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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종오 Jul 11. 2020

가슴 뛰게 했던 그 '골목길'…그의 마지막이었다

[자연 WITH YOU]  "오일장을 그는 바라지 않았을 것이다"

그는 서울시장 공관에서 나와 ‘골목길’로 접어들었다. 2020년 7월 9일 오전 10시 45분쯤 그는 서울시 종로구 가회동 ‘골목길’을 걸었다. 검은 상의에 하얀 마스크를 쓴 채였다. 공관에서 골목길로 접어들기 전에 그는 총리에게 전화를 걸었다.

“몸이 아파 오늘 점심 약속은 지키지 못할 것 같습니다.”

공관을 나선 그는 오전 10시 55분 와룡공원에 도착했다. 오후 2시 42분에 누군가와 마지막 통화를 한다. 오후 3시 49분쯤 핀란드 대사관저 주변에서 휴대폰 신호가 꺼졌다. 10일 밤 12시쯤 북악산 성곽길 인근에서 그는 숨진 채 발견됐다. 

그를 가슴 뛰게 만들었던 ‘골목길’. 그가 마지막으로 걸었던 ‘골목길’은 힘이 없고 슬퍼 보였다.       


박원순 전 시장 유언장

“모든 분에게 죄송하다

모두 안녕”     


그는 짧은 유언장을 남겼다.

“모든 분에게 죄송하다.

내 삶에서 함께 해 주신 모든 분들에게

감사드린다.

오직 고통밖에 주지 못한 가족에게 내내

미안하다.

화장해서 부모님 산소에 뿌려달라.

모두 안녕.”

박원순 시장이 영면했다.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갑작스러운 죽음이었다. 기자 생활을 하면서 서울시를 출입한 적이 있다. 브리핑할 때, 현장을 점검할 때, 점심이나 저녁을 기자들과 같이 먹을 때 가까운 거리에서 그를 지켜봤다. 그와 나의 고향은 같다. 같은 고향에서 태어나 같은 시대를 함께 고민하고 살아왔다는 점에서도 느낌은 남달랐다. 서울시장이 되기 전 희망제작소 당시에 인터뷰한 적도 있다.  

박원순 시장의 죽음을 두고 말들이 많다. 아무래도 이는 ‘성추행 사건’과 무관해 보이지 않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정치권에서는 이를 쟁점화하고 있다. 정의당 국회의원과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는 공식적으로 박원순 시장 조문을 두고 “가지 않겠다”고 말했다. 여러 국민의 생각처럼 조문을 가고 안 가고는 전적으로 본인의 선택이다. 다만 이를 정치적으로 쟁점화시키는 것은 참 안타깝다. 한 사람의 죽음조차 ‘정치적 손익계산’이 되는 현실이 추하다.  

‘서울특별시장 오일장’으로 치르는 장례 절차를 두고도 말들이 많다. 특히 야권에서는 “성추행과 관련이 있는 만큼 서울특별시장 오일장은 아니다”고 말한다.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박원순 서울시장의 장례를 '서울특별시장(葬)' 형식으로 치르는 것을 반대한다’는 청원에 약 30만 명 이상이 동의했다. 국민적 공감대가 많다.  

‘서울특별시장 오일장’은 그대로 진행될 것으로 보인다. 다만 고인 관점에서 ‘오일장’을 원했을까 하는 부분은 생각해 봐야 할 것 같다. 고인은 유언장에서 “화장해서 부모님 산소에 뿌려달라”고 주문했다. 조용한 장례식에 간단한 절차를 원했을 것으로 보인다. 평소 고인의 모습과 생각을 읽는다면 ‘조용한 장례’가 맞지 않을까. 고인은 말이 없으니 이제 산 사람의 몫이 크다. 산 사람이 ‘박원순 시장의 죽음’을 정치 쟁점화하고 ‘이러니 저러니’ 논쟁거리로 삼는다면 이는 죽은 자에 대한 예의가 아닐 것이다. 고인이 원하지 않았을 ‘오일장’으로 국민적 논란이 되는 것 자체가 슬픈 현실이다.  

‘성추행 사건’에 대해서도 몇 가지 생각해 봐야 할 일이 있다. 박원순 시장에게 오랫동안 성희롱과 추행을 당했다고 주장하는 고소인이 8일 경찰청에 박원순 시장을 정식 고소한 것은 사실이다. 지금 인터넷에는 고소인이 고발한 내용이 무차별 유포되고 있다. 경찰청이든, 서울시든 확인되지 않은 내용이다. 이 부분에서 걱정이 앞선다. 피고소인(박원순 시장)이 사망했기 때문에 이 사건은 ‘공소권 없음’으로 결론 났다. 

문제는 여기서부터 시작된다. ‘공소권 없음’이니 추가 수사는 어렵다. 이 과정에서 확인되지 않은 사실이 소문에 소문을 타고 확대 재생산될 가능성이 크다. 인터넷과 SNS를 통해 확대 재생산된다면 그 파문은 만만치 않을 것이다. 고인에 대한 억측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고소인이 받을 고통 또한 적지 않다. 

고소인에 대한 지나친 관심과 신상털기도 지양해야 한다. 고소인은 오랫동안 고민 끝에 박 시장을 고소했을 것이다. 고소인이 그동안 받았을 그 고통을 누가 알겠는가. 박 시장이 유언장에서 언급했듯 ‘죄송하다’는 말이 고소인에게 조금의 위안이 될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다만 고소인의 고소를 두고 이를 박원순 시장의 죽음으로 연결하면서 고소인을 비판하거나 힐난하는 일은 절대 삼가야 한다. 고소인 고통의 무게를 우리는 알지 못한다. 고소인의 확인되지 않은 고소 내용을 언급하면서 박 시장을 힐난하는 것은 ‘정치 쟁점화’의 또 다른 길로 접어드는 것임을 알아야 한다. 그 누구도 아직 이 사건의 정확한 앞뒤 정황을 모르기 때문이다. 

박원순 시장의 마지막 모습이 눈에 선하다. 골목길을 접어들고 걸어가는 그의 뒷모습은 힘이 없이 슬퍼 보인다. “왜 그랬을까”라는 의문은 영원한 숙제로 남았다. 그의 유언대로 ‘모두 안녕’할 수 있기를 희망해 본다.      


2012년 10월 25일 당시 썼던 칼럼을 추억하며 고인을 기억해 본다. 

박원순 시장의 '가슴 뛰게 하는' 골목길     


김현식은 '골목길'을 통해 "골목길 접어들 때에/내 가슴은 뛰고 있었지"라고 노래했다. 골목길에는 어린 시절 추억이 묻어 있다. 바닥에 선을 긋고 돌 하나만 있으면 아이들에게는 놀이터였다. 러닝 차림의 이웃이 모여 없는 살림에 먹을 것을 나누던 곳이었다. 꾸불꾸불 끝없이 이어지는 골목길은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의 삶을 볼 수 있는 장소이다.

2012년 서울의 골목길은 어떤가. '접어들 때'에 내 가슴은 뛰고 있고 하루의 고단한 삶에 휴식을 주는 그런 장소가 되고 있을까. 골목길에 접어들면 불안감이 몰려온다. 어두운 가로등 불빛 아래 누군가라도 서 있을라치면 머리카락이 곤두선다. 골목길에 접어들면 부리나케 집으로 뛰어가듯이 달려야 한다. 무섭고 어둡고 좁은 골목길이 되고 말았다.

지난 17일. 서울 마포구 염리동 골목길을 찾았다. 혼자가 아니었다. 박원순 서울시장 일행이 이곳에 모습을 드러냈다. 재개발 예정지로 분류돼 있는 염리동 골목길은 오르기에도 힘겨운 정도로 가팔랐다. 끝없이 이어지는 미로. 좁은 골목길에는 하루를 살아가는 이들의 일터도 함께 늘어서 있었다. 서민보호치안강화구역으로 지정돼 있는 곳이다. 이 골목길에서 범죄가 끊임없이 일어나고 있었다.

염리동은 마포나루를 거점으로 소금창고가 많아 인심이 후했다. 최근 개발이 늦어져 원주민 비율이 급격히 줄었다. 세입자들과 외국인 노동자들이 빠르게 들어왔다. 주민 사이에 갈등 요인도 많아졌다. 여성거주자 비율이 높다. 밤이 되면 상점이 대부분 문을 닫아 무슨 일이 일어나도 도움을 청할 곳이 없었다.

염리동 골목길이 달라졌다. 박원순 시장이 골목길에 디자인을 접목시켰다. 이른바 '범죄 예방 디자인 프로젝트'이다. 눈에 띄는 노란색과 초록으로 골목길 담벼락이 깨끗한 모습으로 변했다. 집 담벼락은 전문디자이너가 이끌고 30가구 주민의 자발적 참여로 직접 보수했다. 띄엄띄엄 노란색 대문을 칠한 '지킴이집'도 만들었다. 지킴이집에는 비상벨과 IP카메라가 설치돼 안전을 도모했다. 바닥에 선을 긋고 아이들이 놀 수 있는 '바닥놀이터'도 만들었다. 어둡고 좁고 무서웠던 골목길이 '가슴뛰게 만드는 곳'으로 변신했다.

박 시장은 지난 24일 취임 1주년 기자간담회에서 '현장 행정'을 강조했다. 탁상·칸막이 행정에서 벗어나 현장에서 행정을 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었다. 이어 '안전한 도시'를 강조했다. 재난 대비 관련 예산은 2012년 7588억 원으로 지난해 보다 2795억 원이 늘었다. 시민의 안전이 무엇보다 중요하고 도시가 존재하는 첫 번째 이유라고 박 시장은 말했다.

박 시장의 '골목길 행정'은 이 같은 그의 말을 실천적으로 보여주는 사례이다. 범죄를 예방하고 이웃 간의 소통을 나눌 수 있는 골목길 행정은 안전만 도모되는 곳에 머물지 않는다. 범죄를 예방함으로써 사회적 비용을 낮출 수 있다. 각종 범죄로 인해 지출되는 연간 사회적 비용은 20조원(한국법무보호복지공단)에 이른다. 서울시의 경우 5대 범죄 중 절도와 폭력이 95%에 달한다. 장소별로는 전체 중 노상이 62%를 차지한다. 골목길에서 절도와 폭력 등 범죄가 일어나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골목길 행정'은 이제 시작이다. 서울시는 앞으로 경찰청이 지정한 161개 서민보호치안강화구역을 중심으로 '범죄 예방 디자인' 프로젝터를 확대해 나간다는 방침이다. 추억의 공간에서 안전하면서 가슴 뛰게 하는 '골목길 행정'이 서울시를 바꾸는 하나의 과정이 되기를 기대해 본다.     

https://www.youtube.com/watch?v=hqcedU4LQv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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