뭔가 다 아쉬운 숫자들
2019 끄트머리에 붙어있는 9라는 숫자는 한자리 수의 마지막 숫자다.
12월은 한 해의 마지막 달이고
31은 가장 긴 한 달의 마지막 날짜다.
이렇게 모아 놓고 보니 새삼스럽다.
마지막들이 모인 것 같아서 새삼 의미부여를 하게 된다.
부끄럽게도 다시 글을 써야겠다고 결심하고
실제로 그런 결심을 실행에 옮기는 건 늘 새로운 한 해가 시작되는 그쯤이었다.
그래서 오랜만에 들어와 본 내 브런치에는 몇 년에 걸쳐 찔끔찔끔 적어둔
차마 다시 클릭하지 못한 글들이 남아있었다.
나조차도 다시 읽어보고 싶지 않은 글들을
누가 읽어줄까 싶기도 하고
혹여 누가 읽어준다고 해도 내가 고개를 들 수 없을 것 같아 모두 정리했다.
아빠의 이야기를 적어둔 세 편의 글만 남겨두고.
3년 전의 글들은 지금의 내가 다시 쓸 수 없는 거니까.
그때 아빠가 나에게 준 온기는 지금의 내가 다시 흉내 낼 수가 없으니까.
몇 년 동안 일만 하면서 생각했다.
시간이 이대로 자꾸 가서 내 안에 28년 동안 간직된 기억들이
다 증발해버리기 전에 얼른 적어두어야 한다고.
그렇게 생각만 하다 또 한 해가 갔고
나는 곧 서른이 된다.
엄마와 헤어져야 했던 스물한 살을 지나
스물여덟이 되던 해엔 아빠와 헤어져야 했다.
어쩌면 내 20대는 헤어짐의 연속이었던 것 같다.
물론 새로운 만남도 있었고 지금도 여전히 헤어지는 중이지만.
오늘도 짧은 헤어짐을 치렀다.
연말의 2박 3일을 같이 보내고 다시 서울로 올라가는 나에게
조심히 올라가라고 멀리서 손 흔들어주던 막내 오빠와 헤어졌다.
오빠는 아빠와 달리 키가 큰 편인데
마디가 굵고 손바닥이 넓은데 반해 비교적 손가락이 짧았던 아빠의 손을 꼭 빼닮았다.
점점 오빠의 모습에서 아빠의 흔적을 찾게 된다.
일부러 그러려고 하지 않아도 그렇게 된다.
오빠 손을 보니 또 아빠가 생각나서 괜히 울뻔했다.
다행히 주책맞은 눈물을 들키기 전에 돌아서서 걸었다.
혹시나 해서 뒤돌아보니 여전히 내가 가는 걸 지켜보고 있어서
또 울컥했다. 아빠처럼 왜 그런담.
오빠도 나이를 먹나보다.
서울 올라오는 고속버스에서 생각했다.
이번에 다시 시작하면 꼭 그만두지 말고 계속 쓰자고.
벌써 엄마와의 시간이 가물가물한데
이러다 아빠와의 기억도 옅어지면 너무 슬플 것 같으니까.
그땐 이미 떠난 버스를 붙잡겠다고 뛰어가도 아무 소용이 없게 된다.
헤어짐은 슬프지만 우울하지만은 않았으면 좋겠다.
이별은 새로운 만남의 다른 표현이니까 이런 이유 말고
그냥 생각보다 살면서 꽤 많이 헤어지고
당장에 좋은 이별은 없어도
기억하고 싶은 순간들이 많다면 후에 그건 좋은 이별이었다고 말할 수도 있을 테니까.
좋은 이별을 만들어보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