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는 행복하다 답했어
2부. 행복은 미루지 않기로 해
“내일 어찌 될지 모르는데 진짜 하고 싶은 건 해야지.”
“갑자기 지구가 멸망할 수도 있는데 당장 사랑한다고 말해야지.”
꽤 오래전부터 내 생활 전반에 자리 잡고 있는 말습관이다. 스무 살 시절 친구의 부모님이 젊은 나이에 황망하게 돌아가신 것을 지켜본 영향이 크고, 어느 날 갑자기 나의 몸에서 나쁜 신호가 온 경험으로 더 확고해졌다.
어릴 적부터 죽음에 대한 두려움은 없었다. 인생은 예상할 수 없는 일의 연속이고 죽음도 그중 하나라고 여겼다. 그리고 이번 생에 정직하게 잘 살면 죽고 나서 하늘에서 혹은 다음 생에 괜찮게 살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을 한다. 맞다. 어릴 적부터 상상력이 풍부하고 나 좋은 대로 생각하는 편이었다.
그런 나도 아이가 태어나고 난 후부터는 두려운 것이 많아졌다. 내가 없는 세상을 살아갈 아이, 내가 갑자기 사라진 세상에 남겨질 아이, 내가 아픈 것을 지켜보아야 할 아이, 나를 돌보기 위해 스스로를 돌보지 못할 아이, 점점 사그라드는 나를 지켜볼 아이를 떠올리면 이 보다 무서운 것이 없다. 그래서 나는 아프고 다치는 것이 두렵다. 몇 년 전 갑자기 다리가 마비되었을 때, 근무를 하던 중 갑자기 시야가 새하얘져 앞이 잘 보이지 않았을 때, 가장 먼저 든 생각은 ‘우리 아이 어떻게 하지?’였다.
죽음에 대해 자주 떠올리고 이야기하는 것은 이 두려움을 대비하고 싶은 마음일 것이다. 내일 사라져도 후회하지 않을 만큼 사랑하고 사랑해주고 싶기 때문이다. 이 글도 사랑의 흔적을 남기고자 하는 나의 분투이다.
아이 앞에서는 항상 말을 조심한다고 했지만, 아이는 죽음에 대해 자주 이야기 하는 편이다. 아마도 나의 영향이 없지는 않을 것이다.
아이가 질문한다.
"영원히 살 수 있는 방법이 있을까?"
"죽고 나서 다시 태어날 수 있는 게 확실해?"
"다음 생에 우리가 어떻게 서로를 알아볼 수 있을까?"
대답이 어려운 질문은 아이가 성장할수록 점점 늘어가고, 아이와 정답이 없는 대화를 나누는 시간은 의미가 되어 쌓인다. 각자의 생각에 빠지고, 각자의 생각을 정리해 가는 시간이 좋다.
"우리가 다시 태어날 수 있을지는 확실하지 않지. 과학적으로 밝혀진 건 아니니까. 근데 엄마는 내가 믿으면 있는 거라고 생각해. 뭐든 내가 믿으면 있는 거야. 천국이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에게는 천국이 있고,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에게는 없겠지. 우리가 다음 생에 알아볼 수 있도록 신호를 만들거나, 어느 장소를 정해두거나 하면 어떨까? 근데 드라마를 보면 전생의 기억을 다 지운다던데, 하나만 딱 남길 수 있게 해달라고 해야겠다. 아니면 우리의 눈빛을 기억해 두면 될까?"
아이는 진지하다.
"엄마는 천국에 가고 나는 지옥에 가면 어떡하지?"
"아니, 안 그럴 것 같아. 그리고 지옥에 안 가도록 우리가 이번 생을 잘 살자."
이런 나와 아이에게 치앙마이의 사원들은 마음을 잡아주는 장소였다. 우리는 눈에 보이는 사원은 모두 들어가서 두 손을 모아 인사하고, 걷고, 조용히 앉아 있었다. 대화가 필요하지는 않았다. 따로 또 같이 가만히 앉아 어느 날은 생각을 붙잡고 있었고 다른 어느 날은 생각을 흘려보냈다. 지루해하지 않는 아이가 신기하기도 하고, 아이의 머릿속이 궁금하기도 했다.
“무슨 생각해?”
“그냥 생각. 엄마 생각이랑 아빠 생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