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셀렘 Sep 17. 2022

비 오는 날은 쉬는 날이었다

오늘 메모: 쉼. 비. 안식. 농사. 아빠. 설명하지 말기. 1타령 말기



몸이 조금 아팠다. 일 년 전쯤 갑자기 심장이 빨리 뛰는 느닷없는 경험을 한차례 한 후 

생전 처음 겪어보는 증상에 깜짝 놀라서 회사 근처 내과에 갔었다. 

어떻게 해야 나의 이 당황스러움과 놀란 가슴을 생전 처음보는 의사에게 

잘 전달할 수 있을까 차례를 기다리며 속으로 몇 번 시뮬레이션을 해봤다.

대기실에 앉아 50분을 기다려야 만날 수 있지만 

정작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시간은 체감상 50초 정도뿐이기 때문에 최대한 일목요연해야 했다.  

하지만 호명되어 진찰실에 들어가서 의자를 끌어당겨 앉는 데 10초를 허비하고 

결국 "어디가 아파서 오셨어요?" 하는 질문에 내 대답은 그냥 단순했다.  


"아무 일도 없이 그냥 지하철에 가만히 앉아 있었는데 갑자기 가슴이 엄청 빨리 뛰더라구요." 


세상 사람 좋은 얼굴을 한 의사는 나에게 부정맥 소견을 내렸다. 

그리고는 별일 아니라는 듯이 너무 겁먹지 말고 다음에 또 그런 증상이 생기면 

"숨을 참아보세요." 라고 했다. 

근엄해보이는 모니터에 숨을 참고 있는 캐릭터 이미지까지 검색해 보여줘가면서. 


그 후로 나도 이 증상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게 되었다. 

커피를 많이 마셔서 그런 건가 싶어서 하루에 한 잔씩 마시던 커피도 끊고 (아드레날린도 사라지고) 

용케도 커피를 안 마신 후로는 갑자기 두근거리는 증상이 거의 사라지다시피 해서 

애증의 커피를 멀리하기로 다짐했다가, 증상이 없으면 슬쩍 또 마시고 그러기를 1년 했나. 


잠잠하던 증상이 최근에 다시 나타나기 시작했다. 

이번엔 맥락없는 두근거림과 함께 현기증같은 증상이 동반되었다. 겁이 덜컥 났다. 

'나 무슨 큰 병이 있는 거 아니야? 전조증상 그런 거 아니야?' 

추석연휴부터 간간히 찾아오던 증상이 2주째 하루에 몇 번씩 반복되는 통에 

(여전히 맥락은 없고 이유도 모르고 속수무책 당하는 중인데) 

불안과 일파만파 커져가는 우울한 상상같은 것들이 난데없이 뒤섞여 며칠간 마음이 연자맷돌(?) 같았다. 


이러다 심장 두근거리는 증상 때문이 아니라 꼬리에 꼬리를 무는 꼬꼬무 암울한 상상 때문에 

마음이 먼저 축날 것 같아 간단한 짐을 챙겨 밖으로 나갔다. 

현관문을 나서자 마자 가장 먼저 하는 일은 뭐다? 에어팟을 꽂는다. 

음악도 지겹고, 최근에 듣던 찬양도 이제는 조금 지겨워서 (조...조금입니다.) 

유튜브 화면 위에서 손가락이 애타게 방황하던 차에 

'쉴때조차 불안한 당신에게' 라는 제목의 설교 영상이 눈에 들어왔다. 

재생. 


인간은 여섯째 날 창조되었다. 일곱째 날은 안식일이었다. 하나님이 쉬시는 날이었다. 

그렇다면 여섯째 날 지어진 인간이 지어지자마자 가장 먼저 해야 했던 일은? 

안식. 쉬는 거였다. 이렇게 시작한 메시지가 산책로를 걷는 한 시간 동안 이어졌다. 

프리랜서라는 허울좋은 단어 뒤에 달라붙어 때로는 일하고, 때로는 일을 안 하면서 (혹은 못 하면서) 

지낸 시간이 4개월 차에 접어드는 참이었다. 


누가 일을 주면, 일을 하고 그 일이 끝나고 나면 또 다음 일이 언제 들어올까 기다리고 

혹여나 한꺼번에 일이 들어오면(거의 늘 그렇다. 머피의 법칙의 영향력은 도대체 어디까지란 말인가.) 

물 들어올 때 노 저어야 한다는 생계형 명언이 떠오르면서 무리가 되더라도 일단 받고 보는 

이 허울좋은 삶의 패턴이 마음을 지치게 한 걸까, 몸도 덩달아 난데없이 두근거리게 된 걸까. 


내 몸의 증상을 이야기했을 때 한 선배는 말했다.

"너 그거 공황장애 아니야? 내 주변에도 그런 친구가 하나 있는데, 아무 이유 없이 막 심장이 빨리 뛰고 

이러다 내가 그냥 죽을 수도 있겠구나 그런 생각이 든다고 하더라. 신경정신과 가봐. 약이라도 먹어봐." 

'유명 연예인들이 간혹 걸린다고 들었던 그 공황장애에 내가? 나는 그 반열에 낄 건덕지가 하나도 없는데'

나는 속으로 중얼거리다가 내 맥락없는 증상에 이름 붙일 만한 또 하나의 단어를 찾았다는 것에 

나름 만족하며 선배와 헤어졌다. 


어쨌거나 프리랜서의 삶이라는 얄궂은 생활 패턴에서 오는 스트레스는 

아무도 나에게 뭐라고 하지 않아도 내 스스로가 받고, 내 스스로가 주는 핑퐁게임 같은 것인지도 모른다. 

공을 튕겨주는 상대가 없어도 벽에다 대고 무한히 치고, 받고 할 수 있는 (벽 보고 치는 테니스 같은_

물론 그 스포츠를 일컫는 단어가 있겠지만 나는 모르겠다.) 어감만 귀여운 핑퐁게임. 


한 시간쯤 숲길을 걸었다. 

몸은 일정한 속도로 앞으로 앞으로 걸어가고, 귀에서는 구구절절 다 맞는 이야기가 재생되고 있었다. 

'쉼' 그 단어는 걷고, 걷기만 하던 내 머릿속에 아빠의 얼굴을 떠밀어 넣었다. 

아빠의 쉼은, 일주일 중 하루가 아니었다. 

아빠의 쉼은 하늘이 주는 것이었는데 (어쩌면 아주 성경적인 삶처럼 느껴지는 대목이다.) 

하루라도 더 밭에 나가 부지런히 일해야 돈으로 보나, 열매로 보나 '좀 괜찮은' 가을을 맞이할 수 있는 

농부의 특성상 아빠는 비올 때만 쉬었다. 


방바닥에 배를 깔고 엎드려 영어 노트에 a, b, c, d 생소한 알파벳을 꼬불꼬불 따라 쓰고 있던 날이었다. 

(a가 제일 어려웠다. 한 번에 안 써졌다.) 마침 비가 와서 아빠는 밭에 나가지 못했다. 

어린 마음에 식구들이 같이 집에 모여있는 게 왜 그렇게 좋던지 

아직도 그 날 작은 방안의 풍경을 떠올리면 어렴풋하게 그 '이유 없이 기분좋음'이었던 

그 상태가 꽤 선명하게 기억이 난다.  

비록 방바닥에 배를 깔고는 있지만 그래도 공부라는 걸 하는 내가 기특했는지 

아빠가 뭉뚝해진 내 연필을 몇 자루 가져다가 슥, 슥, 몇 번 깎아내더니 아주 뾰족한 연필로 만들어줬다. 

그때 아빠의 나이가 예순이었나. 내가 열 살이었나. 

내가 열 살이었으면 아빠가 예순이 맞았을 것이다. 


그때는 애써 다른 애들 아빠와 우리 아빠가 조금 다르다는 걸 인정하려 하지 않았다. 

다행히 아빠는 동안인 편에 속했고 (나는 엄마도 그랬다고 감히 자부하는데) 

평생 궂은 일, 덜 궂은 일 다 하느라 몸도 탄탄한 편이었다. 

그런데 뭐랄까, 다른 애들 아빠가 해주는 당연한 일들이 나에게는 당연하지 않았다. 

같이 차를 타고 마트에 가서 옷이나 학용품을 사준다든지 (우리집에는 자가용이 없었다.) 

오늘 학교에서는 뭘 배웠고, 친구와 어떤 일이 있었는지 묻는다든지 (내가 먼저 말했으려나.) 

그런 일은 열 살 인생에 있어서 매우 어색한 일이었다. 

아빠는 나를 매우 사랑하고, 나도 아빠를 매우 사랑했지만 

당연한 것들이 당연하지 않은 건 피차 어쩔 수 없는 것이었다. 


그런데 아빠가, 나를 위해 혹은 내 공부를 위해 연필을 깎아줬다. 

그것도 다른 아빠들이 당연하게 해낼 수 없을 만큼 완벽하게 뾰족한 연필이라니! 


나는 아빠가 나를 위해 완벽하게 해줄 수 있는 일을 발견한 것이 기뻤다. 

완벽한 사랑은 마음으로 느끼는 것이지 눈에 보이는 것이 아니었는데, 

드디어 눈에 보이는 것을 발견한 것이다. 

비가 오고, 아빠가 밭에 나가 일을 하지 못하고, 내가 뭘 하나 지켜봐주고, 

어린 딸을 위해 슥슥 연필을 깎아주고, 나는 그게 좋아서 더 열심히 알파벳을 쓰고. 


행복한 쉼이었다. 

마음의 안식이라는 게 참 별 거 없다. 언젠가 그 순간을 떠올릴 때 

'그 때의 그 이유 없는 기분 좋음'을 얼핏 기억해낼 수 있다면, 그걸로 충분한 것이다. 

그런 기억들이 은근히 쌓여 오늘의 불안에서 나를 지켜내는 쿠션이 된다. 

불안을 튕겨낸다. 슬금슬금 들어올 때 푹신푹신하게 쳐낸다. 

그 덕에 오늘도 푹신하게 살았다. 



   







  


 


매거진의 이전글 아빠와 세발오토바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