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로 집에 있는 시간이 늘었는데, 당신은 무엇을 보고 있는가. 아마도 넷플릭스나 왓챠만 틀고 있을 당신에게 소설을 권한다. 새로운 것을 지향하며 개성이 강한 것을 ‘힙하다’라고 표현한다면, 소설은 가장 힙한 콘텐츠다.
소설은 영화나 드라마보다 창조적이다. 영화나 드라마는 관객수와 시청률이 우선이다 보니 기존에 통했던 플롯과 소재, 전략을 그대로 사용하는 경우가 많고, 결과적으로 안전하고 보수적인 콘텐츠가 된다. 반면, 소설에서는 여러 면에서 틀을 깨는 창조적인 시도를 좀 더 흔하게 볼 수 있다.
소설은 작가 혼자 제작하는 콘텐츠인 반면, 영화나 드라마에서 감독은 상대적으로 자본에 휘둘리기 때문이다. 가령 영화감독이 제작자와 의견이 안 맞아 쫓겨났다는 뉴스가 종종 나오지만, 소설에는 그런 일이 없다. 기본적으로 몇백억 단위의 투자를 받아 제작하는 영화나 드라마는 자본의 눈치를 간과할 수 없다.
물론, 소설도 창조적이지 않은 경우가 있고, 거대 자본의 투자를 받는 데 실패한 독립영화들도 더러 있지만 비교적 드물다는 얘기다. 창조적인 시도는 극장이나 TV에서보다 서점에서 훨씬 많이 볼 수 있다. 가령 올해 제11회 문학동네 젊은작가상 대상 수상작인 강화길 작가의 「음복」은 가족의 제사상 앞에서 전에 없던 형식의 스릴러를 펼쳐내며 가부장제를 비판한다.
강화길의 소설이 거침없이 가부장제를 비판했듯, 이데올로기적인 면에서도 소설은 최전선에 있다. 그래서 소설은 가장 진보적인 콘텐츠다. 영화나 드라마는 그 환경적인 요인으로 인해 재미라는 요소에 초점을 맞출 수밖에 없지만, 소설을 펼치면 우리 사회에 변화가 시작되는 부분과 사회의 현안을 비교적 오롯이 알 수 있다. 소설을 즐겨 읽는 사람이라면 최근 소설들이 그 어느 때보다 여성과 성소수자 문제를 중심으로 다루고 있으며, 그것이 사회를 조금씩 바꿔나가고 있음을 알 것이다.
소설은 또한 영화나 드라마와 비교해 그 안에 담고 있는 정보의 밀도가 높다. 그래서 하나의 소설을 온전히 드라마화나 영화화하기란 쉬운 작업이 아니다. 설령 그것이 가능하다고 해도 담을 수 있는 분량의 한계로 인해 감독의 머리는 지끈할 수 있다. 그 밀도가 높기 때문에, 소설은 상대적으로 하나의 이야기가 독자의 관점에 따라 다양한 이야기로 변화한다.
“소설은 그때그때 다른 관점으로 읽을 수 있다. 초점을 어디에 맞추느냐에 따라 중심이 옮겨지고 전혀 다르게 읽히는 것이 소설”이라고 철학자 김진영은 책 『철학자 김진영의 전복적 소설 읽기』에서 말한다. 가령 김진영은 책에서 레오 톨스토이의 단편 『이반 일리치의 죽음』을 ▲사회 비판적인 면 ▲죽음의 권리를 되찾는 면 ▲성경적인 면 등 관점을 달리해 다르게 읽는다.
마지막으로, 소설은 공감능력을 기를 수 있는 장이다. 김영준 열린책들 편집이사는 <한겨레> 칼럼에서 “소설을 읽기 위해서는 타인의 상황과 감정에 일단 공감하는 게 전제되고, 읽기를 마치면 투자한 것보다 더 많은 공감을 돌려받게 되니 좋은 훈련이 되는 게 당연할 것”이라고 말한다.
소설만큼 풍부한 감정을 담고 있는 콘텐츠는 드물다. 영장류가 자신과 타인의 감정을 이해하는 선천적인 능력을 지니고 있음을 밝힌 이론을 ‘마음이론’(Theory of Mind)이라고 하는데, 최근 과학자들의 연구에 따르면 소설을 읽는 것은 마음이론의 유지 및 개선에 도움이 된다. 소설, 이토록 힙한 콘텐츠를 두고 지금 무엇을 보고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