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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잘 견디고 있다고 했지만 내 몸은 아니었나보다

마음을 지키려다 몸이 망가져버린 나.

by 이숨

새출발기금 승인이 완료되고 나서야 비로소 한숨을 돌릴 수 있을 줄 알았다.
“이제부터 열심히 갚아나가면 돼.”
스스로 다짐하며 마음을 다잡았다. 걱정 반, 잘 해낼 수 있다는 의지 반이었다. 긴 시간 동안 무너지지 않으려 애쓰며 버텼던 나 자신이 조금은 대견했다. 그런데 이상했다. 마음은 다잡았는데, 정작 몸은 그렇지 않았다.

아이들이 아직 어려 회사에 다니는 건 생각도 못 했었다. 하지만 빚을 갚아야 한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이제 아이들도 좀 컸으니까, 나 혼자서도 해낼 수 있겠지.” 그렇게 스스로를 다독이며 8시간 근무의 생산직 공장에 들어갔다. 출근길마다 마음속에서는 ‘괜찮아, 조금만 더 버티면 돼’라는 말을 되뇌었다.

하지만 현실은 생각보다 훨씬 더 버거웠다. 아침에는 아이들 등원 준비, 퇴근 후에는 집안일과 저녁 준비. 쉴 틈도 없이 몸이 움직였다. 처음엔 괜찮다고 생각했지만, 어느 날 거울 속 내 얼굴을 보고 놀랐다. 깨끗했던 피부가 완전히 뒤집어져 있었다. 어깨는 늘 뭉쳐 있었고, 밤마다 다리가 저려왔다. 그제야 깨달았다. 마음이 괜찮다고 해서, 몸이 괜찮은 건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계속 말했다.
“나는 괜찮아. 건강해. 아직 버틸 수 있어.”
그 말은 다짐이 아니라 주문에 가까웠다. 그래야 무너지지 않을 것 같았다.
하지만 몸은 이미 한계에 다다르고 있었다. 자잘한 통증이 하루하루 쌓여갔다. 피곤이 누적된다는 말이 이런 거구나 싶었다.

아이들이 잠든 밤, 거실 불을 끄고 혼자 앉아 있으면 묘한 울컥함이 밀려왔다.
‘내가 잘하고 있는 걸까? 이게 맞는 걸까?’
그런 생각이 스칠 때면 일부러 일기를 꺼내 썼다. 글자로 마음을 다독였다.
“그래, 지금도 잘하고 있어. 조금만 더 버티면 돼.”
그 한 줄이 유일하게 나를 위로해주었다.

몸은 망가져가고 있었지만, 그 안에서도 나는 이상하게 단단해지고 있었다.
아파도 멈출 수 없다는 걸, 지쳐도 가야 한다는 걸 이제는 안다.
그리고 깨달았다.
진짜 강함은 무너지지 않는 게 아니라, 무너져도 다시 일어나는 마음이라는 걸.

지금 내 어깨는 여전히 뻣뻣하고, 얼굴은 예전처럼 매끄럽지 않다.
하지만 그건 내가 잘 살아내고 있다는 증거다.
아이들을 지키고, 삶을 이어가기 위해 몸이 대신 고생한 흔적이다.

언젠가 이 터널을 완전히 벗어나면,
그때의 나는 지금보다 더 단단하고, 더 따뜻한 사람이 되어 있을 것이다.
오늘도 거울 앞에서 조용히 속삭인다.
“괜찮아. 조금 느려도 돼. 그래도, 잘하고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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