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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상담, 서류 그리고 다시 서는 첫걸음

복잡했지만, 누군가가 내 손을 잡아주는 기분이었다

by 이숨

대면 상담을 받으러 가는 그 길, 그날의 발걸음은 참으로 무거웠다.
센터 건물 앞에 섰을 때, 발이 바닥에 붙은 듯 움직이지 않았다. 숨을 들이쉬고 내쉬며 겨우 마음을 다잡았다.
“도망치고 싶다. 하지만 살아야 한다. 아이들이 기다리고 있다.”
수없이 되뇌며 겨우 문을 열었다.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고 혼자 온 길, 그 길 위에서 나는 세상에서 가장 작은 존재 같았다.

혹시 나 혼자 덩그러니 앉아 시선이 집중되면 어떡하나, 부끄러움과 두려움이 가슴을 꽉 조였다.
그러나 문을 열고 들어선 순간, 그 두려움은 단숨에 사라졌다.
나와 비슷한 사정을 가진 사람들이 조용히, 그러나 단단하게 앉아 있었다.
그 낯선 공기 속에서 묘한 위로가 밀려왔다.
나만 이런 게 아니구나.
그 침묵 속의 연대가 내 어깨를 감싸 안았다.
눈물이 왈칵 쏟아질 것 같았다.

잠시 후, 내 차례가 되었다. 신분증과 통장 이력을 내밀었다.
상담사는 서류를 차분히 살펴보더니 조심스럽게 말했다.
“현재 상황으로는 신용회복위원회 심사가 조금 어려울 수도 있습니다.”
순간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 모든 게 끝난 것 같았다.

하지만 상담사는 이어서 따뜻하게 말했다.
“가게를 운영하셨군요. 코로나 시기엔 정말 힘드셨을 겁니다.
사장님 같은 분들께는 **‘새출발기금’**을 신청하시면 더 큰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제가 연결해드릴게요.”

그 말 한마디가 나를 구했다.
벼랑 끝에서 건네받은 손 같았다.
내 이야기를 처음부터 끝까지 들어주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이 낯설면서도 감사했다.

복잡한 절차가 이해하기 어려워 몇 번이고 물었지만,
상담사는 귀찮은 기색 없이 내 눈을 바라보며 하나씩 풀어 설명해 주었다.
그 따뜻한 태도에 마음이 천천히 녹았다.
아, 나도 누군가에게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사람이구나.
그 사실이 이렇게 감사할 줄 몰랐다.

잠시의 대화 속에서 나는 깨달았다.
지금까지 혼자라고 생각했지만, 사실 나를 도와주려는 사람이 있었다는 것을.
상담사의 말 한마디 한마디가 낯선 용어와 복잡한 서류 속에서
내 손을 꼭 잡아주는 닻 같았다.
오랜만에 마음이 편안해졌다.

상담이 끝났다고 모든 것이 해결된 것은 아니었다.
여전히 서류를 준비해야 했고, 심사도 남아 있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두렵지 않았다.
‘길은 있구나. 안 되면 또 다른 방법을 찾으면 되지.’
처음으로 스스로에게 괜찮다고 말할 수 있었다.

센터 문을 나서며 하늘을 올려다봤다.
부드러운 햇살이 얼굴을 감싸 안았다.
그 따뜻한 빛이 마음속 깊이 얼어붙었던 오래된 슬픔을 천천히 녹였다.
“괜찮아. 여기까지 온 것만으로도 넌 충분히 잘했어.”

그날의 나는 그렇게 스스로를 다독였다.
빚은 여전히 남아 있고, 삶은 여전히 빠듯하다.
하지만 이제는 혼자가 아니다.
누군가가 나를 도와주었듯,
나도 언젠가 누군가의 손을 잡아줄 수 있을 거라 믿는다.

복잡하고 힘든 과정 속에서도,
누군가가 나를 진심으로 도와주는 기분.
그 따뜻한 기억 하나만으로도 다시 걸을 힘이 생겼다.
혼자가 아니란 것을 느끼는 순간,
내 마음속 긴 어둠이 조금씩 걷히는 기분이었다.

이제는 나도, 언젠가 누군가의 손을 잡아주는 사람이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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