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감의 문장
"Si siempre hace sol, se convierte en un desierto. Solo con lluvia y viento, la tierra se vuelve fertil."
- 스페인 속담
"너 요즘 일 안 하고 있다고 했지? 일 다시 할 생각은 있어? 그럼 얼굴 좀 볼까? 밥 먹으러 와."
10년 전 IT스타트업에서 근무하던 시절 옆 부서의 상사였던 분의 연락이었다. 특별히 반가웠던 건 내가 내심 이 분을 좋아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조직원들과 유연하게 소통하면서, 일은 추진력 있게 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혹시 다른 회사에서 일해보라고 하시면 신중하게 고민해 보고, 같은 회사에서 일하자고 하시면 빠르게 결정을 내려야지!'
실망할까 봐 기대는 조금만 하고 만났는데, 다행히 감사하게도 같이 일하자는 제안을 받았다.
"제안 주시는 업무의 실무를 안 한 지 2년이 넘어서 다시 봐야 파악이 될 것 같은데 괜찮을까요?"
"금방 금방 바뀌긴 하니깐. 다시 보면 감 잡지 않을까?"
그냥 마음을 정하고 나오신 것 같아서, 내가 금방 적응할 수 있을 거라고 믿어주셔서 감사했다. 정작 나는 내 능력을 걱정하고 의심하고 있는데 말이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우연히 만난 한 문장.
"항상 맑으면 사막이 된다. 비가 내리고 바람이 불어야만 비옥한 땅이 된다."
이 문장을 읽으면서 내가 그동안 일을 하면서 비와 바람을 맞은 시간들이 떠올랐다. 닥치면 어떻게든 해결해 온 시간들, 남들이 힘들 것 같다고 말려도 그냥 밀어붙이던 경험들, 옆에서 사기를 치고 뒤통수를 쳐도 내가 옳다고 믿는 길을 갔다. 그런 시간들이 모여서 내가 되었고, 그런 나이기 때문에 나를 믿어주는 사람도 있는 것이 아닐까. 이렇게 생각하니 스스로가 조금 대견했다.
갭이어를 가지면서 나름 바쁘게 열심히 지내고 있지만 어쩔 수 없이 불안하고 걱정되는 것은 사실이다. 나이도 있는데 이렇게 쉬다가 괜찮은 일을 다시 찾지 못할까 봐 걱정이고, 그냥 쉬다가 몸과 마음이 느슨해지는 것은 아닐지도 걱정이다. 물론 그러지 않기 위해 매일 루틴을 만들고, 루틴 트래커를 체크해 가면서 살고 있다. 쉬는 동안 자격증도 2개 따고, 이렇게 브런치에 글도 쓰고 러닝도 시작했다. 이렇게 쓰다 보니 일을 쉰 덕분에 채워진 것들이 꽤 많다.
어쩌면 그동안 힘들게 일했던 시간들, 갭이어의 불안함 마저도 나에게는 비가 내리고 바람이 부는 시간인지도 모른다. 그 모든 고민과 걱정들을 하나씩 주워 담아 닦아내고, 썩은 것은 도려내는 과정 속에서 점점 진짜 내가 되어가는 것 같다.
이 문장을 잘 가지고 있다가 종종 꺼내보려고 한다.
좋은 날에는 이렇게 말해주겠다.
"오늘이 이렇게 좋은 건, 어제 내가 비와 바람을 만났기 때문이야."
그리고 힘든 날에는 이렇게 다독이면 된다.
"오늘은 내가 비옥해지는 중. 바람 좀 쐬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