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물인생 (37)

온화한 함정

by 강도르

새로운 중대장



대리 중대장 임무를 수행한 지 4개월쯤 지났던가, 인사철이 되어 새로운 중대장이 취임했다.

새로 온 중대장은 완전히 새로 부임해 온 사람이 아니었고, 대대 내에서 정보과에서 근무하던 선배 장교였기 때문에 새로운 사람을 맞이한다는 부담감은 없었다. 소위 때부터 부대에 있었던 사람이라, 적응의 문제도 걱정 없었고, 중대원들과도 이미 알고 지낸 사이였기 때문에 나에게는 더할 나위 없는 소식이었다. 책임감에서 약간은 해방된 것 같은 느낌 덕분에 홀가분한 기분이 들었다.

원래도 서글서글한 성격의 사람이라고는 생각하고 있었지만, 직접 겪어보니 정말 그렇게 그려놓은 듯한 사람이었다. 중대 내에서 홀로 고군분투를 하고 있던 나에게는 정말 가뭄에 단비 같은 존재였다.

이전 중대장과는 다르게 나이 차이도 2살 차이밖에 나지 않아서 격 없이 지내기까지 시간도 오래 걸리지 않았다.

직책상 중대장과 부중대장이었지만, 사실상 형 동생처럼 지내는 사이가 되었다.

오랫동안 중대 업무를 도맡아 온 나에게 중대장은 의지할 수 있는 동료였고, 혼자 고군분투하던 나에게 서글서글한 성격의 상관은 그야말로 최고의 조합이 아닐 수가 없었다.



유머의 힘


시간이 지나면서 중대장에 대해서 어떻냐고 물어보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그럴 때마다 예의상, 사회적인 미사여구를 구구절절 이야기를 하곤 했지만, 짧게 얘기하자면


웃기는 사람

정말 웃기는 사람이었다.

말끝마다 선동과 조작으로 정정당당히 승부하는 사람이라서, 무슨 말을 하면 쉽게 믿을 수가 없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중대장이 굉장히 통찰력이 있는 사람이 아니었나 싶었다.

간단한 예를 적어보자면, 대대에서 엄격한 사열 준비를 위해서, 자료들을 검토하고 있을 때 자리를 한참 비우더니 벌컥 중대장실에 들어와서는 다짜고짜


사열 취소됐대

갑작스러운 희망찬 소식에 눈을 번쩍이며,


네? 진짭니까?!


라고 묻는 나에게


그럴 리가, 사열 자료 줘봐 당장 다시 하자 더 빡세 졌대


이런 식으로 가벼운 농담을 던지기는 했는데, 사람이 간절히 원하는 것을 던져주면서 기운을 빠지게 했다.

이것도 예상이 되고 반복이 되니 어처구니없이도 유머가 되는 것을 경험하고 나니 기이한 기분이 들었다.

우리 중대장의 별명은 입 벌구 가 되었고, 뭐 그 뜻은 다들 알다시피 입만 열면 구라... 의 줄임말이었다.

그래서 나는 처음에 중대장을 굉장히 성가셔했고, 참 불성실한 사람이라고 생각하긴 했다.

하지만 중대장의 이런 부분들이 생각보다 사람들에게 비호감을 사지는 않았다.

이유가 뭐였을까?

가벼운 태도가 나를 경계하게 했지만, 고압적인 군대에서 약간 목에 준 힘을 빼주는 계기가 되니 다들 허탈하게나마 웃어서 그런가 다들 중대장을 좋아했다. 나는 우리 중대원들이 강인하고, 완벽한 중대장을 원할 거라고 생각했지만, 우리 중대장은 압도적으로 내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중대장의 모습의 대칭점에 있는 인물이었다.

하지만 중대원들은 그런 중대장을 허물없이 대하며 마치 어린아이들 대하듯 모두 좋아했었다.

나는 그 광경을 보고, 정말 신기한 마음을 감출 수가 없었다.

그때 당시의 나는 굉장히 진중하고 엄한 사람이었는데, 그런 나에게도 중대장은 굉장히 허물없이 대해주곤 했다.

뜬금없이 독신자 숙소를 쳐들어 온다거나, 목적지를 말하지 않고 갑자기 데려가기 등 참 당혹스러움을 감출 수 없는 행위들을 많이 당했음에도 이 중대장을 미워하기가 쉽지 않았다.

중대 내에 어려운 업무들을 나에게 미루거나, 난감한 상황일 때 도망친다거나, 상관에게 하기 어려운 껄끄러운 보고 들을 내게 맡기고 사라진다거나.... 사실상 중대의 중대장은 아직 나였다.

그럼에도 크게 문제가 되지 않았던 것은, 엄중한 회의 시간에도 간간이 농담을 던지거나 실없는 소리를 해서 분위기를 가볍게 만들어 주었고, 그런 전환들이 모두에게 필요했기 때문에, 모두가 우리 중대장을 미워하지 않았다.

유머를 가지고 고압적인 자세를 버린 중대장은 장교들 중에서는 굉장한 돌연변이였지만 모두에게 정말 인기가 많았다. 그런 상황을 보면서 나는 '장교'라는 이름 아래 너무 많은 것을 못 본체 달려왔던 것 아닐까라는 생각에 잠기곤 했다.


사라진 규율


마냥 좋을 수는 없었다.

당연하지만 군대는 엄격한 규율이 우선시 되는 곳이었다.

중대장은 말 그대로 중대의 대장이기 때문에 군기는 필요했다.

중대원들은 중대장님을 좋아했지만, 중대장은 좋은 소리를 들을 수 있는 자리가 아니었다.

중대장에게 권위가 필요한 상황에서는 이런 중대장의 좋은 장점은 아주 좋은 함정이었다.

나는 그 중간에서 무너진 균형을 다시 세워야만 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중대장은 내가 아니었다.

마음을 가볍게 가지면 이제 내가 부대에 남아있을 시간은 1년도 채 되지 않는 시간이었고, 내가 남아있을 곳이 아니기 때문에 여기에 대해 진중하게 생각을 해봐야 무의미하다는 생각도 했다.

하지만, 그때 나에게 보여준 중대장의 따스함이 좋았다.

어디를 가던, 나를 데리고 가려고 했고, 나를 필요로 했고, 내게 자신의 이야기를 많이 들려준 것이

마지막까지 도움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가지게 만들었다.

중대장이 못하는 일들을 내가 도맡아서 하려고 했고, 그 와중에 너무 힘든 일들도 많았다.

악역을 자처하는 일도 많았고, 이런 내 입장을 이해하지 못하고 목소리를 제대로 내지 않는 중대장도 내게는 답답했다.

그렇게 시작된 가을은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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