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는 행복하다 답했어
2부. 행복은 미루지 않기로 해
태국에 가면 다들 코끼리 바지를 사 입는다고 하더라. 처음에는 별 관심이 없었다. 한국에 돌아와서 사용하지 않을 것 같은 기념품은 사지 않는다는 것이 나름의 쇼핑 원칙이기 때문이다. 아이에게 물어봐도 시큰둥했다. “뭐 사도 되고 안 사도 되고.”
그러다가 우연히 구글 리뷰를 발견한 것이었다.
‘너무 편해서 4장 샀어요. 한국 와서 잘 때 입으면 딱입니다.’
아들에게 리뷰를 보여주며 호들갑을 떨었다.
“아들, 안 되겠다. 우리 늦기 전에 바지 하나 사 입자.”
리뷰를 본 바로 그 집, 삼왕상 근처에 자리 잡은 LUZIANA라는 이름의 코끼리 바지 전문점으로 갔다. 시장에서 사는 것과 비교했을 때 좀 더 비싸지만 질이나 마감이 더 좋단다. 내가 직접 비교를 하지는 않았고 이것도 리뷰를 통해 얻은 정보다. (한국인들이 남겨둔 소중한 리뷰에 늘 감사하며, 내가 도움받은 것을 생각하며 나도 구글 리뷰를 남기곤 한다.) 쇼핑에서도 결국 내가 게으름뱅이인 것이 드러나고야 만다. 이것저것 둘러보고 비교하는 쇼핑을 즐기지 않는 편이라 평소에도 몇 개 브랜드를 정해두고 필요한 게 있으면 딱 그곳으로 사러 간다. 그마저도 옷이면 입어보고 맞으면 바로 사는 수준이다. 아직 패션에 눈을 뜨지 못하였기에 적당히 매치하기 좋은 것들로만 옷장을 채우는데 코끼리 바지 역시 현재 가지고 있는 옷들과 맞춰 입기 좋은 것으로 고르리라 마음을 먹었다. 막상 보니 무늬와 색상이 묘하게 다른 것들이 수백 장 걸려있어 눈이 팽팽 돌아갔다.
“아들, 나는 어두운 계열로 고를 거야.”
“엄마, 나는 푸른색으로 할게.”
아들도 나와 닮은 구석이 있는 것 같다. 두루두루 둘러보지 않고 딱 스타일을 정해두고 그것만 찾고 있다.
둘이 원하는 컬러를 사장님께 말하니 함께 찾아가며 사이즈와 길이를 봐주신다. 이건 코끼리가 크다, 이건 코끼리가 작다, 이건 코끼리가 없다 하며 나름 신중하게 둘러보다 딱 예쁜 바지를 찾아냈다. 회색빛이 도는 흔하지 않은 컬러라 마음에 든다. 코끼리 바지는 발목 부분에 고무줄이 있어서(고무줄이 없는 형태도 있고, 치마도 있고, 반바지도 있다. 골라요 골라.) 좀 크게 입어도 괜찮을 것 같아 둘 다 본인 다리 길이를 초과하는 사이즈를 골랐다. 온 가족이 같이 잠옷으로 입을 것을 생각하며 남편의 바지도 하나 더 담는다. 비닐봉지에 세 벌의 바지를 담아 신나게 흔들며 숙소로 돌아왔다. 쇼핑을 하고 나니 다른 곳을 돌아볼 생각은 그새 잊어버렸나 보다.
방문을 열고 들어오자마자 바로 입어보는데, 아 이런, 너무 편하잖아!
“우리는 왜 이걸 이제야 샀을까? 오자마자 사 입었어야 하는데.”
“그니깐. 엄마, 우리 오늘부터 매일 입자.”
헐렁해서 바람이 숭숭 들어오고 엉덩이도 허벅지도 끼지 않는 넉넉한 바지를 입은 우리는 휴대폰을 켜 영상을 찍으며 패션쇼 하듯 걸어보고 포즈를 취하며 웃어 댔다. 그날 저녁부터 내내 그 바지를 열심히 입었다. 세탁해서 바로 또 입었다. 이 바지만 있어도 옷을 이렇게 까지 바리바리 가져올 것도 없었겠다 싶었다. 이 코끼리 바지가 또, 빨면 금방 마르는 장점이 있다.
“근데 이거 입으니까 편한 것도 있는데, 왠지 더 여행하는 것 같은 기분이야.”
우리는 다음에 오면 한 벌을 더 사기로 약속을 했다 여행할 때 여행의 기분을 충분히 만끽하기 위해서. 다음 여행 사진에는 내내 코끼리 바지만 등장할 것 같다. 두 벌이면 돌려가며 입게 될 거고 한 달 내내 입을 테니까. 리뷰를 쓰신 그분 말대로 우리도 한국에서 이 옷을 홈웨어와 잠옷으로 입는다. 스트레칭과 요가하기에도 제격이다.
태국을 여행한다면, 코끼리 바지는 꼭 미리미리 사는 걸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