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곳, 다른 감상

너는 행복하다 답했어

by 초록테이블

2부. 행복은 미루지 않기로 해



다른 사람이 나와 비슷한 생각을 할 거라는 기대감이 무의식 중에 있다. 이런 장소에 오면 이런 생각을 하겠지, 이걸 먹으면 이렇게 느끼겠지 하면서 예측을 하는데 같은 결과를 만나면 반갑고 다른 결과와 맞닿뜨리면 흠칫 놀라는 것이다. 타인이 나와 다른 생각을 하는 건 당연하다는 것을 알고는 있지만 자꾸만 잊어버린다. 특히 아이에 대해서는 더 그런 것 같다. 아이가 내 생각과 다른 이야기를 또박또박 뱉어낼 때면 깜짝 놀라고, 아주 가끔은 불편하다는 느낌이 들기도 하는데, 그럴 때면 내가 혹시 통제 욕구가 있는 건 아닌가 하여 되돌아본다. 이런 상황은 바로바로 체크하고 머리와 마음을 정리해야 한다. 대체로는 아이가 나와 다른 생각을 하는 걸 발견할 때 '아, 정말 하나의 인격체로 컸구나'하는 마음이 든다. 나랑 비슷하고 나와 닮은 점이 많지만 나와는 완전히 다른 존재. 묘하게 매력적인 인간이다.


치앙마이 여행에서 내가 가장 기대한 장소는 왓우몽이라는 이름의 동굴사원이었다. 이 사원에 다녀와서 아이와 나는 그날의 감상을 간단하게 노트에 남겼는데, 그 노트를 보고 나서 이 녀석이 나와는 완전히 다르구나 하고 또 한 번 느끼게 되었다.


여행지에 도착한 첫날, 평일 오전에 찾은 왓우몽은 기대한 것처럼 한산해서 더 평화로웠다. 사원에 들어가기 전 큰 파고다를 마주했다. "소원을 빌면서 기도하는 곳인가 봐." 했더니 아이는 별말 없이 성큼성큼 탑 앞으로 간다. 한쪽에 신발을 벗어두고는 빙빙 돌며 기도를 한다.

"엄마, 뭐 빌었는지 묻지 마."

"응. 좋은 거 빌었겠지."

안 물어보면 말하고 싶어지는 법. 아이는 입이 근질거리나 보다.

"사실은, 우리 가족 영원히 살게 해달라고 빌었어."

"음... 일단은 우리 영원히 행복하자. 지금 행복하자."

"응 엄마, 나 행복해."


파고다를 지나 사원으로 향했다. 동굴이라 신발을 벗고 고개를 숙이고 사원으로 들어갔다. 안쪽으로 들어가니 마치 개미굴처럼 왼쪽으로 오른쪽으로 길이 나 있다. 길을 따라 벽을 손으로 더듬으며 발길을 옮겨보면 구석구석마다 불상이 있고 기도를 올리는 공간이 보인다. 우리 둘은 미리 약속이라도 한 듯 불상을 보면 두 손을 모으고 인사를 했다.

동굴 안의 사원이라 더 경건하게 느껴지고 내부를 둘러보는 것 자체로 명상을 하는 기분이었다. 천천히 걷는 동안 머리가 맑아졌고 가슴속에서 말할 수 없는 무언가가 차오르는 것을 경험했다.


숙소로 돌아와 각자 오늘 하루에 대해 간단히 메모를 남기고 이야기를 나누었다.

“아들, 왓우몽 너무 좋지 않았어? 마음이 엄청 편해지고 좋더라고. 다음에 오면 또 가려고.”

“엄마, 나는 박쥐 이렇게 가까이에서 본 거 처음이야. 그리고 양말 봤어? 양말에 박쥐 똥 묻은 것 같아.”

“윽. 맨발이 아니라서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

나에게 ‘명상과 힐링’의 장소였던 곳이 아이에게는 ‘박쥐 구경 성공’의 장소라는 사실이 처음에는 당황스러웠다. 예술영화를 보고 나와 감동받은 내 옆에서 친구가 팝콘 맛있었다고 말하는 것 같은 기분이랄까. 하지만 우리가 서로 달라서, 아이가 나와는 다른 사람이라서 내가 생각지도 못한 것을 보고 느꼈다고 생각하니 한결 풍성해진 기분이었다.


며칠 후 12월의 마지막 날 저녁, 왓우몽에 다시 들렀다. 동굴입구를 통해 햇살이 비치던 아침과는 달리, 해가 질 무렵의 사원은 사위는 어둡고 내부 조명이 불상을 비추어 신비로운 느낌을 더했다. 그리고 이번에는 함께 박쥐를 열심히 찾아보았다. 다섯 마리 정도의 박쥐와 마주쳤고 신경 써서 바닥의 똥도 피했다. 이는 분명 아이와 함께여서 가능한 경험이다.


혹시 ‘이러이러한 친구를 가지고 싶다’ 같은 생각을 해 본 적이 있는가? 나는 늘 책과 영화를 좋아하고, 말이 잘 통해서 같은 작품을 보고 나서 함께 이야기 나누는 것을 즐기는 친구가 꼭 있으면 했다. 그리고 이번에 정답 비슷한 것을 찾았다. 여행지에서 24시간 내내 붙어서 촘촘하게 같은 경험을 하고, 때로는 다른 의견을 서로 나누면서 아이가 어쩌면 나의 베스트프렌드가 되어 줄 수도 있겠다 하는 생각이 든 것이다. 이번 여행에서 생긴 내 평생의 소원이다.


image.jpg 여행 첫날, 아이의 노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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