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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승일 Feb 16. 2021

심사위원들을 깔깔 웃게 한 패러디 (feat. 카피추)

재미를 만드는 첫 번째 원리가 '특이'라면, 두 번째 원리는 '전의'(轉意 생각이 바뀜, 의미가 바뀜)입니다. 지금까지 아재개그와 힙합의 펀치라인, 시(詩)에 담긴 전의를 살펴보셨습니다. 조금 지루해진 감이 있어서, 제가 몇년 전 백일장에 나가서 쓴, 대상 다음으로 높은 차상을 받은 패러디 시 한 편을 읽어드리겠습니다. (곧 출간될 책 '재미의 발견'에 수록된 내용입니다^^) 



‘콘텐츠 재밌게 만드는 법 알려준다면서, 국어 수업 시간도 아닌데….’ 조금 지루해진 감이 있어서, 제가 한 백일장에 나가 쓴 패러디 시를 적어봅니다. 오은 시인과 은희경 소설가가 심사위원으로 참여한 이 백일장에서 당시 제가 패러디한 작품은 시인 백석의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였습니다. 부디 이 시를 찾아서 반드시 읽고 오길 바랍니다. 하나의 시가 다른 시가 되는 의미 변화(전의)를 즐기기 위해서입니다.      


자... 다 읽었나요? 그럼 시작합니다.      



「나와 곱창과 흰 쌈무」     


살찐 내가

맛있는 곱창을 사랑해서

오늘 밤은 촉촉 침이 고인다

곱창을 사랑은 하고

침은 촉촉 고이고

나는 혼자 쓸쓸히 앉아 소주를 마신다

소주를 마시며 나는 생각한다

곱창과 나는 

침이 촉촉 고이는 이 밤 흰 쌈무를 타고

뱃속으로 가자 출출이 우는 뱃속으로 가 위장에 살자

침은 촉촉 고이고

나는 곱창을 생각하고

곱창을 아니 먹을 수 없다

언제 벌써 내 입속에 고조곤히 와 사르르 녹는다

뱃속으로 가는 것은 다이어트 따위에 지는 것이 아니다

다이어트 따위 더러워서 버리는 것이다

침은 촉촉 고이고

맛있는 곱창은 나를 사랑하고

어데서 흰 쌈무도 오늘 밤이 좋아서 아삭아삭 울 것이다    

    


부디 피식했길 바랍니다. 그러지 않아도 무방합니다. 모든 이에게 재미를 주는 콘텐츠는 없습니다. 1,600만 관객이 본 코미디 영화 <극한직업> 역시 좋아하지 않는 사람도 많았으니까요. 우리 모두는 각자 살아온 역사가 달라서 어떤 특·전·격이 끼치는 영향 역시 사람마다 갈립니다. 대다수에게 당혹과 집중을 일으키는 특·전·격도 누군가에게는 별 감흥이 없을 수 있습니다. 재미는 가치관과 밀접한 연관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에게 재미있는 것이 어떤 사람에겐 비난의 대상일 수 있습니다. 또한, 어떤 사람에게 어떤 특·전·격이 어떻게 다가오느냐는 그 사람의 기분 상태에도 영향을 받습니다. 예를 들어 <극한직업>을 보고도 웃지 않는 사람 중에는 그날 누군가와 싸웠거나, 기분이 좋지 않은 이도 있을 테지요.         


다시 백일장으로 돌아와서, 시 전체에 의미 변화를 만드는 동시에, 그 변화가 독자를 웃게 할 소재가 무엇인가 생각하니, 그건 바로 곱창이었습니다. 코미디언 김준현이 곱창 앞에서 침 흘리는 모습을 상상했습니다. 어떤 대상을 갈구하는 것은 사랑이나 식욕이나 크게 다르지 않아 보였습니다.      


의미 변화의 중심축을 ‘나타샤 -> 곱창’으로 정하니 다음은 술술 풀렸습니다. 김준현이 앉아 있는 곱창집 풍경을 상상하기만 하면 됐으니까요. 패러디는 이렇게 어떤 것에서 격차 큰 의미를 만들어 시청자를 당혹하고 집중하게 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전의가 꽤나 효과적이었는지 저는 이 쉽게 쓰인 작품으로 운문 부문 차상을 받았습니다. 심사위원 은희경 작가는 저에게 “어찌나 웃기던지 심사위원들이 다 깔깔 웃느라 정신없었다”고 말해줬습니다.    

  

한편, 2019년 큰 화제를 모았던 코미디언 추대엽, 일명 ‘카피추’의 인기 역시 패러디의 전의(轉意)를 효과적으로 활용한 데 기인합니다. 그는 원곡의 멜로디를 다른 멜로디와 이어붙이고 코믹스럽게 개사해 노래를 부릅니다.      


‘보고 싶다고 다 볼 수 있다면 이별 없는 세상이겠죠’

                                      카피추

아무리 기다려 봐라 오나

아무리 통곡해봐야 걘 안 와

보고 싶다는 말은 하지 마

울고 싶을 땐 그냥 울자 

미칠 듯 사랑했던 기억 너머 저편으로

우리 함께 떠나자 

죽을 만큼이라곤 볼 순 없지만      


“아무리 기다려 봐라 오나”까지 청자는 노래의 멜로디가 가수 김범수의 ‘보고싶다’일 거라 생각하지만 그러한 생각은 멜로디가 더 전개되며 바뀝니다. 원곡이 담았던 의미 역시 원곡과 아주 다른 의미를 갖게 됩니다. 이 두 번의 전의에 시청자는 당혹하며 집중하고, 깔깔 웃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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