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화 끊자마자 신랑한테 이 사실을 얘기하고 같이 여행 가기로 한 학부모께 사정을 얘기한 후 부산 친정집으로 바로 출발했다. 아빠랑 평소 친하지 않았는데(친하지 않은 정도가 아님..사실 좋아하지 않았음..) 이상하게도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 기분이었다.
'희귀병..폐가 굳어가는..어떡하지..우리 아빠..'
몇 초동안 멘붕이 와서 아무런 생각이 나질 않았다.
그때 갑자기 머릿속이 반짝이면서 대안이 떠오르지 않는가..
어렸을 적부터 비염 때문에 냄새를 잘 못 맡았는데 성인이 된 후 비타민C를 알면서 냄새라는 걸 맡길 시작 했고, 비타민C 전도사가 될 정도로 찬양한 나다. 나도 매일 비타민C를 먹고 있으니 아빠도폐가 굳는 걸 늦춰주는약을 비타민C 같은 영양제라 생각하고 먹으면 되는 거 아닌가!
친정 집에 문 열고 들어가니 어린아이처럼 두려움에 풀이 죽어 있는 아빠 모습을 봤다.
"아빠, 나 오면서 가만히 생각해 보니 그 약이 있어서 얼마나 다행인지 몰라요. 평생 먹으면 되는 거잖아요. 나는 매일 비타민C 영양제를 하루도 안 빼고 꼬박꼬박 챙겨 먹어요. 아빠 건강을 위해 영양제 하나 더 늘어났다 생각하면 돼요."
"맞네. 니 말이 맞네. 어. 어. 비타민C라 생각하고 잘 챙겨 먹으면 되네"
아빠는 눈을 동그랗게 뜨며 들뜬 목소리로 말했다.
우리가족은 그렇게 초긍정적인 마인드로 위기를 극복하고 있었다.
그 일이 있고 2년이 흘러 이번엔 아빠의 심장이 말썽을 부렸다.
"심장 수술을 당장 하지 않으면 갑자기 죽을 수 있댄다."
아빠는 겁먹은 표정으로 말했다.
그리곤 내심 수술을 당장 하길 원하셨다.
우리 4남매는 당장 수술하는 걸 반대했으나 아빠가 너무 원하셔서 결국 심장 수술을 하게 되었다.
2020년11월 심장 수술은 성공적이었다.
큰 수술인데도 불구하고 수술 다음날부터 의사가 조금씩 걸으라고 해서 걷기도 했다.
평생 책임감이나 성실함을 본 적 없던 아빠인데 아빠의 병원생활은 모범적이었다. 그렇게 퇴원을 하시고 2021년 1월 22일 아빠 생신을 맞아 언니가 있는 대구에서 온 가족이 모여 생일 파티를 하기로했다. 아빠, 엄마는 부산에서 살고 계셔서 아빠가 운전해서 오기로했는데 저녁이 되어도 오질 않으셔서 엄마께 전화를 드리니 아빠 몸이 갑자기 안 좋아지셔서 못 오시겠다고 하셨다. 아침에 내려오라고하셔서 다음 날 아침이 되자 마자 부산으로 향했다. 문을 열고 들어가는 그 순간 또 한 번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한 순간에 백발노인의 모습으로 침대 끝에 걸터앉은 아빠께 달려가 어디가 안 좋냐고 물으니
"이제 안 되겠다..."
힘없는 목소리로 고개를 저으시며 말씀하셨다.
그다음 날 바로 수술이 들어갔고 첫 심장 수술 후 2번이나 재수술을 했다. 여동생은 경기도에 살고, 언니는 대구에 살며 직장 다니고 있어 울산에 살고 전업주부인 내가 아빠의 간병을 도울 수 있었다.
폐기능을 너무 상실해 앞으로 가망이 없다는 의사의 말에 넋 놓고만 있을 수 없어 그날부터 "아빠 살리기" 나만의 프로젝트가 시작됐다.
둘째 아이를 등원차량에 태우자마자 차로 1시간을 달려 아빠가 계시는 병원으로 가서 긍정적인 말로 동기부여를 시켜드렸다.
아빠 병실에 걸려있는 커다란 달력 뒤에 큰 글씨로 세 문장을 써놓고 아빠께 매일 큰소리로 말해라고 했다.
나는 폐가 완전히 건강해졌다. 나는 숨을 편안하게 쉴 수 있다. 감사합니다!
담당의사 선생님께서 병실에 오실 때마다 달력을 보시곤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시며 돌아가시곤 했다.
어느 날 오빠가 아빠를 간병하고 있는데 의사 선생님께서 가족들 덕분에 기적이 일어난 것 같다고 하셨다고 했다.
너무 누워있으면 안 좋으니 걸어보시라고 했고 심지어 몇 걸음 걷기도 하셨다.
'진짜 모든 걸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느끼고 인정해 주면 정말 안 되는 게 없구나. 마음공부가 다 구나. 죽음조차도 이겨낼 수가 있구나!'
진짜 너무 기뻤다.
하지만 기쁨도 잠시 하루를 못 넘기실 것 같다고 다음 날 병원에서 연락이 왔다.
밤새도록 아빠 곁에서 아빠 다리를 주무리고 늘 깨끗하셨던 분이라 허옇게 쌓여있는 발각질도 깨끗하게 없앴다.
그날은 그렇게 해야 할 것 같았다. 어느덧 날이 밝아왔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또 이렇게 살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이제는 죽음도 극복할 수 있구나 잠시나마 자만했다.
그렇게 3일이 흘러 금요일 저녁, 여느때와 같이 아빠를 간호하고 있는데 누워만 계시던 아빠가 갑자기 벌떡 앉으시더니 커다랗게 눈을 뜨시곤 큰 목소리로 말씀하셨다.
나는 폐가 완전히 건강해졌다. 나는 숨을 편하게 쉴 수 있다. 감사합니다!
"이봐라, 숨도 이렇게 잘 쉬어진다. 이제는 완전히 다 나았다."
어안이벙벙했다.
한 순간에 아빠의 건강하던 예전모습으로 돌아왔다.
너무 신기한 경험이라 꿈만 같았다. 40분을 쉴 새 없이 말씀을 하셨고, 너무 무리하시는 게 아닌가 싶어 이제는 좀쉬시라고 하고 나도 간호하는 몇 달 동안 처음으로 눈을 붙였다. 날이 밝아 오빠와 교대하고 울산으로 향하는 길은 이상하리만큼 무거웠고 그 느낌은 현실이 되고 말았다.
2021년 3월 15일 AM 1:1 아빠는 자연으로 돌아가셨다.
예전에 아빠를 좋아하지 않아 아빠가 돌아가시면 어떤 느낌일까? 눈물은 나올까? 이런 생각을 했던 적이 있다.
한 번씩 병원에서 호출하면 급하게 달려가곤 했지만 이렇게 허망하게 끝날 줄은 상상도 못 했기에 우리 4남매는 어린아이마냥 펑펑 울었다.
마음공부를 열심히 했기에 죽음이 끝이 아닌 걸 알지만 우리 아빠가 한순간에 사라졌다는 게 믿을 수가 없었다.
우리 4남매는 아빠 영정 앞에 앉아 울기만 했다.
아무것도 먹지 못하고 울다 지쳐 앉아있는데 갑자기 내 핸드폰 화면이 켜져서 열어보니 운세어플에서의 알림이었다.
가끔씩 보던 운세 어플에 아빠가 수술한 이후부터 아빠 사주를 넣어 매일 확인하곤 했었는데 돌아가신 다음날 한 번도 보지 못한 운세 100점이 나왔다...,......
아빠는 행복하다고..괜찮다고...아빠의 메시지가 아닐까...
"아빠! 이제는 아프지 말고 거기서 아빠가 그토록 그리워하고 사랑한 할아버지, 할머니 만나서 더 행복하게 사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