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는 행복하다 답했어
1부. 누구에게나 사정은 있다
여행의 준비부터 달랐다. 아빠가 동행하지 않는 여행이라는 이유로 아이와 나는 둘 다 ‘내 맘대로 할 거야’ 모드였다.
“엄마, 옷은 필요하면 거기서 사 입으면 되는 거 아냐? 그것도 기념이고!”
“응. 그렇지. 미리 투어 예약은 안 할게. 가서 맘 바뀔 수도 있고, 그날 날씨가 안 좋을 수도 있잖아.”
“응. 좋아.”
둘이서 쿵작하는 것을 보며 남편의 속은 타들어간다. 남편이 보기에는 뭐 하나 제대로 준비라는 걸 하는 것 같지가 않다. 우리 집에서 여행이라는 카테고리는 줄곧 남편의 영역인데 물론 100% 남편이 원해서 담당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남편 기준에는 내가 너무나 대충대충 적당히 결정하기 때문에 믿음이 가지 않아 어쩔 수 없이 여행 관련 임무를 떠안은 것이다. 남편은 항공권을 예매하고 나서도 더 싼 티켓이 나오는지 계속 체크를 하고, 숙소를 예약한 후에도 더 좋은 숙소가 있을 수 있다고 검색을 멈추지 않는다. 그와는 다르게 나는 한번 결정한 것은 뒤돌아 보지 않고, 무엇을 선택하는데 시간을 적게 쓰는 것이 더 효율적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이미 3년 전 우연히 알게 되어 찜해 둔 숙소가 있었고 그곳을 포함해서 남편이 추천해 준 곳까지 총 3군데를 최종결정하였다. 하지만 놀랍게도 남편은 여행지에 도착한 후에도 더 좋은 숙소가 있는 것 같다며 지도를 보내주며, 현지에서 직접 보고 나서 괜찮으면 숙소를 옮기란다. 누군가에게는 당연한 일일테고, 다른 누군가에게는 더 즐거운 여행을 위한 합리적인 선택이겠지만 나는 정말 놀랐다. 여행에 있어 기준이 다른 것이니 누가 더 좋고 나쁘고의 문제는 아니지만, 이런 남편과 십 년 이상 여행을 하다 보니 내가 무슨 결정을 해도 남편이 보기엔 성의가 부족하고 못 미덥다는 것은 문제였다. 내가 여행무식자가 된 것에 대해 절대로 남편을 탓하고 싶지는 않다. 하지만 결론적으로 늘 몸만 덜렁 따라다니던 나와 아이에게 이번 여행은 온전한 우리 스타일의 시작인 것은 분명했다.
“급하거나 위험하거나 그런 일 생기면 SOS 할게.”
남편이 걱정을 할 것을 걱정하여 다독였지만 솔직히 속으로는 ‘뭐 그런 일이 설마 있겠어?’ 하는 마음이 99% 였다. 돌이켜보면 대책 없이 태평했다. 해외여행을 적지 않게 다녀보았고, 해외출장 경험도 여러 번 있지만 실상 혼자 다닌 적은 없기에 투어 예약도 해외출금도 택시 호출도 내 손으로 해 본 적이 없었다. 걱정이 아예 없던 것은 아니지만 혼자가 아니라 아이가 있다는 사실이 내심 안심이 되었다. 이슈가 생기면 같이 인터넷을 찾아가며 머리를 맞대고 해결하면 된다는 생각이었다. 예상 상황을 모두 통제하는 여행은 하고 싶지 않았다. 아이를 위한다는 이유로 여행사 가이드처럼 사전에 모든 것을 준비한다면 아이는 몰라도 나에게는 여행이 되지 않을 것 같았다. 준비한 대로 착착 진행하는 여행은 즐거움을 반감시킬 것이고, 아이에게도 나 스스로에게도 날것의 자유로움을 주고 싶었다. 이상적으로는 그랬다.
물론 막상 가보니 예상 밖의 일은 계속 발생했고, 미리 예약하지 않은 걸 후회하기도 했다. 영어학원들은 휴가기간이라 연락도 안 닿고, 출금이 되는 ATM을 못 찾아 온 동네를 헤맸다. 그러나 아이와 나는 스스로 뱉은 말이 있으니 후회 없이 상황을 즐길 수 있었다. 진짜 여행이었다.
유명하다는 식당이나 관광지 몇 군데는 미리 지도에 표시를 해두긴 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아이와 함께 미리 계획한 몇 가지 외에는 모두 다 즉흥이었기에 유명하다는 인생샷 카페나 줄 서서 먹는 국숫집 같은 곳에는 가지 않았다. 그 근처를 지나다가도 막상 그 앞에서 길게 줄 서 있는 사람들을 보면 발길을 돌리게 되었다. 다른 사람들의 리뷰는 실패의 가능성을 낮출 믿을만한 증거이지만, 기다리는 것이 귀찮아서였는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아이와 나는 나만의 장소를 발견하고 나만의 경험을 통해 즐겁기로 결정했다.
아이와 의논하며 반드시 하기로 계획한 것은 이 정도다.
코끼리 보러 가기
왓우몽 사원 가기
1:1 영어 일주일 하기
무아이타이 해보기
우티 쏨땀 먹어보기
요가 수업 들어보기
보름이 넘는 일정에 이 정도의 계획을 세워 놓고 그 외에는 여행지에 가서 정하기로 했다. 아는 만큼 보인다고 했나. 여행은 아는 만큼 보이고, 모르는 만큼 흥분된다고 말하고 싶다. 아는 건 별로 없으니, 일단 흥분을 데리고 여행 출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