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는 행복하다 답했어
1부. 누구에게나 사정은 있다
이놈의 죄책감은 아이가 뱃속에 있을 때부터 시작된 것 같다. 출산 후 상황에 대한 걱정이 그 시작이었다. 육아에 실패하면 안 된다는, 그리고 건강히 잘 낳고 잘 키워야 한다는 부담감. 돈, 시간, 부모의 도움, 그중 뭐 하나 풍족하지 않았고, 마음의 여유는 더더욱 없었다. 그저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열심히 하는 것뿐이었다. 하지만 열심히에는 기준이 없고, 나의 열심히가 내 기준에는 항상 모자란 수준이었다는데 문제가 있었다.(남과 비교하는 마음을 가지지 않기 위해 발악했다. 모자라다 생각하지 않으려고, 섣부르게 남의 처지를 기준 삼아 이 정도면 괜찮다 하며 위안삼지도 않으려 했다.)
보통 많은 수의 특정 심리상태는 뿌리가 깊다. 거슬러 올라가면 마주하고 싶지 않거나 그다지 반갑지 않은 과거를 만나곤 한다.
아무에게도 마음을 터놓지 못하고 자랐다. 조부모님은 나에게 별 관심이 없었고, 어머니는 끝도 없는 온갖 집안 살림을 처리하느라 늘 정신이 없었으며, 아버지는 당연히 돈을 버느라 바빴다. 나를 내버려 두거나 방임한 것은 아니었지만 나는 내 머릿속을 휘젓고 다니는 생각이나 감정들을 뱉어낼만한 기회나 대상이 없었다. 필요한 이야기들, 시험이나 학원이나 점수 같은 것은 대화 주제로 올릴 수 있었지만, 내가 왜 속상하고 무엇이 고민인지, 내가 무슨 책을 재밌게 읽었고 친구와는 무슨 일이 있었는지에 대해서는 말할 사람이 없었다. 쓸데없는 말을 하고 싶었다. 내가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해도 들어주는 사람이 있었으면 했다. 덕분에 나는 뭔가를 노트에 끄적거리는 사람이 되긴 했다.
나는 여전히 쓸데없는 말을 누군가에게 하는 것을 주저하는 사람이다. 말을 하고 나서 괜히 한 건 아닌지 되새기는 사람이다. 그리고 나는 내가 바라던 그런 엄마가 되어야 했다. 육아는 내 아이에게 내가 바라던 그런 엄마가 되어 줄 기회였다.
업무적으로 인정을 받고 있었고, 팀장이 된 지도 오래지 않아 일도 재미있었다. 게다가 당시 회사는 외국계임에도 불구하고 육아휴직을 사용하면 퇴사를 제안했기에, 출산을 하면서 일을 그만 둘 생각은 전혀 없었다. 그리고 아이에게 멋있는 엄마가 되어주기 위해서도 일이 필요하다고 굳게 믿었다. 돈도 잘 벌고, 이야기를 잘 들어주고, 다정한 엄마. 이게 내가 생각하는 나의 이상적인 모습이었다. 그리고 내가 그린 이 모습이 계속 내 발목을 잡았다. 아이가 풍족하다 느낄 만큼 채워주고 싶다는 생각 때문에, 내가 주고 있는 것이 부족하다는 생각 때문에 계속 불안했고 죄책감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미안해.”
“괜찮아.”
이런 대사는 습관처럼 익숙해져 갔고, 아이는 꽤 자라서 “엄마, 미안해하지 마.”, “엄마가 최고야.” 같은 말을 나에게 해줄 수 있었지만, 나는 여전히 3개월 된 아이를 어린이집에 맡기고 출근한 그때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다 내려놓고, 돌아갈 곳 없는 상태로, 온전히 아이만 바라보는 시간이 필요했다. 나를 위해서. 10년 동안 허우적대고 있는 이 죄책감의 늪에서 벗어나기 위해, 이 죄책감을 짊어지고 10년을 달려온 나를 위로하고 보듬기 위해.
이렇게 해도 후회할 것 같고 저렇게 해도 후회할 것 같으면, 덜 후회할 것 같은 방향으로 선택을 할 수밖에 없다. 퇴사 역시 마찬가지였다. 퇴사를 하자니 경력이 단절될까, 나이도 많은데 앞으로 아무 데서도 나를 찾지 않으면 어쩌나 걱정이었고, 퇴사를 하지 않고 지금과 같이 지내면 아이와 충분한 시간을 함께 하지 못한 것에 대해 후회할 것 같았다. 대학 졸업 후 한 번도 직장을 쉬어본 적이 없기에 월급이 들어오지 않는 삶은 어떨지 겁이 났고, 남은 대출금이나 매달 들어가는 보험금이 적지 않기도 했다. 생각이 꼬리를 물었지만 결국 지금 나에게 돈이 더 중요한지 시간이 더 중요한지 질문했고, 결론은 일단 시간을 가지자는 것이었다.
다음 직장을 결정하지 않고 퇴사한다는 소식을 주변에 전하자, 지인들은 거짓말하지 말라며 믿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나는 늘 “70까지는 계속 일할 거야.”, “일, 너무 재미있지 않니?” 같은 말을 하고 다니는, 가끔 일중독이라는 말을 듣기도 하는 사람이었고, 출산휴가 3개월 후 바로 복직, 그 해에 스타트업으로 이직을 한, 일을 할 때 에너지가 넘치는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그동안의 과정으로 보면 뒤가 없는 퇴사는 나 자신에게도 놀랄만한 일이긴 했다.
퇴사의 이유를 ‘아이에 대한 죄책감 비슷한 감정’ 때문이라고 이야기하면, 주변의 공감을 얻기 어려웠고 왜 죄책감이 드냐는 반응이 돌아왔다. 남들이 보기에도 그렇고 나 스스로 생각해도 나는 정말 열심히 육아를 해왔기 때문이다. 밥은 걸러도 아이와의 놀이시간은 매일 빼먹지 않았다. 주말이면 이틀 내내 공원이고 박물관, 도서관, 쇼핑몰을 돌아다녔으며, 틈틈이 캠핑과 여행을 다녔다. 퇴근 후에는 매일 아이를 끌어안고 책을 읽어주고 이야기를 만들어 들려주었다. 아이가 좋아하는 캐릭터의 이름은 카봇, 터닝메카드, 포켓몬스터 할 거 없이 다 외우고, 변신로봇도 누구보다 빠르게 뚝딱 변신시킬 수 있었다. 프랑스식 육아나 미국식 육아 같은 책들과 아이와 어른의 심리학 책을 읽고 육아강연을 찾아들었다.
다른 사람보다 대단히 더 노력했다던가 더 잘했다던가 하는 말을 하고자 하는 건 아니다. 그저 퇴근 후 시간과 주말을 너덜너덜해지도록 지내서 오히려 월요일 아침에 출근하는 것이 에너지가 덜 든다고 여길 정도로 십 년을 보낸 내가 죄책감이라는 것이 들었다는 말을 하고 싶은 것이다. 다시 돌아가도 이보다는 더 열심히 할 수 없었을 텐데. 그 사실을 스스로 알고 있으면서도 죄책감이 들었다. 그렇기에 이놈의 죄책감은 이해받기는 힘든 나 혼자만의 숙제 같은 감정이다. 일을 하든 안 하든, 아이와 몇 시간을 붙어있든 그런 것과 상관없이 아이에게 미안한 마음이 드는 건 엄마로 사는 이의 숙명일지도 모르겠다. 아이에게 ‘난 너무 완벽하게 잘했어. 더할 나위 없어.” 100% 이런 마음인 부모가 얼마나 있을까.
엄마로 사는 일은 나의 욕구를 접고 타인의 욕구를 우선에 두는 일이다. 아침에 눈뜨기 싫어도 아이를 밥 먹여서 등교시키려면 일어나야 하는 식이다. 그건 나보다 남을 위하는 차원이라기보다 나와 남이 분리되지 않는 기이한 상태에 가까웠다.
<은유의 글쓰기 상담소> p12
은유 작가의 글에서 나의 상태와 비슷한 정답지를 찾았다. 육아를 한다는 것이 나에게는 내가 두 사람의 삶을 사는 것 같기도 하고, 내가 다시 어린이가 되어 사는 것 같은 마음이기도 했다. 엄마의 숙명이든 나 스스로의 숙제이든 죄책감이라 불리는 응어리는 해결해야 했고, 나는 퇴사를 번복하지 않겠다는 각오로 항공권과 숙소부터 예약했다. 아이에게 퇴사와 여행 소식을 전하자 몇 초간 침묵이 흘렀다. 하지만 미소가 서서히 번지는 것을 발견했다. 두 손을 꼭 잡았다. “우리 진짜 재밌게 지내다 오자.” 스스로에게 하는 다짐이자 주문의 말이었다.
태국의 치앙마이로 떠났다. 둘만의 치앙마이에서 우리는 한시도 떨어지지 않고 손을 잡고 팔짱을 끼고 허리를 안고 다녔다. 여행 내내 아이의 숨소리를 듣고 감촉을 느꼈다. 땀이 차도 손을 놓지 않은 건 그 시간이 우리에게 치유의 과정이기 때문인지도 몰랐다. 마셔도 마셔도 갈증이 가시지 않는 사람처럼 계속 서로를 안고 쓰다듬었다. 아이에게 미안한 마음에 여기 치앙마이까지 왔다. 아이를 위한 듯 보여도 사실 나를 살리는 여행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