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국에서 한국까지 이어진 친절

너는 행복하다 답했어

by 초록테이블

2부. 행복은 미루지 않기로 해



내가 지낸 치앙마이의 님만해민, 올드타운 지역에는 신호등이 없는 횡단보도가 대부분이었다. 4차선의 차도에도 신호등이 없어, 아이와 손을 꼭 붙잡고 하나둘 숫자를 세면서, 좌우를 열 번 넘게 살피고 나서야 겨우 길을 건너곤 했다. 한국은 무단횡단 할 일이 거의 없는 데다가 내가 유난히 교통사고에 대한 공포가 큰 탓에 신호등 없는 차도를 건너는 게 여간 곤혹스러운 일이 아니었다. 치앙마이 대학교 쪽이나 올드타운 쪽은 그나마 건널만했는데, 마야몰과 꽤 떨어진 님만해민 지역은 차가 양방향에서 쉴 새 없이 오가는 터라 등줄기에 땀이 흘렀다. 보고 있기만 해도 눈이 팽팽 돌 지경이었다.


“길을 건너는 다른 사람을 좀 찾자. 엄마는 너무 무서워서 못 건너겠어.”

다리가 도로에 들러붙은 듯 그 자리에 꼿꼿하게 서서 좌우를 살피고 있는데 아이가 “엄마, 저기 사람 있어!” 하며 급하게 손가락으로 가리킨다. 아이가 가리키는 쪽을 보니 학생들로 보이는 태국인 무리가 우리를 쳐다보며 까딱 고갯짓을 한다. 우리는 손을 꼭 잡고 그들이 움직이는 박자와 보폭을 잘 살피며 조심조심 그러나 성큼성큼 길을 건넜다.

“컵쿤 카-.”, “컵쿤 캅-.” 큰 소리로 인사를 전하니 그들은 뭐 이런 일에 감사 인사를 하냐는 표정을 우리에게 보내며 유유히 가던 길을 갔다.


“엄마, 태국사람들은 정말 친절한 것 같아. 지금까지 본 사람들이 다 착하고 친절해. 나 한국 다음으로 좋아하는 나라를 태국으로 할 거야.”


아이에게 좋은 기억을 남겨주는 태국에 고마웠다. 조금 더 욕심을 부리자면 마음에 조금 더 깊이 남길 바랐다. 낯선 곳인데도 불구하고 은근히 친숙한 그런 곳, 떠나고 싶다는 생각이 들면 먼저 떠오르는 곳, 늘 그리운 곳이 태국이 된다면 어떨지 생각했다.

나 역시도 치앙마이의 사람들에게 많이 반하고 있는 중이었다. 더듬더듬 의사소통이 안 되는 상황에서도, 뭔지 몰라 번역기를 돌리며 찾아보는 중에도, 메뉴에 대해 아이에게 설명한다고 주문이 지체되어도, 옷을 한참 뒤적이며 이것저것 질문을 할 때에도 그들은 모두 서두르거나 재촉하지 않았고 눈치를 주지도 않았다. 여러 명이 둘러 모여 한잔하고 있는 술집에서도, 온갖 것을 팔고 사는 시장통에서도 큰소리를 내거나 흥분하는 사람이 없었다. 내가 만난 태국인들은 혹시 마음속에 부처를 하나씩 두고 있는 것일까.


“엄마도 태국이 좋다. 여기서 더 길게 살아도 좋을 것 같아.”


짧은 기간 동안 만난 몇 사람 덕분에 태국에 대한 인상이 확 좋아져 버리는 것처럼, 사람의 마음이라는 건 참 쉽게 좋아지고 반면에 쉽게 싫어질 수도 있다. 그래서 좋은 마음을 잘 찾아내 고이 갈무리해 두는 게 필요하다. 그러지 않으면 싫은 것 하나가 달려들어 맑았던 물을 다 더럽혀 놓을 것만 같아서. 혹시나 나중에 어떤 불쾌한 일이 생기더라도 지금 내가 이렇게 친절한 사람들을 기억하려고 붙잡아 둔 것은 계속 이 글이 증거가 되어 남을 것이다.


그날 이후 우리 가족에게 조금 달라진 풍경이 있다. 한국에 돌아온 후 아이가 주변에 도움이 필요해 보이는 외국인이 있는지 눈에 불을 켜고 살피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타깃을 발견하면 나와 남편의 옆구리를 쿡쿡 찌른다. “엄마 아빠, 우리 저 사람 도와주자.” 한 번은 충무로의 한 편의점에서 삼각김밥을 처음 산 것처럼 보이는 외국인 커플을 만났다. 남편은 조심스럽게 다가가 삼각김밥은 전자레인지에 20초 데워서 먹어야 맛있고, 비닐은 이렇게 벗기는 것이라고 먹는 방법을 설명해 주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아이는 남편에게 멋있었고 자랑스럽다고 엄지를 치켜세우며, 아빠의 선의가 외국인들에게 도움이 되길 간절히 바랐다.

이제 앞으로 우리가 태국에서 받은 도움을 낯선 사람들에게 즐겁게 되돌려 줄 일만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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