.’
그렇게 조용히 미소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