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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reenBigstar Aug 18. 2017

끝을 알았을 때
선택할 태도에 대하여

영화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



"결국 그렇게 될 줄 알았어!" 

결말까지 모두 드러난 상황에서 흔히 내뱉는 표현이다. 정말로 예언자처럼 결과가 그렇게 되리라고 예상했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게 사실이라고 하더라도 결말에 이르기 전에 그 예상을 공유하여 현실에 의미를 부여한 경우가 아니라면 그 예상의 적중은 무의미하다. 그게 사실이라는 확신을 갖고 있었다면 왜 애초에 예언자로 데뷔하지 않고 사는가. 

사람의 생각은 여러 가지 갈래로 이어진다. 어느 날은 이 길로 생각이 그려지지만 또 다른 날에는 저 길로 생각이 그려진다. 그 수많은 생각이 가지를 치며 시간이 지나고 결과가 드러났을 때 마치 사다리 타기 게임의 순서를 거꾸로 돌리듯이 결과에 다다르는 선들만 역으로 따라가면서 쉽게 말할 수 있다. '역시 내 예감은 틀리지 않았어.'라고 말이다. 수많은 생각들 중에 결과에 맞는 생각들만 기억으로 남기며 마치 다른 생각은 없었던 것인 냥 자신부터 속인다. 하지만 앞에 적었듯이 결과가 나온 다음에야 그 예감이 맞았다고 해서 어디에 써먹겠는가. 다 부질없는 짓이다. 


그러니 결말을 알게 됐을 때 선택할 태도의 방향을 조금은 바꾸는 것이 생산적일지도 모르겠다. 역시 예감대로 됐다는 확신을 갖고 의기양양함을 과시하는 태도는 무 쓸모일 뿐이다. 결과에 예감을 끼워 맞추며 적중률에 안도하는 대신에 결과를 만든 원인들은 무엇이었는지 되짚어보는 것이 의미 있지 않겠는가. 그 원인들이 어떤 영향을 미치면서 이 결과를 만들어냈는지, 그 원인에 다른 대안은 없었을지, 다른 대안이 있었다면 결과는 달라졌을지를 되짚어보는 게 더 생산성 있지 않겠는가. 결과를 만난 그 순간이 생의 끝이 아니라 최소한 앞으로 살 날이 더 남아있다고 생각한다면 말이다. 어차피 결론에 이르렀을 때 예감은 틀리지 않는 게 아니라 대부분 틀리기 마련이니 말이다.



영화 속 토니(빌리 하울, 짐 브로드벤트)는 라이카 같은 명품 브랜드의 클래식 카메라를 판매하고 수리하는 작은 가게를 운영한다. 예순이 넘은 나이에 소일거리로 하는 일처럼 보인다. 한창 때는 카메라 관련된 일을 하면서 남부럽지 않은 사회적 지위를 가진 것 같다. 이혼한 전 부인은 변호사로 활동 중이고 PR전문가인 딸은 미혼모로 출산을 앞두고 있다. 그런 그에게 20대 때의 첫사랑이었던 베로니카(프레야 메이버, 샬롯 램플링)의 모친인 사라가 유산을 남겼다는 편지가 도착한다. 유산은 500파운드의 돈과 일기장인데 그 일기장을 받지 못한다. 그 이유는 사라의 딸이자 그의 첫사랑인 베로니카가 그 일기장을 넘겨주지 않기 때문이다. 더욱이 그 일기장은 토니의 옛 친구이자 토니의 첫사랑인 베로니카와 연인 사이가 됐던, 그러나 그 시절에 자살했던 에드리안의 것임이 밝혀진다. 자기만족 속에 자기 스타일대로 살아온 남자에게 찾아온 20대의 추억들이 그의 안에서 여러 기억을 되살린다. 그리고 끝내 베로니카와 재회하면서 밝혀지는 충격적인 사실들 앞에 토니가 선택한 기억이 만들었던 예감은 산산조각이 난다.

이미 벌어진 일이 후회하고 괴로워한다고 해서 되돌려 지는 것도 아니다. 어쩌면 베로니카와 에드리안이 겪었던 일은 토니의 일이 되었을 수도 있다. 하지만 결과는 이것이고 기억은 왜곡됐으며 예감은 모두 틀렸다. 충격적인 사실을 파악하게 된 영화의 결말에 이르러 토니는 자신이 선택하지 않았던 실제의 기억들이 이런 결과를 만들어내는 데 어떤 원인으로 작용했는지 다시 조각을 맞춰본다. 그리고 그 끝에 토니는 달라지기로 한다. 



수많은 갈래의 기억들 중에 무엇이 맞고 무엇이 틀렸는지를 가려주는 수단은 그때 남겼던 기록이다. 영화 속에는 역사를 빗대어 ' 부정확한 기억이 불충분한 문서와 만나는 지점에서 빚어지는 확신'이라고 말한다. 현재 진행형의 기술이 아니라는 점에서 역사가 가질 수 있는 허술함과 왜곡에 대해 생각하게 한다. 그러나 만약 확실한 문서가 있다면 부정확한 기억을 바로 잡을 수 있지 않을까. 물론 그렇다 해도 시간이라는 혼란 요소가 남아있긴 하겠지만 영화를 보는 내내 기억의 정확성을 도통 신뢰할 수 없게 되는 상황에서 확실한 기록으로 남은 문서에 신뢰가 생길 따름이다.  

영화 속 토니에게 기록의 기능을 하고 확실한 문서 역할을 해주는 것은 편지다. 딸의 집에 방문했을 때 윗집 때문에 문제가 생긴 벽면을 보면서 항의의 의미로 편지를 대신 써줄지를 묻기도 한다. 그가 편지의 기능에 대해 누구보다 신뢰하고 있다는 것을 추측하게 하는 장면이다. 그리고 베로니카가 건넨 한 통의 편지는 토니의 왜곡된 기억을 바로잡고 과거에 쓰인 그 편지가 결과에 어떤 원인 요소가 되었을지 짐작하게 한다. 토니는 카메라에 정통했고 사진을 찍으며 기록을 남기는 것에 의미를 두는 인물 같아 보이지만 그런 기록과 상관없이 기억을 자신만의 기술로 편집하며 살아왔다. 그것은 비단 토니만의 모습은 아닐 것이다. 그런 기억의 부실함을 편지라는 기록은 바로잡는 기능을 한다. 

토니의 편지가 결과에 미친 영향만큼이나 글이란 말보다 더욱 날카롭게 느껴진다. 그 모든 것을 끝장내버릴 수 있는 것으로서 강력한 힘을 지닌 것이 글이라는 생각을 다시금 해보게 됐다. 토니의 편지를 받은 순간 베로니카는 이것이 토니와의 관계의 끝이라고 생각했을 것 같다. 하지만 그 편지를 쓴 토니는 예순이 넘어서도 그 관계의 끝을 예감하지 못했다. 만남을 피하는 자신을 집요하게 따라오는 토니에게 정말 끝을 내고 싶은 모양이라고 묻는 베로니카의 서늘한 시선을 보자면 이 편지가 원인이 된 결과가 드러났을 때 토니의 삶도 한 단계의 종지부를 찍게 되리라는 예감을 하게 된다. 그  예감은 틀리지 않았다. 토니의 앞으로의 삶이 어떨지는 아무도 모른다. 어쨌든 그는 삶의 한 단락을 그렇게 마무리 짓게 되었다. 면죄부는 주어지지 않겠지만 자기중심적이었던 그에게 이제 아내와 딸, 손녀가 보이기 시작하는 것이다. 



맨부커상을 수상한 작가 줄리언 반스의 동명 소설을 영화로 만든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의 영문 제목은 'The Sense of an Ending'이다. 자기중심적인 토니는 자신의 예감이 언제나 틀리지 않았다고 생각하면서 살았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그 불행을 예감하고 그 관계로부터 도망쳤을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결과적으로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가 이 이야기의 제목으로 적합하다고 할 수 있겠다. 

하지만 그보다는 결과를 알게 되고 결론을 맞닥뜨렸을 때 깨닫게 되는 것, 결과로 이어지는 원인들을 다시 생각해보고 그 끝에 선택할 태도에 대해 더 무게를 둘 때 이 이야기의 제목은 'The Sense of an Ending'이 어울리는 것 같다. 뒤로 돌아가는 게 아닌 앞으로 흐르는 것을 삶이라고 한다면 과거에 했던 '예감'을 결과에 맞추는 '뒤로 걷기'보다는 결과가 주는 깨달음을 안고 삶을 살아가는 '앞으로 걷기'가 더 낫겠다 싶은 것이다. 판단은 읽고 보는 사람의 몫이긴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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